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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교 활용공간 리뷰

폐교를 리모델링한 반려동물 힐링센터 체험기

기자는 조용한 산자락 아래 자리한 폐교를 찾았다.
한때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했던 그 교실은 지금은 작고 부드러운 발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종 대신 꼬리로 인사하는 강아지들, 칠판 대신 햇살 아래 낮잠 자는 고양이 한 마리.
이곳은 전북 진안의 폐교를 리모델링한 ‘반려동물 힐링센터’였다. 도시의 바쁜 일상 속에서 반려동물과 충분한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사람들, 또 노령견이나 유기동물을 품에 안고 있는 이들을 위한 이 공간은 단순한 애견 카페가 아니라, 사람과 동물이 함께 쉬는 돌봄 공간이었다.
기자는 반려동물을 동반하지 않고 방문했지만, 그 누구보다 따뜻한 환대를 받았다.
그리고 이 폐교가 지금 어떤 방식으로 ‘돌봄’이라는 가치를 실현하고 있는지 하루 동안 천천히 들여다보았다.

 

폐교 교실은 쉼터가 되었고, 운동장은 산책길이 되었다

폐교의 외관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운동장도 그대로였고, 낡은 교문도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 안에 들어선 순간, 기자는 따뜻하고 정갈한 동물 전용 공간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한 교실은 노령견을 위한 조용한 휴식실로, 다른 교실은 보호자와 함께 쉴 수 있는 라운지 카페로 바뀌어 있었다.

복도 끝엔 유기동물을 위한 임시 보호공간도 마련돼 있었고, 벽에는 입양된 아이들의 사진과 사연이 걸려 있었다.
그 하나하나를 읽는 것만으로도 기자는 이 공간의 정성과 철학을 느낄 수 있었다.

운동장 역시 단순한 넓은 공터가 아니었다.
나무로 만들어진 산책로와 작은 계단, 물놀이장, 여름에는 텐트 쉼터까지 마련되어 있었다.
특히 고령 반려동물을 위한 ‘슬로우 워킹 존’은 이 센터만의 배려가 고스란히 담긴 공간이었다.

전북 진안 폐교를 리모델링하여 반려동물 힐링센터가 되다

사람도 동물도 함께 치유되는 시간

기자는 이날, 보호자와 함께 온 한 반려견과 잠시 시간을 보낼 기회를 얻었다.
허스키 믹스견 ‘단비’는 유기견 보호소에서 구조돼 이곳에서 재활 프로그램을 받고 있었다.
보호자는 “여기 아니었으면 단비는 견딜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공간은 단비에게도, 보호자에게도 회복의 공간이 되어주고 있었다.

교실에서 함께 조용히 앉아 책을 읽거나 운동장을 천천히 산책하며 느릿한 발걸음을 맞추는 동안 기자는 어느새 동물과 사람 사이에 흐르는 ‘감정의 대화’를 느꼈다.
무언가를 말하지 않아도, 그냥 함께 있는 것으로 충분해지는 감정. 도시에서는 좀처럼 느낄 수 없는 종류의 관계였다.

이 힐링센터에서는 보호자 대상 소규모 명상 클래스도 열린다.
반려동물이 자는 동안 조용히 자신을 돌보는 시간. 그 안에서 기자는 한 가지 확신을 가졌다.
이 폐교는 단지 버려졌던 공간이 아니라, 관계와 돌봄을 회복시키는 새로운 학교가 되고 있었다.

 

교육이 아닌 ‘돌봄’을 가르치는 폐교

센터 관계자는 “처음 이 학교를 임대했을 땐 반대도 많았어요.
동물이 교실에 들어오는 걸 불편해하는 시선도 있었죠.”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마을 어르신들도 종종 들러 간식을 나눠주고 산책을 함께 하며 정을 나눈다고 한다.
이 공간은 이제 마을의 일부이자 사람과 동물이 공존하는 아주 새로운 공동체의 모델이 되었다.

또한 이곳에서는 ‘반려동물과 함께 하는 생애교육’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대상별 프로그램을 구성해 반려동물과의 건강한 관계 맺기, 유기동물에 대한 인식 개선, 노령견 돌봄 체험 등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야말로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형태의 ‘학교’가 다시 시작된 셈이다.

폐교라는 공간은 정서적으로도 누군가의 기억이 남아 있는 곳이다.
그 기억 위에 ‘돌봄’이라는 현재를 덧입힐 수 있다면 그 교실은 다시 사람의 마음을 배울 수 있는 공간이 된다.

 

다시 오고 싶은 공간, 사람과 동물의 속도가 닮은 곳

기자는 돌아오는 길에 운동장 가장자리에 놓인 벤치에 앉았다.
낮잠을 자고 일어난 강아지 한 마리가 졸린 눈으로 다가왔다.
기자는 그 아이의 머리를 살짝 쓰다듬고, 한참 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그 짧은 순간이 이 하루의 감정을 가장 잘 설명해주고 있었다.

폐교가 폐허로 남는 게 아니라 돌봄의 공간으로 재탄생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단지 구조 변경이나 시설 리모델링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사람의 마음, 느린 속도, 조용한 관심이 함께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기자는 이 폐교 힐링센터를 떠나며 ‘치유’란 결국 함께 있는 것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사람에게도, 동물에게도 그런 공간이 더 많이 필요하다고. 그리고 언젠가, 반려동물과 함께 이 교실을 다시 찾아올 날을 기다리겠다고.

 

교실이라는 공간이 주는 특별한 안도감

기자는 생각했다. 왜 이 공간이 이렇게 편안하게 느껴졌을까.
그 이유는 아마도 ‘교실’이라는 장소가 사람에게 이미 익숙한 기억의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는 처음 글을 배운 곳이고, 누군가는 처음 친구를 사귄 곳. 그 모든 감정이 쌓였던 장소가 이제는 동물과 사람 모두에게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주는 공간으로 바뀐 것이다.
단지 책상과 칠판을 치우고 개집과 쿠션을 놓았을 뿐인데 그 변화는 생각보다 훨씬 깊고 조용하게 사람의 마음에 닿았다.

학교가 주는 질서와 정서는, 반려동물에게도 안전함을 느끼게 해주는 배경이 된다.
기자는 교실 구석에서 자고 있던 노령견 ‘순이’를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순이는 낯선 사람에게 경계심이 없었고, 기자 옆에 조용히 와서 등을 기대고 앉았다.
그 순간, 기자는 이 공간이 단지 아름답게 꾸며진 장소가 아니라 무언가를 받아들일 준비가 된 장소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물리적 리모델링보다 더 중요한, 감정의 구조였다.

 

폐교는 여전히 사람을 가르친다

돌아오는 길, 기자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폐교는 수업이 멈춘 곳이지만, 배움은 여전히 존재하는 장소라는 것. 교과서와 시험지는 없지만 사람과 동물이 서로에게 주는 온기와 감정이 자연스럽게 흐르고 있었다.
그 배움은 지식이 아니라 공존에 관한 것이었고 그 교실은 여전히 누군가에게 ‘처음’을 가르치는 장소가 되고 있었다.

기자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이곳을 단지 특이한 공간 사례로 남기지 말자고. 이 폐교는 삶의 속도, 관계의 의미, 그리고 돌봄의 가치를 되돌아보게 만든 장소였으니까.
그리고 언젠가 더 많은 폐교들이 이처럼 조용하지만 의미 있는 공간으로 다시 살아나길 바란다.
그 안에서 사람과 동물이 함께 머물고 조용한 교실 안에 또 다른 웃음과 기억이 차곡차곡 쌓여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