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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을찾아서

강진 청자 가마터 장인, 흙과 불로 빚은 고려의 시간

 전라남도 강진은 고려청자의 본고장이다. 산과 바다 사이에 자리 잡은 이 조용한 땅은, 과거 고려 왕실에 바칠 청자를 굽던 수많은 가마터가 있던 곳이다. 맑고 깊은 비취색의 청자 하나에 담긴 온기와 빛깔은 단순한 도자기를 넘어, 한국 도예문화의 정수로 평가받는다.

강진 외곽의 한 마을. 지금도 매일 흙을 다지고 불을 지피는 이가 있다. 고려시대부터 내려온 가마터 바로 옆에서 40년 넘게 청자를 굽고 있는 한 장인이다. 그는 "청자는 빛깔보다 마음을 담는 그릇"이라 말한다. 기술은 반복으로 완성되지만, 그릇에 담기는 감정과 철학은 하루아침에 쌓이지 않는다.

이 글은 단순히 청자 만드는 과정을 소개하는 글이 아니다. 강진이라는 지역의 역사, 흙이라는 생명체, 그리고 불이라는 자연의 힘을 빌려 시간을 빚어온 한 장인의 이야기다. 그 속에는 한국 도자의 뿌리뿐 아니라, 느리고 정직하게 쌓아온 장인정신의 가치가 그대로 담겨 있다.

통 가마 앞에서 청자를 꺼내는 강진 도예 장인의 작업

 

강진 청자, 흙을 고르고 다지는 손끝 – 한 점의 그릇은 땅에서 시작된다

 청자는 흙에서 시작된다. 강진의 장인은 도예에 적합한 점토를 찾기 위해 매년 직접 산속을 오른다. 고려시대 가마터 주변에서 나오는 천연 점토는 유난히 입자가 곱고 유연하다. "흙을 만져보면 안다"는 그의 말처럼, 도자기는 재료를 고르는 순간부터 결과가 정해진다.

점토를 채취하면 일주일 넘게 불순물을 제거하고 숙성시킨다. 이 과정을 '점토 숙성'이라 부르는데, 점토가 스스로 안정을 찾고 물성과 탄력을 회복하는 시간이다. "흙도 숨을 쉬어야 해요. 억지로 빚으면 깨지기 마련이죠." 숙성된 흙은 이후 물레 위에 올려져 형태를 갖춘다.

이 장인은 기계식 틀이나 금형을 쓰지 않는다. 오직 손과 물레만으로 형태를 만든다. 물레가 돌아가는 동안 그는 손의 압력과 속도를 조절하며, 미세한 비율의 변화에도 집중한다. 특히 청자의 곡선은 직선보다 표현하기 어려운데, 그만의 방식으로 자연스러운 곡선미를 구현해낸다. "그릇은 쓰임보다 감정을 담는 그릇이 돼야 해요. 손으로 만든 그릇엔 그날의 기분도 같이 담깁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초벌 청자는 며칠 동안 건조된 후 가마에 들어가기 전까지, 다시 손으로 정리되고 확인된다. 형태가 완벽하더라도 작은 균열이나 기포 하나로 작품 전체가 망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청자 한 점이 만들어지기까지 최소 보름, 길게는 한 달이 걸린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은 ‘눈’보다 ‘손’으로 느끼며 진행된다.

 

고려의 불, 지금의 불 – 청자를 구워내는 시간의 온도

 이 장인의 가마는 전통 방식의 ‘도연식(倒焰式)’ 가마다. 불길이 아래서 위로 올라오며 온도를 서서히 올리는 구조다. 이 방식은 가마 전체에 열을 고르게 퍼뜨릴 수 있지만, 불 조절이 어렵고 작업자에게도 큰 부담이 된다. 그러나 그는 30년 넘게 이 가마만 고집한다. "전통 방식이 힘은 들지만, 그 불맛이 있어요. 청자 색이 살아나려면 이 불이 필요합니다."

가마는 보통 이틀에서 사흘간 연속해서 불을 땐다. 나무 장작은 고르게 타야 하고, 온도는 1250도를 넘지 않아야 한다. 장작의 종류에 따라 연기의 향이 달라지고, 이것이 유약의 색과 질감에도 영향을 준다. 그래서 그는 장작도 직접 준비하고, 사철 내내 나무를 말려 둔다.

청자의 유약은 흙과 잿물, 그리고 철분으로 만든다. 이 유약이 도자기에 발려 가마 속에서 녹으면서 고유의 비취색을 띠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유약은 온도와 습도, 불길의 세기 등 수많은 변수를 타기 때문에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다. "가마는 내가 다룬다기보다, 나는 가마와 대화하는 사람일 뿐이에요."

가마에서 꺼낸 청자들은 모두 같은 온도, 같은 유약을 썼더라도 미세하게 색이 다르다. 그것이 수공예의 매력이다. 그는 실패작도 작품이라고 말한다. "깨지거나 색이 달라져도 그건 그 나름의 시간이 있는 거죠. 우리는 완벽한 물건을 만드는 게 아니라, 시간과 감정이 담긴 결과를 만드는 사람입니다."

 

청자를 넘어서 전통을 잇는다는 것

 강진 청자는 UNESCO 인류무형문화유산 잠정목록에도 올라 있다. 하지만 청자를 실제로 굽는 장인의 수는 줄어들고 있다. 전통을 계승하려는 젊은이도 적고, 경제적 수익이 높지 않아 대부분의 가마는 관광 상품화되었다. 그 속에서도 이 장인은 오롯이 제작에 집중하며 살아간다. 그의 삶은 청자를 위한 것이고, 청자는 곧 그의 시간이다.

그는 요즘도 초등학생 체험 학습이나 예술 전공 대학생들이 오면 작업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들에게 단순히 도자기 만드는 법을 가르치지 않는다. 대신 그는 흙을 고르고, 손으로 빚고, 가마 앞에서 불을 지키는 긴 시간과 정성의 가치를 이야기한다. "청자는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느끼고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예술입니다."

그의 청자는 최근 일본, 프랑스, 독일 등으로도 소량 수출되고 있다. 대량 생산이 아닌, 작품처럼 완성된 소수의 그릇들이 갤러리와 레스토랑, 고급 찻집 등에 놓인다. 특히 외국인들은 청자의 색과 유려한 곡선, 그리고 무엇보다 ‘불확실함’에서 오는 독창성에 매력을 느낀다. “같은 게 하나도 없다는 게 좋대요. 매번 다르게 태어난다는 게 살아 있다는 거라고요.”

이 장인의 하루는 여전히 흙으로 시작되고, 불로 끝난다.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과정, 반복 속에 새로움을 만드는 작업. 그는 그렇게 오늘도 하나의 청자를 완성한다. 그것은 단지 도자기가 아니라, 흙·불·사람·시간이 함께 어우러져 탄생한 고려의 기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