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장인을찾아서

정선 산골의 꿀 장인, 야생 벌과 함께한 30년의 기록

 강원도 정선. 고산지대 특유의 청량한 공기와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이 땅은, 자연 그대로의 야생이 살아 숨 쉬는 곳이다. 사람보다 나무가 더 많고, 자동차보다 새소리가 먼저 들리는 이 산골에서 누군가는 30년 넘게 벌과 함께 살아왔다. 단순한 양봉이 아니라, 야생벌을 기르고 보호하며, 꽃 피는 계절을 기다려 꿀을 채밀하는 일을 평생의 업으로 삼은 사람. 그가 바로 이곳 꿀 장인이다.

처음에는 생계를 위해 시작했지만, 지금은 벌을 지키는 일이 삶의 철학이 되었다. 그는 말한다. “꿀을 얻는 건 벌을 돕는 대가일 뿐, 자연에서 가져온 게 아니라 자연이 허락한 거예요.” 그 말에는 생명에 대한 존중과 시간에 대한 경외가 담겨 있다.

이 글은 단순히 꿀의 효능이나 양봉 기술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한 사람이 자연과 벌을 어떻게 이해하고 공존하며, 산골 깊은 곳에서 지켜낸 고유의 방식으로 꿀을 만들어온 기록이다. 꿀보다 더 진한 삶의 이야기, 그리고 잊혀가는 자연 속 기술의 가치를 함께 담았다.

자연 채밀 중인 꿀벌과 벌집 속 천연 꿀

 

정선 꿀은 기술이 아닌 자연의 시간에서 얻는 것

 정선의 이 꿀 장인은 일반적인 양봉 방식과 다르게, 야생 벌통을 산속에 숨듯이 놓고 키운다. 벌은 사람이 다가오지 않는 높은 곳에서, 스스로 꽃을 찾아다니며 꿀을 만든다. 그래서 이 꿀은 단맛보다 먼저 꽃 향기와 약초의 쌉쌀함이 느껴진다. “참기름처럼 진한데, 절대 끈적이지 않아요. 그게 진짜 꿀이에요.” 그는 진짜 꿀은 달기만 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꿀을 채밀하는 시기도 아주 제한적이다. 보통은 봄철(5월 중순~6월 초) 단 한 번, 꽃이 가장 풍성하게 피는 시기를 기다린다. 여름부터는 벌이 다시 겨울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꿀을 채취하지 않는다. “한 번 꺼내면 1년은 그대로 둬야 해요. 벌이 먼저 살아야 꿀도 나는 거니까요.” 그는 꿀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벌을 위한 환경을 지키는 일부터 한다.

벌통도 시중에서 파는 플라스틱 벌통이 아니라, 나무 통이나 지게로 만든 ‘전통 벌통’을 사용한다. 이 벌통은 환기와 통풍이 잘돼 벌들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안정적으로 군락을 유지할 수 있다. 벌이 행복해야 꿀도 좋다는 그의 말은 단순한 감성 표현이 아니라, 오랜 경험에서 우러난 생태적 양봉 철학이다.

이처럼 꿀을 얻기 위해 그가 하는 일은 무척이나 느리고 불확실하다. 해마다 꿀 수확량은 다르고, 어떤 해는 수확을 포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말한다. “자연이 허락하지 않으면 안 해야죠. 그게 내가 지켜야 할 선이니까요.”

 

사람의 손보다 벌의 시간 – 수익보다 공존을 택한 이유

 정선 꿀 장인의 꿀은 시중 꿀보다 가격이 높다. 500g 한 병에 8~10만 원을 호가한다. 그런데도 주문이 몰려 늘 예약 대기자 명단이 생긴다. 이유는 하나다. 꿀의 품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단맛보다 향이 깊고, 혀에 감기는 느낌이 무겁지 않다. 어떤 고객은 말한다. “다른 꿀은 이제 못 먹어요. 이 꿀은 향이 살아 있어요.”

하지만 그는 꿀을 더 많이 팔려 하지 않는다. SNS 마케팅도 하지 않고, 블로그도 운영하지 않는다. 오직 입소문과 단골 손님만을 통해 판매한다. 하루에 꿀을 담는 병도 20병을 넘기지 않는다. “벌이 준 만큼만 나누는 거예요. 더 욕심부리면 벌도, 나도 망가져요.” 그의 말 속에는 양이 아니라 질을 택한 사람의 고집이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벌집이 사라지고, 야생벌 개체 수가 급격히 줄고 있다. 그는 그 원인을 ‘사람의 조급함’이라고 말한다. 농약, 환경오염, 인공 벌통, 과도한 채밀 등 모두 인간의 편리함이 가져온 결과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하는 양봉은 ‘벌을 지키는 일’이라고 정의한다. 실제로 그는 해마다 자연 방사 프로젝트를 통해 어린 벌집을 숲속에 옮겨 풀어놓는다.

그는 자신을 장인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벌한테 얻어먹는 사람일 뿐이죠.” 하지만 그렇게 겸손한 그의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꿀은, 단지 단맛이 아니라 시간, 자연, 생명, 기다림이 함께 숙성된 한 병의 철학이라 할 수 있다.

 

사라지지 않아야 할 단맛 – 꿀 그 이상을 담은 기록

 정선의 이 꿀 장인은 후계자를 찾고 있다. 아들도 딸도 도시에서 각자 삶을 살아가느라 이 일을 잇지는 못한다. 주변에서도 이 일은 너무 힘들고, 불확실하다며 말린다. 실제로 벌에 쏘이는 일은 다반사고, 산속에서 밤을 새우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지속 가능성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그는 말한다. “나라도 이 방식은 끝까지 지켜야죠. 그래야 누군가 다시 시작할 수 있어요.”

그는 요즘 벌과 꿀, 그리고 자연과 공존하는 삶에 대한 생각을 글로 적고 있다. 언젠가 작은 책으로 묶어 출판할 계획도 있다. “벌에 대한 오해가 너무 많아요. 꿀은 그냥 달고 좋은 게 아니라, 그 안에 벌의 노동과 자연의 희생이 있는 거예요.” 이 책은 단지 양봉 기술서가 아니라,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과 태도를 담은 기록이 될 예정이다.

그가 생산하는 꿀은 매해 다르고, 같은 해에도 벌통마다 맛이 다르다. 어떤 병은 꽃향기가 진하고, 또 어떤 병은 약초향이 더 강하다. 그는 그 차이를 벌들이 만들어내는 맛이라고 말한다. 그렇게 해마다 다르고, 예측할 수 없는 꿀이 오히려 사람들의 마음을 더 끌어당긴다. 그 안에 ‘자연 그대로의 시간’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그는 벌통 앞에서 나무를 다듬고, 주변에 잡초를 정리하며, 벌들이 스트레스 없이 지낼 수 있도록 손을 보탠다. 그리고 그 손끝에서 다시 한 방울씩 꿀이 만들어진다. 그 꿀은 단순한 단맛이 아니라, 산과 사람, 벌과 기다림이 함께 만든 생명의 결정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