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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교 활용공간 리뷰

폐교 캠핑장 체험기: 별빛 아래서 자는 법을 배우다

낮에는 햇살이 조용히 교실 창문에 들이치고, 밤이 되면 운동장은 별빛으로 가득 찼다.
기자는 그날 처음으로 ‘학교에서 자본다’는 독특한 경험을 했다.
하지만 이 학교는 더 이상 아이들이 오가지 않는 공간이었다.
전라남도 해남의 한 작은 폐교, 지금은 ‘별빛학교 캠핑장’이라는 이름으로 도심을 떠나 조용한 밤을 찾는 사람들에게 입소문을 타고 있는 이색 캠핑 장소가 되어 있었다.

학교에 텐트를 친다는 것이 처음에는 낯설게 느껴졌지만 운동장 한가운데 서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순간, 기자는 그동안 놓쳐왔던 감각이 하나둘 되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도심의 조명과 소음 속에서는 느낄 수 없던 진짜 어둠, 그리고 그 속에서 더 또렷하게 보이는 별들.
그날 밤, 기자는 별빛 아래서 잠드는 법을 처음으로 배웠다.

 

아이들의 흔적이 남은 학교, 캠핑장이 되다

이 폐교는 2008년 폐교된 초등학교로 교실 두 칸과 체육창고, 그리고 운동장으로 이루어진 소규모 분교였다.
몇 년간 방치되어 있었지만, 마을 청년회가 주축이 되어 리모델링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현재는 자연형 캠핑장과 소규모 커뮤니티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기자가 방문한 날은 평일이었지만 이미 두 팀이 텐트를 설치하고 있었다.

운동장은 넓었고, 바닥은 부드러운 흙이었다.
아이들이 뛰놀던 발자국이 지워졌을 그곳에 이제는 캠핑 의자와 랜턴, 텐트가 하나둘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한쪽 벽면에는 아이들이 남긴 그림과 이름이 그대로 남아 있었고 그 아래엔 “이 공간을 함께 아껴주세요”라는 손글씨 안내문이 걸려 있었다.
시간은 흘렀지만, 그 공간엔 여전히 ‘사람이 머무는 느낌’이 살아 있었다.

 

폐교 캠핑이 주는 조용한 밤의 감각

해가 지고 나면 폐교 캠핑장은 진짜 매력을 드러낸다.
불빛이 거의 없기 때문에, 텐트 안에서 켠 작은 랜턴 하나만으로도 모든 것이 충분했다.
도시의 캠핑장처럼 사람들 소리나 차량 소음이 들리지 않았고 무심하게 흐르는 바람 소리, 나무 잎 스치는 소리, 멀리서 들리는 개 짖는 소리까지 하나의 배경음처럼 느껴졌다.

기자는 캠핑 의자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며 오랜만에 별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별이 이렇게 많았던가, 별이 이렇게 가까웠던가. 그 감동은 가슴을 두드릴 정도로 깊고 조용했다.
근처에서 캠핑 중이던 한 부부는 “이곳에 오면 아이도 말이 줄고, 대신 하늘을 자주 보게 된다”고 말했다.
이곳에서는 ‘별을 보는 일’이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폐교 캠핑장 별빛 아래서 자는 법을 배우는 체험기

캠핑장이지만, 교육과 공동체가 살아 있는 공간

이 캠핑장의 운영자는 단순한 공간 대여자가 아니다.
폐교를 리모델링한 청년들은 캠핑장 수익의 일부를 마을 장학금으로 기부하고 교실 한 칸은 ‘자연학교’라는 이름으로 주말마다 아이들을 위한 생태 체험 공간으로 운영한다.
직접 흙을 만지고, 바람을 읽고, 별을 보는 수업이 그곳에서 이루어진다.
그 공간을 지키는 사람들은 캠핑을 상업이 아니라 공유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있었다.

기자는 이 점이 특히 인상 깊었다.
‘버려진 학교를 캠핑장으로 만든다’는 발상은 흔할 수 있지만 ‘그 공간을 다시 교육의 현장으로 되돌리는 것’은 이곳만의 고유한 시도였다.
아이들과 어른, 여행자와 주민이 함께 이 공간을 나누며 살아가는 모습은 단순한 체류가 아닌 체험, 단순한 쉼이 아닌 회복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별빛 아래서 자는 법, 그리고 비워지는 마음

첫날 밤, 기자는 잠이 쉽게 오지 않았다.
도심과 다른 완전한 어둠과 고요함이 오히려 낯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텐트 안에 누워 한참을 하늘만 바라보다 보니 자연스럽게 숨이 깊어졌고, 생각이 멈췄다.
어떤 책도, 어떤 명상 앱도 알려주지 못한 진짜 멈춤의 감각이 그 폐교 운동장에서 찾아왔다.

아침이 되자 먼 산 너머로 해가 떠올랐고 교실 옆 작은 텃밭에서는 닭들이 울고 있었다.
기자는 텐트를 걷고, 손으로 땅을 쓰다듬었다.
그 땅은 아이들이 놀던 흙이었고 지금은 다시 누군가의 추억이 쌓이는 곳이 되어 있었다.

기자는 생각했다.
우리는 가끔 너무 복잡한 쉼을 원하지 않았나. 그저 조용히 별을 보고, 잠들고, 흙을 밟는 일.
그 단순한 행위들이 폐교 캠핑장에서 비로소 가능해졌다.
그리고 그 경험은, 아주 오래도록 마음속에 남았다.

 

다시 돌아오고 싶은 밤, 다시 만나고 싶은 공간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그 밤은 오래도록 머릿속에 남았다.
별을 바라보며 아무 말 없이 시간을 흘려보냈던 감각, 그리고 텐트 안에서 들리던 조용한 풀벌레 소리와 나무 잎 흔들림은
도심의 소음 속에서도 간헐적으로 떠오르곤 했다.
기자는 무언가를 특별히 하지 않았음에도, 그날의 기억은 유난히 선명하게 다가왔다.
조용한 밤을 경험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큰 울림을 남긴다.

폐교 캠핑장은 불편한 점도 분명히 있었다.
샤워실이 오래되었고, 전기가 연결된 구역은 한정적이었으며 도시의 편리함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지나치게 조용한 밤’이 오히려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모든 불편함을 감싸는 건, 공간이 가진 감정적 온도와 사람을 향한 배려였다.

운영자는 기자에게 “계절마다 캠핑장의 표정이 달라요.
가을엔 낙엽이 운동장을 덮고, 겨울엔 아이들이 그리던 눈사람 자리를 불빛이 채워요”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으며 기자는, 이곳에 다시 오게 될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별빛과 침묵이 가르쳐준 그 ‘단순한 평온’은 도시의 삶 속에서 점점 더 간절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폐교라는 공간은 누군가에게는 기억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현재의 쉼이며,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출발점이 된다.
그날 밤 기자가 텐트 안에서 조용히 잠들기 전 마지막으로 떠올렸던 건 별이 아니라 그 공간을 만들고 지키는 사람들의 마음이었다.
그 마음이 있었기에, 별빛은 더 밝았고, 어둠은 더 따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