기자는 그날, 흙 냄새와 나무결 냄새가 섞인 교실 한가운데에 앉아 있었다.
분필 대신 흙덩이가 책상 위에 놓였고, 칠판 대신 도예 가마의 불빛이 빛났다.
그곳은 한때 아이들의 글씨로 가득했던 교실이었지만 지금은 마을 어르신과 청년 장인들이 함께 손으로 예술을 빚는 공예 체험 공간으로 바뀌어 있었다.
전북 남원의 한 폐교, 이곳은 지금 ‘공예학교’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깊고 조용한 작업 분위기, 그리고 작업 사이사이 흘러나오는 사람들의 웃음소리. 기자는 이 폐교에서 단순히 ‘공예를 배우는 체험’을 넘어서 한 마을이 손끝으로 이어가는 전통과 삶의 방식을 직접 느낄 수 있었다.
작품은 손으로 만들었지만, 그 배경엔 기억과 정서, 시간이 녹아 있었다.
폐교 교실이 공방으로… 변화의 시작
기자가 방문한 이 공예학교는 2015년 문을 닫은 분교에서 시작됐다.
마을에서 도예와 목공을 배우던 사람들이 “우리 공간을 만들자”는 제안으로 뜻을 모았고,
지자체의 유휴공간 활용 공모사업을 통해 폐교를 임대받게 되었다.
기존 교실 구조를 그대로 살려 각 교실을 도예실·목공방·섬유작업실 등으로 나누었다.
복도 끝에는 전시공간이 마련되어 있어 마을 장인들의 작품이나 지역 청소년들의 공예작품을 전시하고 있었다.
교실에 들어서면 한쪽엔 토기 가마, 다른 한쪽엔 나무 조각이 쌓여 있고 벽면에는 '오늘의 손기술'이라는 이름으로 일일 수업 주제가 적혀 있었다.
공방은 단지 기술을 가르치는 공간이 아니라 사람과 삶을 함께 전승하는 ‘느린 교실’로 기능하고 있었다.
기자는 도자기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흙을 만지며 형태를 잡고, 유약을 바르고 마지막엔 가마에 넣는 작업까지 직접 할 수 있었다.
선생님은 마을에 거주 중인 60대 도예가였고 차분하고 따뜻한 말투로 하나하나 과정을 안내해주었다.
손끝에서 전해지는 마을의 감정
작업 중간중간, 선생님은 이 폐교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여기, 원래는 3학년 교실이었어요.
창문 너머로 보이는 저 감나무는 예전에도 있었고요.”
그 말을 들으며 기자는 지금 빚는 도자기 하나에도 마을의 기억이 녹아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흙을 만지는 손은 조심스러우면서도 단단했다.
함께 체험에 참여한 사람들은 대부분 외지에서 온 방문객이었지만 모두가 금세 그 분위기에 젖어 들었다.
누구도 급하지 않았고, 누구도 완벽한 모양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저 지금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무언가에 집중하는 시간. 기자는 그 시간이 ‘작품을 만드는 시간’이라기보다 자신의 속도를 되찾는 시간처럼 느껴졌다.
마무리된 작품은 며칠 뒤 굽고 유약을 입힌 후 택배로 보내준다고 했다.
기자는 그 한 마디에서 이 공간의 철학을 느꼈다.
"당장 가져갈 수 없지만, 오래 기다릴수록 의미는 깊어진다."
폐교는 기술보다 관계를 가르친다
기자가 공방을 둘러보며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작업실에 놓인 ‘함께 만드는 달력’이었다.
공방을 찾은 사람들이 돌아가며 그날 만든 작품 사진과 한 줄 소감을 써놓는 공간이었다.
거기엔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다. “아버지가 쓰던 끌을 처음 잡아봤습니다.
그 온기를 기억할 것 같아요.” 그 문장 하나만으로도 이곳의 목적이 명확해졌다.
공예학교는 단순히 체험이나 기술 교육을 제공하는 곳이 아니다.
이곳은 ‘삶을 천천히 들여다보는 방법’을 알려주는 곳이었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일은, 마음속을 정리하는 일과 닮아 있었고 그 과정에는 언제나 관계가 있었다.
