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처음 그 영화를 보았을 때보다, 그 장소를 더 오래 기억하게 될 줄은 몰랐다.
별이 총총 뜬 하늘 아래, 바람에 흔들리는 스크린, 그리고 폐교 운동장에 펼쳐진 돗자리 위의 조용한 관객들. 이곳은 강원도 홍천의 작은 마을에 위치한 폐교 운동장이었고 하룻밤 동안 ‘작은 야외영화제’가 열리고 있었다.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이 마을 영화제는 비록 규모는 작지만 그 어느 영화관보다 감정의 깊이가 깊었다.
폐교는 20년 전 문을 닫은 초등학교였다.
현재는 주민 공동체에서 관리하며 문화 행사 공간으로 활용 중이며 이번 야외영화제는 마을 청년들이 기획해 처음으로 시도된 행사였다.
기자는 ‘작은 폐교에서 열리는 진짜 영화관’을 보기 위해 밤길을 달려 이 마을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날의 기억은, 하나의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다.
폐교 운동장이 영화관이 되기까지의 하루
행사는 오후 5시부터 준비가 시작됐다.
마을 주민들과 청년 기획단은 운동장 중앙에 스크린을 설치하고 사운드 시스템을 점검하며 돗자리와 의자를 배치했다.
기자는 그 과정을 조용히 지켜보며 이 영화제가 단순한 관람 행사가 아니라 하나의 마을 축제라는 걸 느꼈다.
아이들은 운동장을 뛰어다녔고 어르신들은 준비된 좌석에 앉아 서로 안부를 나누었다.
누군가는 팝콘을 튀기고 있었고 누군가는 손수 담근 식혜를 보냉통에 채워 나눠주었다.
그 풍경은 서울의 대형 영화관과는 너무도 달랐지만 그렇기에 더 정겹고 진심이 느껴졌다.
스크린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누군가는 웃음을 터뜨렸고 사운드가 잠시 끊기면 사람들이 함께 손짓으로 알려줬다.
이 모든 것이 완벽하지 않았지만 그렇기에 더 ‘현실적인 예술’로 다가왔다.
별빛 아래에서 본 영화, 그리고 감정
상영된 영화는 독립 다큐멘터리 한 편이었다.
농촌 마을에서 살아가는 젊은 부부의 이야기였고 카메라 너머의 풍경은 이 마을과 너무도 닮아 있었다.
기자는 스크린을 바라보다가 문득 화면보다 하늘을 더 오래 바라보고 있었다.
스크린과 별, 영화와 현실, 빛과 어둠이 하나의 공간 안에 공존하고 있었다.
옆에 앉은 아이는 영화를 다 보지 못하고 잠들었고 그 아이를 안은 어른은 조용히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디에도 광고가 없었고, 어디에도 상영 시간이 표시되지 않았지만 그 모든 자유로움이 오히려 감정에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날 기자는 ‘야외 영화관’이란 말의 진짜 의미를 처음으로 느꼈다.
영화가 끝난 후, 아무도 바로 자리를 뜨지 않았다.
누군가는 조용히 박수를 쳤고 누군가는 스크린 옆의 마이크에 서서 짧은 감상을 전했다.
기자는 말없이 앉아 있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왜 이 장면이 이렇게 오래 남을까?”
폐교라는 공간이 주는 감정의 여백
이 영화제가 특별했던 이유는 단지 ‘장소의 독특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기자는 폐교라는 공간이 주는 ‘정서적 여백’이 사람의 감정을 더 깊게 받아줄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영화 상영은 일시적이지만 그 영화가 상영된 공간은 기억으로 남기 때문이다.
운동장의 낡은 철봉과, 금이 간 시멘트 바닥 그리고 잡초가 무성한 구령대 아래에서 바라본 영화는 도시의 대형 상영관에서는 결코 재현할 수 없는 감정선을 만들었다.
사람들은 그 감정의 깊이를 따라 조용히 웃고, 조용히 눈물짓고, 조용히 떠났다.
운영진은 말한다.
“이 영화제를 매년 열 계획입니다.
폐교가 더 이상 버려진 공간이 아니라 기억이 다시 만들어지는 장소가 되기를 바라고 있어요.”
