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냄새가 가득한 교실에서, 내 손으로 만든 의자 하나
도심에서의 삶이 점점 복잡하고 빠르게 흘러갈수록, 사람들은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경험을 더 갈망하게 된다.
손끝에 닿는 나무의 질감, 천천히 깎아낸 나뭇결, 망치 소리와 나무향이 어우러지는 조용한 공간.
기자는 그 모든 감각을 직접 경험해보기 위해 전남 장흥의 한 폐교에 자리한 목공 체험 공방을 찾았다.
이곳은 과거 초등학교였던 건물이 폐교된 후 수년간 방치되다가 지금은 ‘OO목공학교’라는 이름으로 지역 주민과 여행자 모두에게 열려 있는 체험 공간으로 다시 태어난 장소였다.
교실은 여전히 칠판과 창문이 그대로 남아 있었지만 이제는 책상 대신 나무 재료와 공구가 놓여 있고, 선생님 대신 목수 선배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기자는 이곳에서 ‘1일 목공 클래스’를 수강하며 직접 나무 의자 하나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 체험은 단순히 ‘가구를 만든다’는 것을 넘어서, 공간과 나무, 그리고 사람과 연결되는 아주 조용한 감정의 흐름을 안겨주었다.
전남 장흥 폐교를 지키는 손, 목수 선생님의 이야기
이 목공방을 운영하는 사람은 50대 후반의 김창호 선생님이었다.
서울에서 가구 제작소를 운영하던 그는 10년 전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인 장흥으로 내려왔다.
“이 학교는 내가 다녔던 곳이에요. 폐교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냥 지나칠 수 없었죠.”
그는 학교가 사라지는 것이 곧 마을의 기억이 사라지는 것 같아 지자체와 협의해 교실 두 칸을 직접 리모델링해 공방으로 바꿨다고 했다.
리모델링이라고 해도 대단한 인테리어는 없었다.
나무 책상을 해체해 만든 작업대, 교실 의자를 손질해 만든 공구걸이, 칠판은 여전히 남겨두고 거기에 작업 일정과 제작 순서를 손글씨로 써놓았다.
“여기선 느리게 해도 됩니다. 대신 천천히, 바르게 만들면 돼요.”
김 선생님의 말은 단순한 기술 지도가 아니라 삶을 다듬는 방식을 함께 가르쳐주는 듯했다.
나무 의자 하나, 만들기 시작하다
기자가 참여한 프로그램은 ‘원데이 의자 만들기 클래스’였다.
생각보다 재료는 단순했다. 미리 재단된 나무 판재, 끈, 나사, 접착제, 사포.
하지만 그 재료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결과물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었다.
김 선생님은 작업 전에 나무의 결을 손으로 느껴보라고 했다.
“손으로 만져보면 어떤 부분을 더 깎아야 할지, 어디가 살아 있는지 감이 옵니다.”
기자는 처음으로 나무를 ‘보는 것이 아닌 만지는 대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망치질은 생각보다 섬세했고, 사포질은 인내가 필요했다.
서툰 손이 실수할 때마다 김 선생님은 다가와 “괜찮아요, 나무는 실수도 품어요”라고 말했다.
점심은 교무실로 개조된 휴게실에서 도시락으로 함께 먹었고 점심 후 다시 작업에 몰입하면서 서서히 형태를 갖춰가는 나무 의자에 정이 들기 시작했다.
하나하나의 나사 구멍, 미세한 손질의 차이가 점점 내 작업물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었다.
만들어낸 것은 의자였지만, 얻은 것은 감정이었다
5시간에 걸친 작업 끝에, 기자는 드디어 의자 하나를 완성했다.
단단하고 견고하진 않지만, 어딘가 모르게 따뜻하고 익숙한 의자였다.
의자를 완성한 후, 선생님은 기자에게 싸인펜 하나를 건넸다.
“어디든 쓰세요. 만든 사람의 흔적이 있어야 진짜 가구입니다.”
기자는 의자 다리 아래 조심스럽게 이름과 날짜를 적었다.
마치 어린 시절 교과서 첫 장에 이름을 적을 때처럼, 그 순간부터 이 의자는 단순한 물건이 아닌 ‘내 시간의 일부’가 되었다.
작업을 마친 후, 우리는 교실 밖 운동장에서 잠시 바람을 쐬었다.
여전히 학교 종은 녹슬어 있었고, 운동장엔 풀이 무성했지만, 그곳엔 뭔가 살아 있는 기운이 느껴졌다.
이 목공방은 그저 나무를 깎는 곳이 아니라, 사람이 자기 속도를 회복하고, 손끝을 통해 감정을 정리하는 조용한 쉼터였다.
폐교는 기능을 잃었을지 몰라도, 쓰임은 다시 태어난다
전남 장흥의 이 폐교 목공방은 화려하지 않다.
SNS 인증샷을 찍을 만한 포인트도 많지 않고, 상업적인 장치도 거의 없다.
하지만 이곳은 오히려 ‘기억이 오래 남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더 특별하다.
나무로 만든 의자 하나는 집에 가져와 두면 시간이 흐를수록 더 깊은 색을 띤다.
그 의자처럼, 이 폐교도 시간이 갈수록 더 단단하고 따뜻해질 것이다.
사람은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 때 비로소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이 이루어지는 공간이 바로 이곳, 폐교 목공방이다.
기자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 조수석에 놓인 나무 의자를 한참 바라보았다.
그건 단순한 가구가 아니라, 오롯이 내 시간과 집중, 감정이 담긴 결과물이었다.
그리고 이 폐교도 마찬가지였다.
누군가의 시간이 다시 깃든 이곳은, 이제 다시 ‘살아 있는 학교’였다.
손끝에 남은 나무결처럼 오래 남는 기억
며칠이 지나 다시 그 의자에 앉았을 때, 기자는 문득 공방의 공기와 망치 소리, 나무냄새가 떠올랐다.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오랜 시간 무언가에 집중했던 그 하루는 유독 선명하게 기억에 남았다.
의자의 나무결 사이사이에, 그날의 감정과 사소한 생각들까지 고스란히 스며든 듯했다.
장흥의 폐교는 단순한 체험의 공간이 아니라, 마음의 속도를 되찾게 해주는 장소였다.
지금도 그 교실에선 누군가 조용히 나무를 깎고 있을 것이다.
그 손끝의 움직임은 어쩌면 ‘무언가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자신을 다시 만들어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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