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경포대에서 멀지 않은 작은 골목 어귀, 이곳에는 간판 하나 없이 입소문만으로 수십 년을 버텨온 수제 한과 가게가 있다. 시끌벅적한 시장 골목을 지나, 오래된 주택 한편에 자리한 이 가게는 외관만 보면 평범한 시골집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가 보면, 탁자 위에 반죽이 놓여 있고, 한켠에는 갓 튀겨낸 한과가 쌓여 있다. 바삭하면서도 쫄깃한 질감, 입에 넣는 순간 은은하게 퍼지는 조청의 달콤함은 이곳이 결코 평범한 공간이 아님을 말해준다.
이 한과 가게는 1968년 작은 시장 좌판으로 시작했다. 1대 할머니는 직접 쌀을 씻고 맷돌을 돌리며 한과를 만들었고, 2대는 이 기술을 지켜내며 가게로 성장시켰다. 지금은 3대 손자가 가업을 이어받아 전통을 지키면서도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 한과를 선보이고 있다. 세대를 넘어 이어진 이들의 노력은 단지 ‘음식’ 하나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 안에는 단맛보다 진한 시간의 농축,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정성이 담겨 있다.
이야기의 시작은 단순히 ‘전통 한과’를 파는 가게이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한 집안이 지켜온 철학과 강릉이라는 지역이 가진 문화적 맥락까지 함께 녹아 있다. 전통이란 단어가 형식이 아닌 ‘삶의 방식’일 수 있다는 것을, 이 작은 가게는 조용히 증명하고 있다.
반죽과 튀김, 모든 건 사람 손이 결정한다
한과의 시작은 ‘쌀’이다. 이 집에서는 찹쌀을 직접 고르고, 세척하고, 불리는 데에만 하루 이상을 투자한다. 대형 공장에서는 기계로 단시간 내에 처리하는 과정을 이곳에서는 여전히 사람 손으로 하나하나 진행한다. 그 이유는 단 하나. “쌀의 상태는 매번 다르기 때문에 눈과 손으로 확인해야 한다.”는 2대 사장님의 말 때문이다.
불린 찹쌀은 하루 정도 숙성시킨 뒤 맷돌로 천천히 간다. 맷돌을 돌리는 속도도 일정하게 유지해야 반죽의 질감이 일정해진다. 여기에 들어가는 물의 양과 온도는 레시피로 기록되어 있지 않다. 오직 손끝의 감각으로만 판단된다. 그날의 기온, 습도, 쌀의 상태에 따라 미세하게 달라지는 농도를 맞추는 일은 수십 년의 경험 없이는 불가능하다.
반죽이 완성되면 일정한 크기로 떼어내어 튀김 솥으로 향한다. 기름의 온도는 대부분의 한과 공장에서는 온도계로 측정하지만, 이곳에서는 기름 위에 찹쌀 반죽을 아주 작게 떨어뜨려 거품의 밀도와 색, 그리고 소리를 확인한다. 적정 온도가 되었을 때만 반죽을 넣어 튀겨낸다. 튀겨진 한과는 겉은 바삭하고 속은 쫀득한데, 이 질감을 만들어내는 데에는 손의 힘과 감각이 결정적이다.
그리고 이 집의 진짜 차별점은 조청이다. 일반적인 시중 한과는 설탕이나 물엿을 많이 쓰지만, 이곳은 직접 고구마와 쌀로 조청을 끓여 사용한다. 조청은 한과의 풍미를 결정짓는 요소다. 짜지도 않고 너무 달지도 않은 절묘한 단맛을 내기 위해 조청을 세 번에 나누어 끼얹는다. 바닥부터 중간, 그리고 마지막 위에 얇게 한 번 더 발라 마무리한다. 이 모든 과정이 끝나면 쟁반에 나란히 올려 하루 이상 말린다. 이틀 후에 비로소 고객의 손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세대를 잇는 손맛, 그러나 맛은 여전히 하나
1대 할머니가 처음 시작했을 당시, 한과는 명절 음식으로만 여겨졌고 평상시에는 찾는 사람이 드물었다. 하지만 그녀는 “가장 정성 들인 음식을 만들어 팔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이 일을 시작했다. 밤낮으로 불을 지피고, 시장 좌판에서 손수 만든 한과를 팔며 입소문을 얻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는 손님에게 직접 전달하거나, 서울 가는 지인 손에 한과를 들려 보내는 방식으로 고객과 소통했다.
2대는 아버지였다. 그는 어머니의 기술을 고스란히 전수받아, 보다 안정된 공간에서 가게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중앙시장에 조그마한 상점을 열고, 냉장시설 없이도 하루 판매량을 관리할 만큼 한과 수요가 점차 늘어났다. 그 시절 단골이 지금도 명절마다 주문을 넣는다고 한다.
현재 이 가게를 운영하는 3대 사장은 외식업 경영을 전공한 30대 후반의 청년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반죽하는 모습, 기름 온도를 손으로 확인하는 장면, 조청 냄새가 집안 가득 퍼지던 풍경을 보고 자랐다. 대학 졸업 후 잠시 다른 일을 했지만, 결국 가족의 전통을 잇기로 결심했다.
그는 포장 디자인을 현대적으로 바꾸고, 젊은 고객층을 위한 ‘미니 한과 세트’와 ‘다이어트용 무설탕 유과’ 같은 신제품을 출시하며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손으로 만든다”는 기본 철학이다. 그는 말한다. “변화를 주되 본질을 지키는 것이 진짜 전통입니다.”
단맛은 진화하지만, 철학은 변하지 않는다
하루 평균 이 가게에서 생산되는 한과는 100세트도 되지 않는다.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하고 있지만, 대량 생산은 하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 손이 직접 닿지 않으면, 그건 내 한과가 아닙니다.”
3대 사장은 여전히 조청을 끓이기 위해 새벽 5시에 가게 문을 연다. 조청은 빠르게 끓이면 당이 분리되고, 천천히 끓이면 눌어붙기 때문에 기온과 불 조절이 매우 중요하다. 그는 2시간 동안 조청을 저어가며 농도를 맞춘다. 이 과정에서 미세한 온도 차이, 수분 함량 하나로도 맛이 달라지기 때문에, 매일 체크리스트를 작성하며 기록을 남긴다.
한과는 단순한 간식이 아니라고 그는 말한다. “이건 누군가를 위해 준비하는 마음이 담겨 있어야 해요.” 실제로 이 가게를 찾는 고객 중 상당수는 선물용으로 구입한다. “어르신이 좋아하셔서”, “아이 간식으로 안심하고 주고 싶어서”라는 말이 주문서에 함께 적힌다.
그는 고민이 많다. 앞으로 이 일을 누가 이어갈지, 젊은 세대가 이 느린 작업을 감당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 “내가 지금 정성을 다하면, 언젠가 누군가 그 가치를 알아줄 겁니다.”
이 가게에서 나는 단맛은 단순한 맛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세대를 잇는 사랑이고, 시간이 만든 지혜이며, 느림 속에서 완성되는 철학이다. 디지털 시대에 이런 장인정신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가게의 존재 이유는 충분하다. 그리고 이 이야기가 기록되어야 할 이유도 분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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