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조치원읍 외곽 작은 마을, 외따로 난 골목 끝에 칫솔을 만드는 작은 공방이 있다. 가게 간판도 없고, 상자에 담긴 건 플라스틱도 아니고 기계도 아니다. 그 안에는 고운 결의 나무 손잡이와 짧고 탄탄하게 심어진 멧돼지털이 촘촘히 꽂힌 전통 칫솔이 담겨 있다. 이 칫솔을 만드는 이는 황성만 장인, 35년 동안 같은 방식으로 칫솔을 만들어온 사람이다. “칫솔이야말로 사람이 매일 쓰는 도구 중 가장 민감한 거예요. 입에 넣는 거잖아요. 그래서 자연을 써야죠.” 그의 칫솔은 하루에도 수억 개가 생산되는 플라스틱 제품과 다르다. 손으로 깎은 나무, 삶아 정리한 멧돼지털, 풀을 넣은 구멍, 그리고 0.1mm 단위로 조정되는 결의 각도. 그는 말한다. “치아가 고마운 건, 아플 때가 아니라 안 아플 때예요.” 그 고마움을 기억하게 하는 칫솔이 바로 그가 만드는 전통 칫솔이다.
세종 칫솔 손에서 깎아낸 손잡이 – 나무가 입을 기억하도록
황성만 장인이 칫솔을 만들기 위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나무를 고르는 일이다. 그는 사과나무, 대추나무, 산벚나무 같은 단단하면서도 무르지 않은 나무를 사용한다. 습기를 머금고도 썩지 않으며, 손에 쥐었을 때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차가운 플라스틱보다 사람 손의 온도에 반응하는 나무가 더 어울린다”고 말한다. 목재는 최소 1년 이상 자연 건조해야 한다. 그는 공방 뒤쪽 창고에서 햇빛과 바람에 나무를 서서히 말린다. 건조가 끝난 나무는 손잡이 모양으로 절단한 뒤, 칼과 줄, 사포로 정밀하게 다듬는다. 특히 손끝이 닿는 부위는 3~4번 반복해서 샌딩한다. “잡았을 때 거슬리면 입에 넣기도 불편하거든요.” 그는 사람마다 손의 크기와 쓰는 방향이 다르기 때문에 왼손잡이용 칫솔, 아이용 칫솔, 틀니 사용자용 칫솔도 따로 제작한다. “칫솔은 생활용품이면서도 개인화된 도구예요. 쓰는 사람의 치아 구조를 생각해야 진짜 맞춤이죠.” 그렇게 다듬어진 손잡이에는 마지막으로 천연오일을 먹여 마감한다. “입에 넣는 거니까 인공 코팅은 절대 쓰지 않아요.”
돼지털로 빚은 미세한 결 – 심는 손의 기술
칫솔모는 일반적으로 나일론으로 만들어지지만, 황 장인은 오직 멧돼지털과 말털만 사용한다. 그는 산간 지역에서 공급받은 멧돼지털을 삶아 기름기를 빼고 굵기별로 선별한 뒤 직접 손으로 심는다. “멧돼지털은 약간 휘어 있어서 치아 사이를 더 잘 긁어줘요. 그리고 불에 안 녹고 오래가요.” 칫솔모를 심는 구멍은 손으로 일일이 뚫는다. 구멍 깊이는 7mm~9mm. 여기에 묶은 털을 끼운 뒤, 대나무 심지로 고정하고 천연풀로 마감한다. 이 작업은 하루에 20개도 만들기 어렵다. 한 올 한 올 손으로 방향을 맞추고, 칫솔 결이 입천장을 긁지 않도록 각도를 미세하게 조절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치과 위생사들과 협업해 모양을 조정하기도 한다. 턱이 좁은 사람을 위한 곡선형 칫솔, 어금니 쪽 접근이 어려운 이를 위한 사선형, 잇몸이 약한 사람을 위한 부드러운 털 배치. 이 모든 건 표준화가 아니라 ‘개인의 입안’을 이해하는 작업이다. 그는 말한다. “칫솔은 하루 두세 번 쓰고 잊히는 물건이지만, 그 순간마다 사람을 가장 가까이 돌봐주는 도구예요.”
느린 손이 만든 위생 – 손길이 닿은 공예의 위생
황 장인은 자신이 만드는 칫솔을 “위생의 공예품”이라 말한다. 기계로 만든 수천 개의 칫솔은 1초에 몇 개씩 완성되지만,
그는 하루 종일 앉아서 손으로 10개도 만들지 못한다. “천천히 만드는 칫솔이 더 깨끗해요. 손이 느려야 더 정확하고, 입안에 들어갈 수 있죠.” 그는 사용자의 이름과 사용 용도에 맞춰 작은 천 주머니에 담아준다. 플라스틱 포장 없이, 면과 한지로 감싼 포장. “칫솔은 쓰는 순간만 중요한 게 아니에요. 보관하고 닿는 환경까지 중요하죠.” 그래서 그는 칫솔 하나에 평균 3일 이상을 쏟는다. 요즘은 일부 외국 소비자들도 그의 칫솔을 찾는다. “입에 넣는 건 자연이 좋아요.”
이 한마디가 통역 없이도 통하는 이유다. 그가 만든 칫솔은 단지 양치질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입안의 환경을 존중하는 생활의 철학이다.
입과 사람을 생각한 공예 – 가장 사적인 도구를 위한 손
황 장인이 가장 아끼는 말은 “칫솔은 입에 들어가는 유일한 도구다. 그래서 가장 사적인 공예다”라는 말이다. 그는 치아에 직접 닿는 순간부터, 양치 후 물을 털고 건조되는 과정까지 하나하나 사람이 느끼는 감각을 기준으로 삼는다. 그래서 그는 칫솔을 만들며 늘 그 사람을 떠올린다. “이 칫솔을 쓰는 분이 하루를 어떻게 시작하고, 어떤 기분으로 마무리할까?” 그 마음이 있어야 진짜 쓰임새가 생긴다고 믿는다. 그의 칫솔은 언젠가 닳아 사라진다. 하지만 사용자의 기억 속엔 “그때 참 좋았던 느낌”으로 남는다. 그는 말한다. “치아는 입 속에 있지만, 칫솔은 사람 마음을 만지는 물건이에요.” 그 말처럼, 그의 칫솔은 치아를 닦는 도구가 아니라 하루를 맑게 시작하게 해주는 조용한 손이다.
사라지는 도구, 남겨지는 감각
황성만 장인의 칫솔은 시간이 지나면 닳고, 털이 빠지고, 손잡이도 마모된다. 하지만 그는 그 마모를 부끄럽다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닳는 건 잘 썼다는 증거고, 손에 익었다는 증명”이라 말한다. 그의 칫솔을 쓴 사람들은 칫솔이 닳아 교체할 때조차 아쉬움을 느낀다. 단순히 ‘양치질 도구’가 아닌, 매일 아침을 여는 익숙한 감촉이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만든 칫솔은 공장에서 찍어낸 기능성 제품과는 다르다. 나무의 결 하나, 털의 방향 하나, 손잡이의 곡선 하나에 사람을 생각한 감정이 담겨 있다. 그래서 그의 칫솔은 입안보다 마음에 더 오래 남는 도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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