기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바람은 이미, 그날의 밤에 이루어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시 별이 뜰 때, 다시 시작될 영화
기자는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생각에 잠겼다.
그날 밤, 영화보다 더 오래 남은 장면은 별이 비추던 운동장, 스크린 앞에 앉은 마을 사람들의 표정, 그리고 바람에 펄럭이던 흰 천이었다.
그 모든 풍경은 기자에게 하나의 ‘느린 영화’처럼 다가왔다.
폐교라는 공간이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가능성, 그리고 그 가능성이 실제로 삶의 일부가 되고 있다는 사실.
그건 단지 문화행사를 기획한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기자는 이 야외영화제가 앞으로 더 많은 마을과 폐교에서 다시 열리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다음에 또 별이 총총 뜬 밤에 다른 마을의 운동장에서 낯선 영화가 다시 한 번 상영되기를 기대하며 기자는 조용히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날 밤의 영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기술보다 공간이 주는 진짜 몰입감
기자는 도시에서 자주 가던 멀티플렉스 영화관을 떠올렸다.
최신 음향, 고해상도 스크린, 편안한 리클라이너 좌석. 하지만 그 모든 기술이 아무리 훌륭하더라도 이 폐교 운동장에서 경험한 감정과는 전혀 다른 결의 것이었다.
이곳에서는 ‘기술적 몰입’보다 ‘정서적 몰입’이 훨씬 강했다.
작은 화면, 낮은 음량, 간헐적으로 울리는 귀뚜라미 소리, 그런 외부 자극조차 이 영화제의 일부처럼 느껴졌다.
사람들은 기술이 아니라 공간의 분위기에 몰입하고 있었다.
영화 한 장면이 바람과 함께 흔들리는 나뭇잎 그림자에 섞였고, 주인공의 대사가 별빛 사이를 지나 마을 전체에 퍼져나가는 것 같았다.
기자는 깨달았다.
영화는 ‘보는 것’이 아니라 ‘머무는 것’일 수도 있구나. 이 폐교 운동장에서는 관람이 아니라 ‘머무름’이 이뤄지고 있었고, 그 시간이야말로 진짜 예술의 본질에 가까웠다.
어른에게도 필요한 낭만, 폐교가 열어주는 감정의 문
영화를 본 사람들 중엔 70대 어르신도 있었고 아이 손을 잡고 온 젊은 부부도 있었다.
기자는 행사 후 청소를 도우며 한 어르신과 나눈 짧은 대화를 지금도 기억한다.
“어릴 때 이 운동장에서 체육대회도 하고, 졸업도 했지. 이렇게 다시 불 켜지니까 마음이 따뜻해졌어요.”
그 말 한 마디가, 이 야외 영화제가 왜 필요한지를 설명해줬다.
폐교는 단지 건물이 아니라 기억의 그릇이다.
그곳에 다시 불이 켜지고, 소리가 돌아오고, 무언가를 함께 바라보는 시간이 생긴다면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 기억과 다시 연결된다.
기자는 이 경험을 통해 느꼈다.
낭만은 나이와 상관없고, 추억은 다시 불러올 수 있다는 것. 폐교는 그 문을 다시 열어주는 장소가 되어주고 있었다.
언젠가 또 다른 마을의 스크린 앞에서
영화가 끝난 후 기자는 운동장을 천천히 걸었다.
발 아래 모래가 부드럽게 느껴졌고, 뒤돌아본 스크린은 여전히 하얀 천으로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아직 끝나지 않은 영화의 엔딩씬처럼 느껴졌다.
기자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 장면은 기억 속에 오래 남겠구나.”
집으로 돌아가는 길, 기자는 벌써 다른 마을의 폐교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곳에서도 누군가 이와 비슷한 영화를 상영하고 있을까?
혹은 내년 이맘때, 다시 이곳에서 새로운 영화가 시작될까?
폐교는 끝이 아니라 시작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다시 모이고, 감정이 공유되고, 무언가를 함께 바라볼 수 있다면 그 공간은 다시 ‘살아 있는 장면’이 된다.
기자는 다음 영화의 첫 장면을 기다리며, 이번 영화제의 마지막 장면을 조용히 가슴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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