마을 어르신은 매주 토요일이면 아이들을 모아 공예 놀이를 해준다고 한다.
종이접기, 흙 놀이, 버려진 나무를 활용한 장난감 만들기 등. 기자는 그 장면을 보며 “이 폐교는 지금도 누군가의 배움이 시작되는 공간”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종이와 가위를 들고 웃는 아이들의 모습은 예전 수업시간보다 더 자연스럽고 자유로워 보였다.
다음엔 무엇을 만들지, 다시 돌아오고 싶은 공방
체험을 마친 후 기자는 작은 벤치에 앉아 공방 전경을 바라보았다.
햇살이 교실 유리창을 타고 들어오고 그 안에서 누군가는 조용히 톱질을 하고 있었다.
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그 리듬은 사람을 안정시키는 마법이 있었다.
그날 만든 기자의 작은 도자기 컵은 완성도 높은 작품은 아니었지만 누구보다 특별한 한 조각이었다.
기자는 돌아오며 생각했다.
폐교라는 공간은 비워진 기억의 틀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담을 수 있는 새 그릇이라는 사실을.
그 그릇에 흙을 넣고, 물을 섞고, 온기를 더하면 비로소 그것은 하나의 기억이 되고 작품이 된다.
그리고 기자는 다짐했다.
다음에는 꼭 가족과 함께 와서 서로 다른 모양의 그릇을 만들어보고 싶다고.
이 공방은 ‘작품을 만들고 떠나는 곳’이 아니라 ‘다시 돌아오고 싶은 기억을 남기는 곳’이었다.
느린 손, 느린 마음, 그리고 잊지 못할 하루
도자기를 빚던 기자의 손이 천천히 움직이던 그 순간, 마음속도 덩달아 고요해졌다.
어느새 휴대폰은 가방 안에 들어간 채 꺼내지 않았고 시간이 흘러가는 걸 체감하지 못할 만큼 집중한 자신을 발견했다.
손이 천천히 움직일수록 마음이 정돈되어 갔다. 작은 흙덩이를 나만의 컵으로 빚어내는 그 몇 시간은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는 ‘작은 명상’과도 같았다.
기자는 그 경험을 통해 공예가 단지 결과물 중심의 생산이 아니라 삶을 재정렬하는 하나의 방식임을 새삼 깨달았다.
그 깨달음은 시골 폐교라는 공간과 묘하게 어울렸다.
느리게, 조용하게, 그리고 따뜻하게. 그 공간이 품어준 속도가 곧 그날의 가장 큰 배움이었다.
이곳에서 다시 삶을 빚는 사람들
공예학교에서 기자는 특별한 청년 한 명을 만났다.
서울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다가 이곳으로 귀촌해 목공과 도예를 배우고 있다는 청년은 이렇게 말했다.
“이 공간은 제 직업이 아니라, 제 삶을 다시 빚는 곳이에요.”
그 말 속에는 단순한 이직이나 귀촌이 아닌 삶의 전환에 대한 깊은 고민과 실천이 담겨 있었다.
그는 아직 도예가로 완전히 자리 잡은 것은 아니지만 매일 아침 교실에 앉아 흙을 만지고,
동네 어르신에게 나무 깎는 법을 배우는 시간이 가장 소중하다고 했다.
기자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 폐교가 단지 체험 공간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길을 찾는 이들에게 열린 플랫폼이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폐교가 열어주는 두 번째 배움의 시간
공예학교를 떠나는 길에, 기자는 운동장 한쪽에 놓인 낡은 평상이 눈에 들어왔다.
그 위에는 누군가 그날 만든 목재 트레이를 말리고 있었고 햇살이 그 위에 부드럽게 내려앉고 있었다.
그 장면은 마치 폐교라는 공간이 조용히 말을 건네는 듯한 순간이었다.
"이곳은 여전히 누군가를 가르치고, 성장하게 만드는 장소다."
기자는 깨달았다.
학교는 꼭 교과서를 통해 배우는 곳이 아니라 삶을 다시 배우는 두 번째 학교가 될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두 번째 배움은 손에서 시작된다.
손이 움직이고, 마음이 따라오고 그렇게 삶이 천천히 바뀌는 곳. 그 모든 것이 이 조용한 폐교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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