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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령 솥뚜껑 불고기집, 철판 위에 피어나는 고향의 풍경 경상남도 의령. 나지막한 산이 둘러싸고 있고, 물 맑은 남강이 흐르는 이 고장은 조용하지만 뚜렷한 향토색을 가진 땅이다. 대도시의 번쩍이는 음식점들과는 거리가 있지만, 오히려 그런 느린 흐름 속에서 고향의 맛과 온기가 오롯이 살아 있는 공간들이 남아 있다. 그중에서도 지금 소개할 집은, 낡은 창틀과 낡은 간판 아래에서 여전히 뜨거운 철판 위에 불을 지피고 있는 한 불고기집이다.의령군 한 시골마을 입구, 오래된 주택을 개조해 만든 이 불고기집은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오직 한 가지 메뉴, 솥뚜껑 불고기 하나로 승부를 걸어왔다. 가게 안에 들어서면 연기와 함께 피어나는 구수한 양념 냄새가 코끝을 자극하고, 노랗게 변색된 벽지 위로는 세월이 켜켜이 쌓여 있다. 점심시간이 되기도 전에 마을 어르신들과 외지 단.. 더보기
제천 약초시장 상인, 산과 사람 사이에서 이어지는 거래 충북 제천은 오래전부터 약초의 고장으로 불렸다. 백운산과 월악산 자락을 끼고 있어 야생 약초 자생지가 많고, 그걸 직접 캐고 말려 거래하는 전통도 자연스럽게 뿌리내렸다. 제천 약초시장은 그 전통의 중심이다. 시장에 들어서면 진하게 배인 약초 냄새가 먼저 반긴다. 인삼, 황기, 더덕, 산마, 오가피… 이름을 몰라도 향으로 구별되는 이 공간은 여전히 ‘사람과 자연이 직접 만나는 시장’이다. 이곳에서 30년 넘게 약초를 팔아온 상인이 있다. 그는 약초를 파는 게 아니라, 산을 팔고 사람을 돕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에게 약초는 단지 건조된 뿌리가 아니라, 땀과 계절이 묻은 생명체다. 봄엔 산을 오르고, 여름엔 말리고, 가을엔 손질하고, 겨울엔 고객을 맞이한다. 이 반복 속에서 그는 몸이 아니라 ‘감각’으로 일한.. 더보기
완도 다시마 농부, 바닷속에서 자란 건강한 삶 전라남도 완도. 푸른 바다와 섬이 이어지는 이곳은 예부터 해조류의 고장으로 불려왔다. 그중에서도 다시마는 완도 어민들에게 단순한 수확물이 아닌 삶의 일부다. 파도가 잔잔한 봄이면 바닷속 줄기마다 다시마가 자라나기 시작하고, 해무가 잦은 초여름이면 줄기를 따라 윤기 나는 갈색잎이 물 위로 올라온다. 그리고 누군가는 매일 새벽, 이 바닷속 생명을 확인하러 배를 띄운다.완도에서 다시마만을 30년 넘게 키운 한 농부가 있다. 그는 어업이 아니라 농사라고 말한다. “바다에서 자라지만, 다시마도 농작물이에요. 종자 심고, 자라고, 수확하고, 말리고… 똑같이 땅 위 농사랑 같아요.” 그의 하루는 바다의 시간에 맞춰 움직인다. 바람이 센 날은 나가지 않고, 해류가 좋은 날은 새벽 4시 배를 타고 나간다.이 글은 완도의.. 더보기
정선 산골의 꿀 장인, 야생 벌과 함께한 30년의 기록 강원도 정선. 고산지대 특유의 청량한 공기와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이 땅은, 자연 그대로의 야생이 살아 숨 쉬는 곳이다. 사람보다 나무가 더 많고, 자동차보다 새소리가 먼저 들리는 이 산골에서 누군가는 30년 넘게 벌과 함께 살아왔다. 단순한 양봉이 아니라, 야생벌을 기르고 보호하며, 꽃 피는 계절을 기다려 꿀을 채밀하는 일을 평생의 업으로 삼은 사람. 그가 바로 이곳 꿀 장인이다.처음에는 생계를 위해 시작했지만, 지금은 벌을 지키는 일이 삶의 철학이 되었다. 그는 말한다. “꿀을 얻는 건 벌을 돕는 대가일 뿐, 자연에서 가져온 게 아니라 자연이 허락한 거예요.” 그 말에는 생명에 대한 존중과 시간에 대한 경외가 담겨 있다.이 글은 단순히 꿀의 효능이나 양봉 기술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한 사람이 자.. 더보기
