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장인을찾아서

제천 약초시장 상인, 산과 사람 사이에서 이어지는 거래

 충북 제천은 오래전부터 약초의 고장으로 불렸다. 백운산과 월악산 자락을 끼고 있어 야생 약초 자생지가 많고, 그걸 직접 캐고 말려 거래하는 전통도 자연스럽게 뿌리내렸다. 제천 약초시장은 그 전통의 중심이다. 시장에 들어서면 진하게 배인 약초 냄새가 먼저 반긴다. 인삼, 황기, 더덕, 산마, 오가피… 이름을 몰라도 향으로 구별되는 이 공간은 여전히 ‘사람과 자연이 직접 만나는 시장’이다. 

이곳에서 30년 넘게 약초를 팔아온 상인이 있다. 그는 약초를 파는 게 아니라, 산을 팔고 사람을 돕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에게 약초는 단지 건조된 뿌리가 아니라, 땀과 계절이 묻은 생명체다. 봄엔 산을 오르고, 여름엔 말리고, 가을엔 손질하고, 겨울엔 고객을 맞이한다. 이 반복 속에서 그는 몸이 아니라 ‘감각’으로 일한다. 약초는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지만, 사람의 건강은 매일 달라진다. 그는 그 차이를 읽는 일을 한다.

제천 약초시장의 약재가 자라는 산의 자연 풍경

 

약초는 약이 아니라 시간이다

 그가 파는 약초는 대부분 제천 인근의 산에서 직접 채취되거나, 오랫동안 거래해온 약초꾼들에게서 들어온다. 그는 약초를 눈으로만 보지 않는다. 손에 들어보고, 꺾어보고, 냄새를 맡아본다. “황기는 꺾으면 속이 붉어야 하고, 백수오는 진액이 살아 있어야 해요. 좋은 약초는 설명 안 해도 손이 먼저 알아요.”

대부분의 약초는 자연 상태에서 자란 것들이다. 농약이나 비료를 쓰지 않아 색은 예쁘지 않지만, 향과 힘이 다르다. 그는 이런 약초를 가공하지 않고 그대로 판다. 말리고, 다듬고, 봉지에 담고, 설명서를 써 붙이고. 이 모든 과정을 혼자 한다. 그리고 매일 새벽 시장에 나와 약초를 진열하면서도 여전히 냄새를 맡고, 건조 상태를 확인한다. “건조가 지나치면 죽은 약초가 돼요. 너무 덜 말리면 곰팡이 납니다. 약초는 살려서 팔아야 해요.”

한약방도 아니고 전문 한의사도 아닌 이 상인이 고객들의 신뢰를 얻는 이유는 그가 사람을 먼저 보고 약초를 고르기 때문이다. "손이 찬 분이면 따뜻한 약초를, 열이 많은 분이면 순한 걸 권하죠." 정확한 진단은 할 수 없어도, 그는 수십 년 간 사람들의 몸 상태를 관찰해오며 쌓인 노하우를 갖고 있다. 실제로 일부 한의원이나 건강원도 그에게 약초를 받아간다. 그 이유는 “정직하게 다룬 재료는 그 자체로 약이 되기 때문”이라는 것.

그는 약초를 단순한 건강 보조제가 아니라, 사람의 삶과 맞닿은 생명체로 여긴다. 먹고 마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삶의 균형을 다시 잡기 위한 도구로 약초를 파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약초의 이름보다 사람의 상태를 더 오래 기억한다. "두 달 전 폐가 안 좋다던 분, 지금은 몸 좋아지셨을까…" 그런 마음이 손님을 다시 시장으로 불러들인다.

