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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을찾아서

담양 대나무 공예 장인, 40년간 지켜온 손의 기술

 담양은 대나무로 유명한 고장이다. 대나무 숲을 따라 걷다 보면, 댓잎의 바스락거림과 함께 시간도 천천히 흐른다. 하지만 이곳에서 진짜로 시간을 다루는 사람은 대나무 공예 장인들이다. 그들은 한 뼘의 죽간(竹竿)으로 바구니를 만들고, 일상 속의 소반과 찻상, 부채, 등나무 의자까지 만들어낸다. 그중에서도 담양 외곽의 한 작은 작업장에서 40년 넘게 대나무와 함께 살아온 장인이 있다.

그의 하루는 대나무를 고르는 일로 시작된다. 수백 그루 중에서도 결이 곱고 수분이 적은 것을 골라야 하기 때문이다. 그 다음엔 손도끼로 대나무를 가르고, 칼로 섬유를 뽑아내는 과정이 이어진다. 기계는 없다. 모든 작업은 손으로 진행된다. 사람들은 종종 묻는다. “요즘은 다 기계로 만들지 않나요?” 그는 웃으며 답한다. “기계는 대나무를 못 다룹니다. 대나무는 사람 손이 알아야 해요.”

이 글은 담양의 한 대나무 공예 장인이 40년 동안 고수해온 기술과 삶,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철학을 담고 있다. 빠름과 효율이 지배하는 시대에, 느림과 정성으로 버틴 사람의 이야기. 지금은 점점 사라져가는 수공예의 진짜 가치가 무엇인지 되묻는 기록이다.

담양 대나무 공예

대나무를 다듬는 손길, 그 속에서 만들어진 고요한 기술

 대나무 공예의 첫 걸음은 ‘자르기’가 아니다. 그것보다 앞서, ‘고르기’가 있다. 담양에서는 1년 내내 대나무가 자라지만, 공예에 적합한 대나무는 겨울철에 수확한 2~3년생 죽간이다. 장인은 말한다. “겨울에 자란 대나무는 수분이 적고, 내부가 단단해요. 그래서 갈라지지도 않고, 곰팡이도 덜 피죠.”

대나무를 고른 후에는, 겉껍질을 벗기고 결을 따라 가른다. 이 작업은 대패나 기계로는 할 수 없다. 대나무의 결은 매번 다르며, 같은 죽간이라도 자란 환경과 방향에 따라 칼이 먹히는 느낌이 달라진다. 장인은 손에 감긴 감촉, 칼끝에 전해지는 저항감을 통해 대나무의 상태를 파악한다.

이어서 섬유처럼 가늘게 쪼갠 대나무를 엮는 과정으로 들어간다. 바구니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최소 200가닥 이상의 가는 대나무 조각이 필요하다. 각 조각은 두께와 길이가 거의 동일해야 하며, 그 차이가 나면 형태가 일그러지거나 힘을 받지 못한다. 이 모든 것을 장인은 오로지 ‘손의 기억’으로 처리한다.

하루에 바구니 두 개, 찻상 하나 만들면 많은 날이다. 자동화 기계였다면 20개도 넘게 생산했겠지만, 그는 그 속도를 고집하지 않는다. “손으로 만든 건 시간이 들어 있어요. 시간 없는 물건은 쉽게 버려지죠.” 그의 말은 단순한 고집이 아닌, 철학이다.

 

손이 기억하는 공예, 쓰는 사람을 위한 정직한 물건

 그가 만든 대나무 제품은 아름답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다가오는 건 ‘정직함’이다. 땀과 손의 온도, 그리고 기다림이 고스란히 들어 있는 대나무 공예품은 단순히 장식용이 아니다. 실제로 사용하는 사람이 편하도록 설계되었고, 오래 사용할수록 멋이 더해진다.

예를 들어, 대나무 찻상 하나는 단단하지만 가볍고, 표면은 매끄럽게 연마되어 있어 물이 튀어도 쉽게 닦인다. 그 바탕에는 “사용자를 불편하게 하면 공예가 아니다”라는 장인의 철학이 담겨 있다.

그는 말한다. “예쁘기만 한 건 장식품이지, 물건이 아니에요.” 그래서 그의 작업은 항상 쓰임을 중심에 둔다. 직접 대나무 상판 위에 물잔을 올리고, 젓가락을 굴려보며 마감의 디테일을 체크한다. 모든 공정이 마무리된 후에도, 그는 자신이 만든 물건을 며칠 간 쓰고 테스트해본다.

이런 철저한 자기검열은 그의 명성을 만들었다. 지금은 일본, 독일, 미국 등지에서 그의 대나무 제품을 주문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담양을 떠나지 않는다. “내가 자란 숲에서 나온 대나무로, 내가 아는 방식대로 만드는 게 가장 정직하잖아요.”라고 말한다.

 

사라져가는 기술, 그러나 살아남아야 할 이유

 수공예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리고 요즘 세상은 시간이 많이 드는 일을 반기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 장인의 존재는 더욱 귀중하다. 그는 하루 종일 나무와 대화하듯 작업을 반복한다. 대나무에서 나는 소리, 잘리는 단면의 결, 엮일 때 나는 스침의 마찰까지 모두 기억하고 있다. 그건 오랜 세월이 없이는 얻을 수 없는 지식이다.

하지만 그는 걱정이 많다. “이걸 배우겠다는 젊은이가 거의 없어요. 고되니까.” 그의 제자는 단 두 명이다. 그나마도 한 명은 도시로 나가 디자인 회사를 차렸고, 남은 한 명만이 지금도 매일 작업장을 지킨다. 그래서 그는 더욱 신중해졌다. 매 작업마다 기술을 기록하고, 각 공정의 도면과 설명서를 남기고 있다. 언젠가 누군가 이 일을 이어가겠다는 믿음 하나로.

그가 만든 바구니는 시간이 갈수록 색이 짙어진다. 햇빛과 공기, 사람의 손때가 섞여 색이 깊어지면서 더 고운 물건이 되어간다. 그런 변화를 그는 ‘물건의 생명’이라고 부른다. “대나무는 살아 있어요. 다만, 다루는 사람이 그걸 몰라보면 안 되는 거죠.”

담양의 대나무 장인은 유명하지 않다. TV에도 잘 나오지 않는다. SNS 계정도 없고, 가게 간판도 없다. 하지만 그가 만들어낸 공예품은 오래도록 남는다. 손이 기억한 기술, 쓰는 사람을 생각한 마음, 그리고 버티며 이어온 철학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반드시 기록하고 지켜야 할 '살아 있는 기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