청송 전통 장칼국수집, 밀가루 반죽으로 이어가는 어머니의 손맛 경북 청송, 유네스코 지질공원으로 유명한 이 고장에는 외지인이 잘 모르는 숨은 식당이 하나 있다. 읍내 시장을 지나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야 나오는 이 장칼국수집은 40년이 넘도록 오직 ‘장칼국수’ 하나만을 끓여온 집이다. 식당 간판에는 오래된 페인트가 벗겨졌고, 메뉴판도 바래 있지만, 매일 아침 문을 열자마자 줄이 서기 시작한다.이 집을 지켜온 이는 올해로 일흔이 넘은 한 어머니. 그가 처음 장칼국수를 끓이기 시작한 건 남편을 잃고 세 아이를 키우던 시절이었다. 당장 식구들 입에 들어갈 반찬이 없어, 된장과 고추장을 푼 국물에 밀가루 반죽을 풀어 끓여낸 것이 시작이었다고 한다. "뭐라도 끓여야 했어요. 그래야 아이들 밥을 먹었으니까요." 그 한 그릇은 그렇게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고, 이후 시장 사람들의 .. 더보기
강진 청자 가마터 장인, 흙과 불로 빚은 고려의 시간 전라남도 강진은 고려청자의 본고장이다. 산과 바다 사이에 자리 잡은 이 조용한 땅은, 과거 고려 왕실에 바칠 청자를 굽던 수많은 가마터가 있던 곳이다. 맑고 깊은 비취색의 청자 하나에 담긴 온기와 빛깔은 단순한 도자기를 넘어, 한국 도예문화의 정수로 평가받는다.강진 외곽의 한 마을. 지금도 매일 흙을 다지고 불을 지피는 이가 있다. 고려시대부터 내려온 가마터 바로 옆에서 40년 넘게 청자를 굽고 있는 한 장인이다. 그는 "청자는 빛깔보다 마음을 담는 그릇"이라 말한다. 기술은 반복으로 완성되지만, 그릇에 담기는 감정과 철학은 하루아침에 쌓이지 않는다.이 글은 단순히 청자 만드는 과정을 소개하는 글이 아니다. 강진이라는 지역의 역사, 흙이라는 생명체, 그리고 불이라는 자연의 힘을 빌려 시간을 빚어온 한 장.. 더보기
대구 약령시 전통 한약방 주인, 현대인에게 맞춘 한방 철학 대구 중구에 위치한 ‘약령시(藥令市)’는 조선 시대부터 내려온 전통 약재 시장이다. 35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이 시장은 지금도 골목골목마다 한약 냄새가 진하게 밴 곳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도심 속에서도 이곳만큼은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약재 상점과 한약방들이 모여 있고, 상인들의 말투도 구수하다. 이곳의 한 약방을 40년 넘게 지켜온 한 노약사는 여전히 매일 아침 6시면 문을 연다.그는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사람의 몸은 자연의 이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의 약방에는 현대식 인테리어도, 자동화 시스템도 없다. 다만 책장 가득 한약 고서와, 벽에 걸린 수백 가지 약초 표본, 그리고 오래된 손 저울과 도마만이 존재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사람을 직접 만나는 시간’이다. “.. 더보기
문경 전통 찻집 주인, 다관에서 우려낸 시간의 여백 문경새재 초입, 산자락이 천천히 흐르는 그 언덕길 한쪽에 작은 찻집이 있다. 간판은 ‘다관(茶館)’이라는 손글씨 세 글자뿐. 따로 홍보를 하지 않아도 이곳을 찾는 이들은 꾸준하다. 이유는 단 하나, 이곳에선 '차를 마신다'기보다 '시간을 머무른다'는 감각이 있기 때문이다. 조용한 다실 한켠에 앉아 차를 따르는 소리를 들으면, 일상에 밀려 잊고 지낸 여백의 미가 되살아난다.이 찻집을 운영하는 주인은 올해 예순을 넘겼다. 30대 중반에 도시에서의 삶을 접고 문경으로 내려와 다도(茶道)를 배우며 살아온 지 25년이 넘었다. 지금도 매일 새벽이면 가게 마당의 찻잎을 만지고, 물의 온도를 체크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차를 우리기 전에는 반드시 마음부터 가라앉혀야 합니다."라고 말하는 그의 말투는 늘 낮고 느리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