 

시장은 거래가 아니라 기억으로 쌓인다

 제천 약초시장은 그저 물건을 사고파는 곳이 아니다.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은 거래보다는 기억에 가깝다. 한 번 온 손님은 ‘고객’이 아니라 ‘지인’이 된다. 상인은 손님 이름은 몰라도, “백수오 아주머니”, “간 보신 삼 형제”, “위 약초만 찾는 선생님”처럼 특징을 기억한다. 그리고 다음에 왔을 때, 지난번 몸 상태와 어떤 약초를 드렸는지 기억하고 있다.

이 상인은 직접 약초를 먹는 방법도 알려준다. 끓이는 시간, 물의 양, 궁합이 맞는 재료까지 자세히 설명하고, 종이에 손글씨로 써서 함께 넣어준다. “팔았다고 끝이 아니에요. 몸에 넣는 거잖아요. 잘 드시고, 진짜 도움 됐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그는 포장도 신경 쓴다. 약초가 숨을 쉴 수 있도록 구멍 난 종이봉투에 담고, 너무 오래 된 약초는 아예 폐기한다. 유통기한 대신, 상인의 양심이 기준이다.

그의 단골 중에는 암 수술 후 회복 중인 환자도 있고, 자녀가 아토피가 있어 민간요법을 찾는 부모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종종 편지를 보내거나, 전화로 고마움을 전한다. "그 약초 덕분에 힘이 났어요." 그는 그 말을 들을 때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누군가의 삶에 조금이라도 힘이 되었다는 사실이 더 값지다는 것이다.

요즘처럼 건강기능식품이 넘쳐나는 시대에, 손으로 고르고, 삶고, 정리해 건네는 약초는 느리고 비효율적일 수 있다. 하지만 그 느림 속에는 사람을 향한 진심과, 자연을 향한 존중이 있다. 그게 이 상인이 지금도 시장에서 약초를 파는 이유다. 그는 말한다. “몸이 아플 때 병원도 좋지만, 시장에 한 번 들러보세요. 말 한마디에 낫는 병도 있어요.”

 

사라져가는 것처럼 보여도, 분명히 남아야 할 손의 기술

 제천 약초시장도 변화의 물결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상인의 수는 줄었고, 젊은 세대는 약초를 낯설어한다. 심지어 일부 상점은 공장에서 가공한 약초를 수입해 판매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 상인은 여전히 손으로 말리고, 손으로 담는다. “누군가는 이 방식을 남겨야죠. 다 편해지면, 정성은 없어지니까요.”

그는 지금도 해마다 봄이면 약초 산지로 직접 올라간다. 몸은 예전만 못하지만, 흙을 밟고 약초가 자라는 모습을 보면 에너지가 생긴다고 한다. 약초가 자라는 자리는 햇빛, 그늘, 바람, 흙의 습도에 따라 다르고, 그 차이를 느끼는 것이 바로 약초를 아는 첫걸음이라고 말하며  손으로 배울 수 있는 약초학교라고 부른다.

최근에는 아들이 그의 곁에 잠시 머물며 약초 손질을 배우고 있다. 도시에서 디자인 일을 하다 지쳐 내려온 아들은 아버지의 일을 새삼스럽게 존경하게 되었다고 한다. “디자인은 눈으로 보이지만, 약초는 향과 손맛으로 기억돼요.” 그는 아버지의 방식은 느리고 비효율적이지만, 그 안에 담긴 이야기가 사람을 다시 붙잡는다는 걸 느끼고 있다.

이 상인의 약초 가게 구석에는 손님이 남긴 메모들이 가득 붙어 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어머니가 회복하셨어요.”, “이 약초 덕분에 기력이 돌아왔어요.” 그것은 광고보다 강한 증거이자, 이 시장이 단지 ‘물건을 파는 공간’이 아닌 기억과 신뢰가 쌓이는 공간임을 보여주는 증표다. 오늘도 그는 같은 자리에 앉아 약초를 손질하고, 손님의 기침 소리에서 내음을 읽는다. 그곳은 여전히 약초의 향기로 숨 쉬는, 느리지만 진짜가 살아 있는 제천 시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