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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을찾아서

제주 전통 어묵 장인의 하루, 육지와 다른 손맛 이야기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공장 생산 어묵과는 달리, 제주의 전통 어묵은 여전히 손끝에서 태어난다. 이곳 어묵은 단순한 어묵이 아니라, 바다의 기억을 간직한 음식이다. 제주 구좌읍의 한 작은 작업장에서는 매일 새벽 4시, 무명의 장인이 조용히 손을 움직이며 어묵 반죽을 준비한다. 물고기를 손질하고, 뼈를 발라내고, 비린내를 없애는 모든 과정은 오로지 손의 감각에 의존한다. 이 글은 제주 바다와 함께 살아가는 한 장인의 일상을 통해 우리가 잊고 지내던 ‘손맛’의 진정한 가치를 되새겨보는 시간이다.

 

제주 전통 어묵장인

제주 전통 어묵을 위한 매일 새벽 4시, 물고기와의 싸움이 시작된다

그의 하루는 해 뜨기 전, 고요한 작업실에서 시작된다. 수산시장에서 직접 받아온 신선한 갈치, 고등어, 전갱이 등은 각각의 비율로 섞여 어묵 반죽의 재료가 된다. 생선을 다듬는 일은 단순해 보이지만, 육지에서 자란 사람은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감각’이 필요하다. 생선의 상태에 따라 물의 양이 바뀌고, 반죽 시간도 달라진다. 장인은 말한다. "오늘 비가 왔는지, 고등어가 조금 물렀네. 이럴 땐 반죽을 짧게 해." 과학이 아닌 경험의 언어다. 손끝에 모든 기준이 있는 셈이다.

특히, 제주 어묵은 ‘튀기지 않고 찌는 방식’을 고수한다. 그 이유는 단 하나. “기름맛 말고, 생선맛을 먹으라고.” 장인의 한 마디는 전통이란 것이 단지 오래된 방식이 아닌, 철학이라는 걸 보여준다. 육지의 어묵은 부드럽고 기름지지만, 이곳의 어묵은 쫄깃하고 담백하다. 씹을수록 생선의 풍미가 입안에 퍼진다.

 

자동화 없는 생산, 느림 속에서 태어난 정직한 맛

작업장에는 기계 소리가 없다. 반죽은 수동 믹서로 돌리고, 성형은 손으로 한다. 어묵 모양을 만드는 일도 사람의 손이 맡는다. 일일 생산량은 50팩 남짓. 육지 대형 제조업체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양이지만, 그는 품질을 위해 이 숫자를 유지한다. 손님들은 소량 생산이 주는 믿음을 알고 다시 찾아온다.

그의 고객은 대부분 단골이다. 어떤 사람은 서울에서 택배로 주문을 넣고, 어떤 이들은 관광 중 입소문을 듣고 찾아온다. 어묵을 사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사가는 셈이다. 작업장 한켠에는 손글씨로 적은 ‘어묵국 레시피’가 붙어 있다. 장인의 말에 따르면 “좋은 어묵은 국물 낼 때 화학조미료가 필요 없다.” 이 말이 단골들에게 입소문이 난 이유기도 하다.

 

장인의 철학, 그리고 우리가 놓치고 사는 것들

인터뷰 말미, 장인에게 ‘왜 이렇게 불편한 방식을 고수하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답했다. “편한 걸로는 오래 못 가요. 이게 제 삶이고, 제 방식이에요.” 그 말은 깊은 여운을 남겼다. 요즘처럼 빠르고 효율적인 것만이 중시되는 세상에서, 느리고 정직한 방식은 오히려 특별한 가치가 된다.

우리는 종종 ‘장인’이라는 단어를 거창하게 생각하지만, 사실 장인이란 자신의 방식을 고수하며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이다. 이름 없이도, SNS 없이도, 고객과 신뢰로 연결된 삶. 제주 전통 어묵 장인의 하루는 어쩌면 우리가 잊고 사는 삶의 리듬을 다시 떠올리게 해준다. 그 어묵 하나에 담긴 바다의 맛과 손의 온기는 단지 음식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