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공주, 이름만 들어도 백제의 유산과 역사가 떠오르는 도시다.
하지만 이 도시의 깊숙한 시골 마을,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오지에
한때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던 작은 초등학교가 있었다.
이 학교는 2006년, 학생 수 급감으로 결국 폐교되었고 이후 수년간 사람들의 기억에서도 서서히 사라져갔다.
그러나 바로 그 교실에서 지금은 전혀 다른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도자기를 굽는 가마의 불소리, 아이들이 흙을 빚으며 내는 웃음소리, 그리고 조용한 음악이 흐르는 창작의 공간.
이곳은 이제 도예학교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난,
폐교 리모델링 도예 체험장이다.
기자는 이 도예학교가 단순한 체험 공간이 아니라,
사람과 예술, 공간과 지역이 연결되는 ‘살아 있는 재생 사례’라는 소문을 듣고 직접 방문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공간은, 기대 이상으로 따뜻하고 단단했다.
충남 공주의 낡은 폐교, 도예작가 부부가 찾아냈다, 두 번째 인생의 시작
이 폐교를 처음 발견한 건 공주 근교에서 활동하던 도예작가 부부였다.
도심에서 운영하던 공방이 임대료 부담으로 한계에 부딪힌 상황에서,
보다 넓고 자유로운 창작 공간을 찾던 중 우연히 이 낡은 학교 건물을 소개받았다.
처음엔 담벼락이 무너지고 교실 안에는 비둘기와 먼지만이 가득했지만,
그들은 이 공간에서 ‘흙을 통해 사람과 소통하는 예술학교’를 만들자는 결심을 하게 된다.
교실 두 칸은 도자기 물레실과 핸드빌딩 작업장으로,
또 다른 교실 한 칸은 전시와 휴식이 가능한 소규모 갤러리로 바꾸었다.
운동장 한쪽에는 야외 가마가 설치됐고, 교무실은 티룸으로 꾸며져 방문객과 작가가 함께 차를 마시는 공간이 되었다.
모든 리모델링은 최소한의 비용으로 진행되었고, 벽지 대신 회벽과 나무를 직접 바르고 다듬었다.
그들은 "폐교의 시간이 담긴 재료를 가능한 그대로 살렸다"고 말했다.
단순한 체험이 아닌, 치유와 연결의 공간으로
이곳의 도예 체험은 여느 관광지처럼 단발적인 만들기 수업에 그치지 않는다.
1박 2일 도예캠프, 마음챙김 물레 체험, 어르신 대상 치유 도자기 클래스 등
사람의 감정과 연결되는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다.
기자는 ‘토요일 마음 빚기 수업’에 참여해보았는데,
작가의 따뜻한 진행 아래 참가자들은 말없이 흙을 만지고 조용한 음악을 들으며
자신만의 찻잔, 그릇, 인형 등을 빚어냈다.
"흙은 사람 마음을 비추는 거울 같아요."
작가는 그렇게 말하며, 도예는 정답이 없고 잘하고 못하고도 없다고 강조했다.
그 덕분인지 이곳을 찾는 사람 중에는 심리적 회복이 필요한 이들도 많다고 했다.
청소년 상담 기관과 연계해 진행되는 ‘감정 표현 도예 워크숍’은 특히 인기가 높다고 한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건, 이 공간 자체가 말없이 사람을 위로하는 느낌이었다.
낡은 교실이지만 햇살이 잘 들고, 오래된 나무 창문은 조용한 바람을 들여보냈다.
그 안에서 흙을 만지다 보면 마음이 정리되는 기분이 자연스럽게 찾아왔다.
지역 주민과 함께 만드는 ‘도자기 마을’의 꿈
이 폐교 도예학교는 단순히 작가 중심으로 운영되는 공간이 아니다.
작가 부부는 시작부터 “지역과 함께하는 공방”을 목표로 삼았다.
그래서 매주 수요일에는 마을 어르신을 위한 무료 수업이 열리고,
농한기에는 지역 주민이 만든 도자기를 공동 브랜드로 제작해 '공주흙살림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온라인에서 판매하고 있다.
또한 학교 부지의 일부는 마을 공동 텃밭으로 활용되고 있었고,
운동장 가장자리엔 주민들이 기른 작물들이 심겨져 있었다.
계절마다 열리는 ‘마을 도예 축제’에서는 전시뿐 아니라 바자회, 벼룩시장, 식사 나눔이 함께 이루어져
폐교가 마을 중심지로 다시 기능하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구조 덕분에 도예학교는 단순한 체험장이 아니라,
마을을 움직이는 작은 엔진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예술은 전시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라는 걸 이곳은 조용히 증명하고 있었다.
폐교, 다시 사람의 손을 만나 살아 숨 쉬다
기자는 하루 종일 도예학교에 머무르며, 사람들이 흙을 만지고 웃고 이야기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무너질 뻔한 건물은 이제 다시 숨을 쉬고 있었고,
그 중심에는 사람과 사람, 그리고 예술이라는 연결고리가 있었다.
교실 한편에 전시된 도자기에는 작가의 이름 대신, ‘이장님’, ‘초등학교 3학년 김하늘’ 같은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그건 아마 이 공간의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이었을 것이다.
폐교는 끝이 아니라 가능성이다.
공주의 이 도예학교는 그 가능성을 진심으로 채운 사례다.
기자는 돌아오는 길, 흙으로 만든 작은 찻잔을 품에 안고 있었다.
그 안엔 단지 흙만 담겨 있는 게 아니었다.
시간과 이야기,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이 조용히 담겨 있었다.
흙이 예술이 되고, 폐교가 이야기가 되는 순간
도예학교를 나서는 길에 기자는 운동장에 놓인 작은 흙 조각들을 한참 바라보았다. 그 조각들은 완성된 작품이라기보다, 누군가의 손끝에서 막 피어나기 시작한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흙은 원래 땅에 속해 있었지만, 사람의 손을 만나면서 형태를 얻고, 온기를 품게 된다. 마찬가지로 폐교도 버려진 공간이 아니라, 누군가의 손이 닿는 순간 다시 살아난다. 흙처럼 유연한 공간, 사람처럼 따뜻한 기억, 그리고 예술처럼 유효한 쓰임, 그것이 바로 충남 공주의 이 작은 도예학교가 가진 힘이었다. 기자는 그날 이후로 ‘공간은 어떻게 쓰느냐보다, 누가 어떻게 사랑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걸 다시 한번 깊이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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