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완도. 푸른 바다와 섬이 이어지는 이곳은 예부터 해조류의 고장으로 불려왔다. 그중에서도 다시마는 완도 어민들에게 단순한 수확물이 아닌 삶의 일부다. 파도가 잔잔한 봄이면 바닷속 줄기마다 다시마가 자라나기 시작하고, 해무가 잦은 초여름이면 줄기를 따라 윤기 나는 갈색잎이 물 위로 올라온다. 그리고 누군가는 매일 새벽, 이 바닷속 생명을 확인하러 배를 띄운다.
완도에서 다시마만을 30년 넘게 키운 한 농부가 있다. 그는 어업이 아니라 농사라고 말한다. “바다에서 자라지만, 다시마도 농작물이에요. 종자 심고, 자라고, 수확하고, 말리고… 똑같이 땅 위 농사랑 같아요.” 그의 하루는 바다의 시간에 맞춰 움직인다. 바람이 센 날은 나가지 않고, 해류가 좋은 날은 새벽 4시 배를 타고 나간다.
이 글은 완도의 다시마 농부가 어떻게 바다를 일구고,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다시마라는 건강한 식재료의 이면에 어떤 노동과 기술, 기다림이 있는지. 그리고 우리 식탁 위에 오르기까지 그 모든 과정을 지켜낸 한 사람의 이야기다.
다시마는 바다가 기른다, 사람은 돕는 것뿐
다시마는 11월에서 12월 사이에 바다 밧줄에 종자줄을 매다는 일로 시작된다. 종자줄은 다시마의 씨앗이 붙은 실처럼 생긴 해조류 줄기다. 농부는 이를 바다에 띄운 부표 아래 단단히 묶는다. 이후 바닷속에서 겨울과 봄을 지나는 동안 다시마는 스스로 자란다. “사람이 자라게 하는 게 아니라, 바다가 품어주는 거예요.” 그는 자연을 신뢰한다.
하지만 이 농사에는 정밀함이 필요하다. 다시마는 수온이 1015도일 때 가장 잘 자라며, 수심 37미터 사이에서 빛과 영양을 가장 잘 흡수한다. 그래서 농부는 매일 바닷물의 염도, 수온, 조류 속도 등을 점검한다. “파도 높이만 봐도 오늘 다시마 상태가 어땠을지 감이 와요.” 이것은 데이터를 넘는 ‘감각의 농사’다.
수확은 보통 5월에서 6월 사이, 짧게는 한 달 남짓 이루어진다. 이 시기를 놓치면 다시마는 질겨지고 상품성이 떨어진다. 그래서 그 시기엔 매일 새벽부터 오후까지 반복해서 바다를 오간다. 다시마는 배 위에서 길게 꺼내 올려져 망에 담기고, 육지로 옮겨져 곧바로 건조장으로 이동된다. 다시마의 향과 영양은 수확과 건조 속도에 따라 품질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햇빛, 바람, 습도, 그날의 기운까지 다 맞아야 진짜 다시마가 돼요.” 그는 인공 건조기를 쓰지 않는다. 자연광과 해풍만으로 말린 다시마는 빛깔이 진하고, 끓였을 때 육수가 맑고 깔끔하다. 이처럼 다시마 한 장에는 바다의 조건과 사람의 손, 하늘의 날씨까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육수의 기본, 건강한 식재료로 돌아오는 바다의 선물
완도 다시마는 전국적인 명성을 가지고 있다. 특히 맑고 깊은 맛의 육수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요리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 강한 감칠맛이 있으면서도 비리지 않고, 오래 끓여도 탁해지지 않는다. 이 농부의 다시마는 그런 ‘완도 다시마’ 중에서도 품질이 좋기로 소문나 있다.
그의 단골 고객은 식당, 사찰, 반찬공장 등 다양하다. 모두 입을 모아 말한다. “이 집 다시마는 냄새부터 달라요. 물에 넣자마자 바다 냄새가 나요.” 그는 다시마를 포장할 때도 일반 비닐이 아니라 천으로 된 포장지를 쓴다. 숨을 쉴 수 있게 해주어, 배송 중에도 다시마 특유의 향이 유지된다고 한다. “다시마도 살아 있는 식재료예요. 그걸 죽이지 않으려면 사람도 정성을 다해야죠.”
최근에는 젊은 층의 소비도 늘었다. 집에서 국물 내기용으로는 물론, 다시마 스낵, 부각, 샐러드용 생다시마로도 활용된다. 이 농부는 그런 변화에 맞춰 손질된 미니 다시마, 볶음용 다시마 채 등 제품 라인업도 다양화했다. 그러나 기본 철학은 늘 같다. “많이 팔겠다는 생각보다, 바다에 해가 가지 않도록 수확하는 게 먼저예요.”
그는 다시마를 마케팅하지 않는다. 대신 다시마를 소개하는 법, 삶는 법, 냉동 보관법 등을 직접 글로 써서 동봉해 보낸다. 이유는 하나. “제 다시마는 정성 들여서 키웠으니, 드시는 분도 정성 있게 다뤄주셨으면 좋겠어요.” 식재료를 소비재가 아닌 생명처럼 여기는 그 마음이, 많은 이들에게 신뢰로 다가간다.
파도처럼 반복되는 삶, 그러나 결코 같은 날은 없다
이 농부의 하루는 단순하다. 새벽 4시 기상, 바다 상황 체크, 채취, 운반, 건조, 포장. 같은 일의 반복처럼 보이지만, 그는 말한다. “다시마는 매일 다르게 자라고, 바다도 매일 다르게 숨 쉬어요. 어제와 같은 날은 단 하루도 없어요.” 이 말은 단순한 시적 표현이 아니라,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의 체감이다.
최근 그는 바다환경 변화에 따른 걱정도 털어놓는다. “해수 온도가 오르면 다시마가 상해요. 바다가 병들면 사람 밥상도 병드는 거죠.” 그래서 그는 인근 어민들과 함께 해초숲 복원 프로젝트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다시마가 자랄 수 있는 바다 환경을 되살리기 위한 작은 실천이다.
그의 아들은 도시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 3년 전 고향으로 내려왔다. 지금은 아버지와 함께 다시마 농사를 배우며, 자연 속 지속 가능한 먹거리에 관심을 두고 있다. “처음엔 힘들었는데, 지금은 이 바다가 내 몸 같아요.” 아들은 그 말을 하며 다시마 줄기를 정성스레 정리한다. 전통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이어지고 있는 순간이다.
완도의 바다는 오늘도 조용히 다시마를 키우고, 사람은 그것을 지켜본다. 바다와 농부, 해초와 소비자, 자연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고리로서 다시마는 그저 식재료가 아니다. 그것은 건강한 바다와 삶을 연결하는 가장 순한 방식의 농사이자, 우리의 밥상에 오르는 조용한 생명의 기록이다.
'장인을찾아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천 약초시장 상인, 산과 사람 사이에서 이어지는 거래 (0) | 2025.07.01 |
---|---|
정선 산골의 꿀 장인, 야생 벌과 함께한 30년의 기록 (0) | 2025.06.30 |
청송 전통 장칼국수집, 밀가루 반죽으로 이어가는 어머니의 손맛 (0) | 2025.06.30 |
강진 청자 가마터 장인, 흙과 불로 빚은 고려의 시간 (0) | 2025.06.30 |
대구 약령시 전통 한약방 주인, 현대인에게 맞춘 한방 철학 (0) | 2025.06.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