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합천의 산골 마을에는 아직도 지게를 만드는 장인이 있다. 나무로 지게를 짠다고 하면 누구는 “시대에 뒤처진 물건”이라 말하겠지만, 그는 고개를 젓는다. “지게는 짐을 나르는 게 아니고, 사람의 마음을 나르는 물건이에요.” 그렇게 말하는 이는 올해 일흔셋의 장인 정만수 씨. 그는 40년 넘게 오직 지게만 만들며 살아왔다. 한때 농촌의 필수품이었지만 이제는 찾아보기 힘든 전통 지게. 하지만 정만수 장인은 아직도 손으로 나무를 깎고, 끈을 꼬고, 어깨에 짊어질 무게를 생각하며 지게 하나하나를 완성한다. 그는 말한다. “이 나무 지게를 메고 산을 넘는 마음은요, 요즘 리어카도, 트럭도 못 담아요.” 그의 지게는 그저 물건을 나르는 나무틀이 아니다. 그것은 노동과 시간, 그리고 사람 사이의 신뢰와 정직함이 담긴 전통의 도구다.
합천 지게장인이 나무를 짊어진다는 것 – 지게의 뼈대를 깎다
지게의 시작은 나무를 고르는 일이다. 그는 주로 굴참나무, 물푸레나무, 소나무 세 가지를 쓴다. 그중에서도 등판이 닿는 ‘어깨목’은 굴참나무가 최고다. 휘지 않고, 무게를 분산시켜주며, 오래 써도 뒤틀리지 않는다. 그는 나무를 산에서 직접 베어온다. “마트에서 나무를 사면 지게가 말을 안 들어요.” 그렇게 잘라온 나무는 먼저 껍질을 벗기고 그늘에 널어 3년 이상 말린다. 햇빛에 말리면 갈라지고, 습하게 두면 썩는다. 이 장인은 나무마다 이름을 붙여 관리한다. “이건 고들빼기 골짜기에서 잘린 거. 그 해 눈이 많이 와서 속결이 촘촘해요.” 그에겐 나무가 단순한 재료가 아니다. 그는 나무를 기억하고, 나무도 자신을 기억한다고 믿는다.
건조가 끝난 나무는 대패로 곱게 깎고, 얇은 도끼로 틀을 잡는다. 이 장인은 결을 따라 깎아야 등짐을 졌을 때 어깨가 덜 아프다고 말한다. 지게는 세 개의 틀로 나뉜다. 등심대, 어깨틀, 다리목. 각각의 무게가 다르고, 짐이 얹혔을 때 뒤로 밀리지 않도록 미세한 각도로 깎는다. “눈으로는 안 보여도, 몸은 알아요.” 이 장인의 손놀림은 빠르지 않지만, 손에 묻은 결 자국과 칼집을 보면 수천 개의 지게를 만든 사람임을 알 수 있다. 그가 깎는 곡선 하나하나는 인간의 몸을 이해하는 선이다. “지게는 나무가 짊어지는 게 아니라, 사람이 나무를 믿고 메는 거예요.”
짐을 묶는 기술 – 새끼줄과 매듭의 손
지게를 만들면서도 그는 줄을 가장 먼저 꼰다. 지게는 나무틀만 있다고 완성되는 게 아니다. 어깨와 등을 감싸는 끈, 짐을 고정하는 등포, 무게를 분산시키는 옆날줄까지 모두 손으로 꼰 새끼줄이 감싼다. 그는 요즘에도 볏짚을 사서 직접 삶고 말린다. 기계로 만든 마끈은 질기긴 해도 뻣뻣하고, 사람 몸에 상처를 낸다고 한다. “줄은 사람 살을 닿아야 하니까 부드러워야 해요.” 그가 꼬는 새끼줄은 물에 담갔다 꺼내, 손등에 끌어당기며 결을 정리한 뒤, 삼지창 틀로 조여서 완성한다.
줄 하나당 꼬는 데 2시간. 그 줄이 등심대 하나를 두르고, 어깨목을 감싸며, 다리목 아래를 묶는다. 이 장인은 줄을 감을 때도 방향을 바꾼다. “오른손잡이한테 맞게 감는 줄과, 왼손잡이한테 맞는 줄은 반대에요.” 그래서 그는 주문자가 있으면 반드시 어깨 길이와 손잡이 방향을 물어본다. 사람을 위한 지게를 만들기 위해선, 사람을 먼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지게는 짐을 메는 게 아니라, 몸에 맞게 같이 움직이는 거예요.” 그렇게 감긴 줄은 단단하면서도 유연하게 짐을 붙잡는다. 그래서 그는 지게를 완성할 때까지 줄을 세 번씩 다시 풀었다가 감는다. “살에 닿는 건, 한 번 더 확인해야죠.”
어깨 위의 기술 – 지게를 메는 몸의 기억
지게를 만들고 나면, 그는 직접 그 지게를 메고 언덕을 오른다. 완성된 지게가 몸에 닿는 감각을 반드시 확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앉았을 때 밀리거나, 서 있을 때 당기면 다시 깎아야 해요.” 그는 자신의 몸을 기준으로 만든 지게를 고객의 몸에 맞게 조정한다. 그게 손재주보다 중요한 감각이라 말한다. 그는 작업장 뒤 야산에 ‘지게 시험길’을 두고 있다. 경사와 돌길, 오르막과 내리막이 모두 섞인 흙길이다. “여기서 안 밀리고 잘 따라오면, 그 지게는 진짜예요.”
요즘 그의 지게를 찾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그는 주문이 들어오지 않아도 매달 하나씩은 만든다. “내가 만들다 안 만들면, 그 기술은 거기서 멈춰요.” 그는 아들에게 기술을 물려주고 싶지만, 아들은 도시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다. 그래서 그는 요즘 지게 하나 만들 때마다 영상도 찍고, 줄 꼬는 방법을 기록한다. “내가 사라져도, 이 기술은 나무 안에 남아 있길 바라요.” 지게는 단순한 운반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사람과 짐 사이의 신뢰, 땅을 딛고 걷는 몸의 논리, 그리고 손과 어깨가 만들어낸 시간의 형상이다.
나무보다 오래 남는 것 – 기억에 지게를 지우다
정만수 장인은 말한다. “지게는 언젠가 나무로 돌아가요. 하지만 그 지게를 메고 걸었던 사람의 기억은 오래 남아요.” 그가 만든 지게는 누군가의 밭길을, 산길을, 장터를, 혹은 골목을 묵묵히 지나왔을 것이다. 등에 멘 사람의 땀과 숨결, 그때의 무게와 속도까지도 함께 담겼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지게를 단순한 물건으로 만들지 않는다. “지게는 사람이 짓는 마지막 도구 같아요. 몸에 맞춰야 하고, 마음에 맞춰야 하고, 결국은 기억을 담아야 하니까요.” 그런 마음으로 만든 지게는 시간이 지나도 쉽게 잊히지 않는다. 요즘은 박물관이나 민속 체험마을에서도 그의 지게를 찾는다. 단지 옛날 도구로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손으로 만든 전통이 사람에게 어떤 울림을 주는지 직접 느끼고 싶어서다. 그가 만든 지게 하나는 나무와 줄로 완성됐지만, 그 안에는 한 사람의 노동, 손의 기술, 땅의 냄새, 그리고 걸어온 길이 담겨 있다. 그리고 그 지게를 짊어진 사람은 그 무게와 함께 누군가의 삶을 다시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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