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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을찾아서

강릉 전통 한지등(燈) 장인, 빛으로 이야기를 짓는

강원도 강릉의 골목 깊은 곳, 이른 새벽부터 은은한 불빛이 새어 나오는 한 공방이 있다. 가까이 다가가면 특유의 종이 냄새와 나무풀 향이 번지고, 가만히 들어서면 각기 다른 모양의 등불들이 저마다 다른 온도로 숨을 쉬고 있다. 이 등불들은 단지 방을 밝히기 위해 만들어진 게 아니다. 한지와 나무, 빛과 그림자의 조화를 통해 시간과 감정을 담아내는 그릇이다. 그 한지등을 만든 이는 이태윤 장인, 35년 넘게 강릉에서 전통 한지등을 만들어온 사람이다. 그는 말없이 빛을 깎고 종이를 붙이며 “등은 밝히는 게 아니라, 비워내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의 말처럼, 한지등은 그리 많지 않은 재료로 공간을 환히 밝히지만, 그 안엔 꽤 오래된 이야기가 고요히 담겨 있다.

그가 한지등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불빛이 귀하던 시절, 어머니가 종이등 하나를 손수 만들어 방 한쪽에 걸어두던 기억에서 시작되었다. “가난했지만 등불 하나만 켜면 따뜻해졌어요. 종이에서 번지는 빛이란 게 그렇게 정서적일 줄은 그땐 몰랐죠.” 그는 이후 목공과 종이공예를 배우고, 전통 한지등 제작을 평생의 길로 삼았다. 빛은 그에게 기술보다 감각이 먼저 필요한 재료였고, 손은 도구가 아니라 빛을 조율하는 매개체였다.

 

한지등에 숨은 한지는 숨을 쉬는 종이다 – 바탕을 만드는 감각 

그는 작업을 시작할 때마다 먼저 손을 씻는다. 종이를 대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지를 만지는 손에 땀이나 먼지가 있으면, 그 결에 스며들어 빛의 번짐까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지는 사람 손을 타요. 조심하지 않으면 빛도 따라 흩어지거든요.” 한지 위에 손을 얹었을 때 느껴지는 부드러운 마찰감, 그 미세한 저항은 종이가 살아 있음을 말해준다. 그는 종이를 가볍게 당겨보며 늘어나는 탄성과 복원력을 확인한다. 빛이 고르게 퍼지기 위해선, 종이의 유연함과 탄성이 필요하다. 때로는 종이 위에 옅은 문양을 그려 넣기도 한다. 직접 만든 식물염료를 붓 끝에 묻혀,
등 내부에 은은히 드러날 정도의 농도로 채색한다.“겉으론 잘 안 보이지만, 불을 켜면 그 문양이 떠올라요.
그걸 보는 순간, 사람은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느껴요.” 그는 한지를 고르는 기준에 대해 묻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 등불이 머무를 사람의 방이 얼마나 조용한지를 생각해요. 그 조용함에 맞는 종이를 고르는 거죠.” 그래서 그의 등에는 종이보다 먼저 공간에 대한 배려가 담긴다.

 

나무는 구조가 아니라 온도다 – 틀을 세우는 기술

틀을 만드는 데 가장 많은 시간을 들이는 이유는 그 구조가 등 전체의 호흡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단단하지만 유연해야 하고, 균형을 이루면서도 경직되면 안 된다. 그는 "등이 빛을 품으려면, 먼저 틀이 빛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해요"라고 말한다.

작업장 한쪽엔 다양한 크기의 나무 조각과 대나무 살이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다. 모양은 조금씩 달라도, 모두 구부러질 준비를 마친 나무들이다. 그는 물에 불린 나무를 고정틀에 끼우고, 며칠씩 그대로 둔다. 이 과정은 급하게 할 수 없다.
"나무도 말 없이 천천히 바뀌는 걸 기다려야 해요. 사람도 마찬가지잖아요?" 때로는 손으로 휘는 정도를 조정하기 위해 나무를 데우기도 한다. 화롯불 옆에서 살짝 데운 나무는, 사람의 체온처럼 따뜻하게 말랑해진다. 그 상태에서 그는 천천히 손으로 나무를 눌러 곡률을 만든다. 그건 계산이 아니라 감각이다. “기계로 만들면 모양은 똑같지만 사람 손으로 만들면 모양이 살아 있어요.” 틀이 완성되면 조심스럽게 마감 처리를 한다. 거친 면을 정리하고, 종이가 부드럽게 감기도록 가장자리를 깎는다. 그는 “종이가 다치지 않게 하려면 나무가 먼저 준비돼야 해요”라고 말한다. 그의 틀에는 손의 감각, 불의 온기, 그리고 기다림이 함께 깃든다.

한지를 통과한 따뜻한 불빛이 은은하게 퍼지는 전통 조명을 표현하다.

빛은 조명이 아니다 – 등 하나에 담기는 기억

그가 말하는 빛은 단순히 공간을 밝히는 물리적 존재가 아니다.그건 기억을 비추는 매개이고, 사람의 감정을 은근히 드러내는 수단 이다. 그래서 그는 전구의 밝기를 선택할 때도 “이 등이 놓일 방에 얼마나 고요한 시간이 흐를지를 상상한다”고 말한다.

등 내부에 조명을 설치할 때도 그는 손으로 직접 만져가며 빛이 종이를 어떻게 통과하는지를 본다. 종이의 결, 접힘, 염색의 진하기에 따라 같은 전구도 전혀 다른 빛을 내기 때문이다. 빛이 편안하게 스며들어야, 그 등 아래 앉은 사람의 마음도 함께 누그러진다고 그는 믿는다. 한지등을 완성하고 나면, 그는 전구를 켜지 않은 상태에서 등만 바라보는 시간을 갖는다. 불을 켜기 전에도 아름다운 등은,
불을 켰을 때 더욱 조용하고 따뜻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그는 “불이 없어도 좋은 등이어야, 불이 있을 때 더 아름다워요”라고 말한다. 그의 등은 누군가의 방에 걸려 있을 것이다. 바람이 들고 나가는 창가에, 책을 덮은 책상 위에, 낮은 탁자 옆 조용한 자리에서,
작은 불빛 하나가 하루의 끝을 따뜻하게 감싸고 있을 것이다. 그곳에 켜진 빛은 등 하나가 아니라, 그 빛을 만들었던 사람의 하루, 그리고 그 사람의 손이 만든 온기다.

 

종이로 만든 등, 마음을 밝혀주는 불빛 

어떤 사람은 그의 등을 보고 "너무 어두워요"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럴 때 그는 “조명이 밝지 않아서, 대신 마음이 밝아질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해요”라고 대답한다. 그의 등은 밝음보다는 따뜻함을 위해 만들어진다. 그는 등 하나를 만들고 나면
짧은 쪽지를 붙여둔다. “이 등은 6월 장마 전날, 흐린 날에 만든 등입니다. 조금 흐리고, 조용한 기분이 담겼어요.”
이 한 줄의 기록은, 등불이 단지 물건이 아닌 이유다. 시간이 지나면서 종이는 누렇게 변하고,  나무는 마르고, 빛도 희미해질지 모른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손의 감각과 기억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는 말한다. “언젠가 그 등 아래서 누군가 조용히 눈을 감고 쉴 수 있다면, 그게 내가 등 하나 만든 보람이에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