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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교 활용공간 리뷰

시골 폐교를 책방으로 바꾼 청년의 이야기

산이 겹겹이 둘러싸인 작은 시골 마을.
아스팔트가 끝나는 도로 끝자락, 버스도 하루 두 번밖에 오지 않는 그곳에,
문을 닫은 지 15년이 넘은 폐교가 있었다.
잡초로 뒤덮인 운동장, 깨진 창문, 녹슨 철문은 이곳이 오랫동안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도 지워졌던 장소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 학교에는 책 냄새가 가득하다.
교실 안엔 3천 권이 넘는 책들이 빼곡히 꽂혀 있고, 동네 아이들이 와서 책을 읽고, 청년 여행자들이 조용히 커피를 마시며 머무는 공간으로 바뀌었다.
이 공간을 만든 사람은 대단한 자본가도, 출판인도 아닌 30대의 평범한 청년 한 명이었다.

기자는 ‘폐교를 책방으로 만든 청년’이라는 소문을 듣고, 그가 어떻게 이 시골 학교를 다시 사람들의 발길이 닿는 공간으로 만들었는지 직접 확인해 보기 위해 이 마을을 찾았다.

 

도시를 떠나 시골 폐교로 들어간 청년의 선택

이 폐교는 2007년에 문을 닫은 후,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던 공간이었다.
처음 이곳에 관심을 가진 건 서울에서 출판사 마케터로 일하던 김진우(가명) 씨였다.
회사를 그만두고 ‘책이 있는 삶’을 꿈꾸던 그는,
한 블로그에서 우연히 ‘지방 폐교 무상 임대’에 대한 글을 보고 이곳을 찾게 되었다.

처음 학교를 봤을 땐 솔직히 마음이 무거웠다고 했다.
“정말 사람이 살 수 있을까 싶은 상태였어요. 창문은 다 깨지고, 벽에는 곰팡이가 피어 있고요.”
하지만 그는 ‘책으로 공간을 다시 채워보자’는 생각을 놓지 않았다.
그는 폐교를 빌리는 조건으로 ‘공공 열람 공간 운영’을 제안했고, 지자체와 협의 끝에 학교 일부를 무상 임대받아 직접 리모델링을 시작했다.

청년은 거의 1년 동안, 주말마다 친구들과 시멘트를 바르고 책장을 짜고, 중고 책을 모아 교실을 채워나갔다.
그렇게 만들어진 공간은 단순한 책방이 아니라, 책과 사람이 머무는 공공 문화 공간이었다.

도시가 아닌 시골 폐교를 책방으로 바꾼 청년의 이야기

책방은 책을 파는 곳이 아니라, 사람이 모이는 곳이었다

책방의 이름은 ‘산속책교실’.
이곳은 책을 팔기도 하지만, 판매보다는 열람과 체류 중심의 공간이다.
교실 두 칸은 북카페 겸 열람실로 운영되고, 한 칸은 독립 출판물 전시 공간, 나머지 한 칸은 ‘조용한 방’으로, 혼자만의 사색을 즐기고 싶은 이들을 위한 공간으로 마련되어 있다.

책은 전부 기증 또는 중고서적으로 구성되었고, 특히 농촌, 생태, 인문, 느린 삶에 관한 책이 많았다.
청년은 “이곳에 어울리는 책만 들여놓는다”며, ‘책이 공간을 닮아야 한다’는 철학을 고수했다.

또한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에는 ‘작은 북살롱’이 열려 지역 주민과 외지인들이 모여 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때로는 작가를 초청해 작은 북토크도 진행된다.
그 자리는 책을 읽기 위한 모임이 아니라, 함께 머무르고 연결되는 장이었다.

 

이 작은 책방이 지역에 미친 변화

‘산속책교실’은 단순히 여행자를 위한 공간이 아니다.
오히려 이곳의 진짜 변화는 지역 주민들에게서 시작됐다.
처음엔 이상한 시선으로 보던 마을 어르신들도, 지금은 매일 아침 신문을 보러 들르거나 손주들을 데려와 책을 읽어준다.

주말이면 근처의 청소년들이 자율학습을 하러 찾아오고, 때로는 학교에서 견학을 오기도 한다.
“도서관보다 조용하고, 카페보다 따뜻하다”는 말이 입소문을 타면서 근방 도시에서 일부러 찾아오는 방문객도 늘었다.

청년은 책방 수익의 일부를 마을 장학회에 기부하고 있고, 봄·가을엔 ‘시골 책축제’를 열어 주민, 여행자, 작가, 농부들이 한데 모이는 잔치를 연다.
책방 하나가 마을을 바꾸는 일, 그건 가능하다는 걸 이 폐교 책방이 증명하고 있다.

 

잊힌 공간 위에 쌓이는 새로운 문장들

기자가 책방을 나서려던 순간, 창가에 앉아 있던 노인이 이렇게 말했다.
“이 학교, 내 손주도 여기 다녔어. 그땐 웃음소리 가득했는데, 다시 그 소리 들리니 좋지.”
그 말이 오래도록 귓가에 남았다.

폐교는 더 이상 정지된 시간이 아니었다.
그곳은 지금도 누군가의 삶을 담아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엔 책과 사람이 있었다.

김진우 씨는 이렇게 말했다.
“책은 공간을 채우는 물건이 아니라, 시간을 쌓는 매개라고 생각해요.
이 공간도 책처럼 천천히, 오래 기억되면 좋겠어요.”
그의 바람처럼, 이 시골 책방은 지금도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다음 문장을 써 내려가고 있다.

 

책이 머무는 곳엔 결국 사람이 돌아온다

책방을 떠나기 전, 기자는 교실 한쪽 벽에 붙어 있던 문구를 바라보았다.
“책은 사람을 기다릴 줄 아는 유일한 물건이다.”
그 말처럼 이 폐교 책방은 오랜 시간 동안 누군가를 기다렸고, 지금은 그 기다림 끝에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기증받은 책이 한 권씩 늘어날 때마다, 청년은 이 공간이 조금 더 따뜻해진다고 말했다.
교실은 이제 책으로 가득하지만, 그 책들보다 더 소중한 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이었다.
독자는 단순히 책을 보러 오는 것이 아니라, 이 공간에 앉아 자신의 이야기를 조용히 꺼내놓는다.
그렇게 이 폐교는 책장을 통해 다시 살아났고, 그 속에 담긴 사람들의 마음은 오늘도 조용히 새로운 장을 써내려가고 있다.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은 다시 돌아오고, 오래 기억한다

책방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처음엔 ‘그저 한 번 가보고 싶어서’ 들른다고 말하지만, 돌아갈 땐 “다시 오고 싶다”는 말을 남긴다.
혼자 조용히 책을 읽다 눈물을 흘리고 간 청년도 있었고, 어린 시절 이 학교를 다녔던 60대 부부가 찾아와 옛 책상에 앉아 조용히 손을 맞잡기도 했다.
이 공간은 책방이면서도, 동시에 기억을 붙잡아주는 장소였다.
청년 운영자는 "책보다 사람이 더 오래 머무는 공간이 되고 싶었다"고 말했는데, 그 말은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누군가는 책을 통해 위로를 받고, 누군가는 조용한 교실에서 잊고 있던 감정을 꺼내며, 폐교였던 이 공간에 자신의 시간을 새로이 쌓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