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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교 활용공간 리뷰

폐교 공간에서 열린 작은 음악회 후기

기자는 지금도 그날의 첫 기타 소리를 잊을 수 없다.
형광등 대신 은은한 전등이 켜진 오래된 교실,칠판 앞엔 마이크와 의자 하나가 놓여 있었고 아이들이 앉았을 법한 작은 나무 의자들이 관객석을 대신하고 있었다. 음향 장비도 대단치 않았고, 조명도 없었다.
그저 마이크, 기타, 사람, 그리고 교실. 그 단순한 구성이 이토록 큰 울림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기자는 처음 알게 되었다.

이 음악회는 전북 장수의 폐교된 분교에서 열린 ‘시골 작은 음악회’였다.
한 달에 한 번, 지역 뮤지션과 여행자, 주민들이 모여 함께 음악을 듣고, 조용히 감상을 나누는 문화 모임의 일환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기자는 우연히 지역 SNS 커뮤니티에서 이 음악회를 알게 되었고, ‘교실에서 듣는 기타 소리’라는 문구에 이끌려 먼 길을 달려 이곳을 찾았다.
그 결과,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따뜻하고 깊은 감정을 얻고 돌아오게 되었다.

 

폐교공간은 준비된 공연장이 아닌, 기억이 머무는 공간에서의 연주

폐교는 공연장이 아니었다.
무대 조명도 없고, 관객석도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나 그 부족함은 오히려 진짜 ‘사람의 공간’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만들어주었다.
교실 바닥은 여전히 나무였고, 창문에는 낡은 커튼이 걸려 있었다.
벽에는 예전에 붙였던 학습 포스터 흔적이 남아 있었고, 창틀에는 먼지가 얇게 쌓여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기자가 도착했을 때, 자원봉사자들이 하나둘 의자를 놓고 있었다.
마을 어르신 몇 분이 일찍 와 교실 한켠에 앉아 있었고, 서울에서 온 관객 몇 명은 교실 복도에서 조용히 차를 마시고 있었다.
공연을 위해 오롯이 꾸며진 장소가 아니었기에,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태도도 자연스럽고 진지했다.
이 폐교 공간은 누군가의 기억이 가득한 장소였고, 그 위에 음악이 덧입혀지며 새로운 감정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공연자는 전주에서 활동하는 인디 뮤지션이었다.
그는 “학교에서 공연을 한다는 게 처음엔 어색했지만, 여기선 오히려 제 목소리가 더 진심에 가깝게 들려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은, 곧 이어질 연주에서 그대로 증명되었다.

폐교 공간이 공연장이되어 열린 작은 음악회 후기

기타 소리에 담긴 마음, 조용히 녹아든 관객의 표정

공연이 시작되었다.
첫 곡은 잔잔한 인스트루멘탈 기타곡이었다.
기타 선율이 교실 천장을 따라 퍼지자, 모두가 조용히 숨을 죽였다.
기자는 눈을 감고 그 소리를 들으며, 교실 바닥에 손을 대고 천천히 음악을 받아들였다.
마치 이 공간 전체가 하나의 악기가 되어 울리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공연자는 중간 중간 노래 사이에 짧은 이야기를 했다.
도시에선 빠르게 살아야 했던 자신이, 이 폐교 음악회를 통해 처음으로 천천히 연주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렸고, 관객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 떨림을 조용히 받아들였다.
이곳에선 청중과 연주자 사이에 무대와 객석이라는 구분이 없었다.
모두가 하나의 교실 안에서 함께 울고, 웃고, 감상했다.

어떤 곡은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했고, 어떤 곡은 누군가의 이별을 위로해주는 듯했다.
기자는 그날, 음악이 단지 소리의 예술이 아니라 공간과 감정의 기록임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그건 음원이 아닌, 현장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감각이었다.

 

폐교는 기능을 잃었지만, 감정은 여전히 살아 있다

공연이 끝난 후, 사람들은 천천히 박수를 쳤다.
누구도 큰 소리로 이야기하지 않았고, 대부분은 조용히 일어나 교실 밖으로 향했다.
운영자는 교실 한쪽에 마련된 방명록에 관람 소감을 남겨달라고 했고,
기자는 “마음이 맑아지는 저녁이었습니다”라고 적었다.

폐교는 분명 기능적으로는 사라진 공간이다.
하지만 그 자리에 다시 사람이 모이고, 공감과 감정이 오가며, 새로운 기억이 쌓이면 그 공간은 다시 살아 있는 장소가 된다.

이 음악회를 기획한 주민 모임은 “교실은 원래 사람의 온기로 가득해야 하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공연을 할 때도 장비보다 조명보다
사람과 마음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한다.
기자는 그 말이 공연 내내 자연스럽게 전달되었음을 느꼈다.
불필요한 장치 없이도, 마음만으로 완성된 무대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
그게 바로 폐교에서의 음악회가 주는 가장 큰 감동이었다.

 

다시 듣고 싶은 기타 소리, 다시 찾고 싶은 교실

공연이 끝난 뒤, 기자는 한참 동안 교실 안에 남아 있었다.
다른 관객들이 모두 떠난 뒤, 조용히 남아 칠판을 바라봤다.
거기엔 “오늘도 잘 듣고 갑니다 :)”라는 작은 글씨가 적혀 있었다.
그 메시지는 마치 기자에게 직접 건넨 인사처럼 느껴졌다.

학교라는 공간은 우리에게 배움의 장소이자 추억의 배경이고, 감정이 가장 예민했던 시절의 무대이기도 하다.
그곳에 다시 음악이 흐르기 시작하면 기억과 현재가 겹쳐지며 전혀 새로운 감정을 만들어낸다.
그날 그 교실에서의 기타 소리는 소리 그 자체를 넘어서 감정의 진동으로 남았다.

기자는 다음 달 열릴 음악회 일정표를 챙겨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 공연은 한 번으로 끝나기엔 너무 조용하고, 너무 따뜻했다고. 다음엔 누군가를 꼭 데려와 함께 듣고 싶었다.
그리고 그 교실에서 또 한 번, 음악과 침묵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저녁을 만나고 싶었다.

 

교실은 무대가 아니라, 이야기가 흐르는 장소였다

공연을 마친 뒤, 기자는 기타를 내려놓은 연주자와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는 “여기선 사람들이 제 노래를 ‘감상’하는 게 아니라 ‘공감’하는 느낌이에요”라고 조용히 말했다.
도시 공연장에서는 누군가가 듣고 있는지 아닌지도 잘 모르겠다고 했고, 이 폐교에서는 말 한 마디 없이도 자신이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 말은 이 교실이 단순히 소리가 머무는 곳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 서로 만나는 장소라는 걸 보여줬다.

기자는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왜 이 공연이 특별하게 느껴졌는지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조명 없이도 빛났고, 무대 없이도 집중할 수 있었던 이유는, 교실이 원래부터 이야기가 오가는 공간이었기 때문이었다.
질문이 오가고, 침묵이 흐르며, 누군가의 감정이 울렸다가 사라지는, 그런 특유의 공기가 이 공간에 여전히 남아 있었던 것이다.
음악은 그 공기 위를 천천히 흐르며, 각자의 기억 속에 조용히 내려앉았다.

 

시간이 흐른 교실이기에 더 소중했던 소리

며칠이 지나도 기자는 그날의 여운에서 쉽게 빠져나올 수 없었다.
공연을 찍은 영상도 없었고, 녹음도 하지 않았지만, 기억은 유난히 또렷하게 남아 있었다.
그건 아마도 그 소리들이 기술이 아닌 사람과 공간 사이에서 온전히 감각으로만 전달되었기 때문이었다.

사람은 대체로 완벽한 것보다는 조금은 불완전한 감동을 더 오래 기억한다.
폐교에서의 음악회는 바로 그런 종류의 감동이었다.
부족한 조명, 삐걱이는 바닥, 마이크가 잠시 꺼지는 작은 해프닝까지도 그 순간의 분위기를 더 따뜻하게 만드는 요소가 되었다.
기자는 다음 음악회에도 꼭 다시 찾아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날의 음악이 좋았던 것도 사실이지만 무엇보다 그 음악을 함께 듣는 사람들과의 조용한 공감이 그립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오래된 교실 안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