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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을찾아서

통영 나전칠기 장인, 세계로 수출되는 전통 기술

 화려한 색감과 오묘한 빛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나전칠기’는 한국의 대표 전통공예 중 하나다. 특히 경상남도 통영은 예로부터 나전칠기의 본고장으로 불려왔으며, 지금도 몇몇 장인들이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한 장인은 조개껍데기 조각 하나에도 수십 년의 철학을 담으며, 전통을 단지 지켜내는 것이 아니라, 현대적인 감각과 세계인의 시선까지 사로잡는 방향으로 진화시켜 왔다. 그는 “전통이란 단어가 유물처럼 박제되면 안 된다. 전통은 지금도 살아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통영의 한적한 골목, 오래된 작업장 안에는 나무, 옻, 자개가 어지럽게 놓여 있다. 그 안에서 장인은 하루 종일 허리를 굽히고 조개를 자르고, 옻칠을 바르며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공예를 이어간다. 수출용 고급 인테리어 소품부터 박물관 복원 의뢰품, 해외 디자이너 협업 제품까지 그의 손을 거쳐 나간다. 이 글은 전통 기술을 바탕으로 세계와 소통하는 한 장인의 이야기이며, 동시에 ‘손의 기술’이 어떻게 문화와 산업의 경계를 넘나드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나전칠기 전통기술

나전칠기의 시작, 자개 하나에도 생명이 있다

나전칠기는 단순히 화려한 조개껍데기를 붙이는 작업이 아니다. 그것은 옻칠과 나무, 금속, 섬세한 손기술, 그리고 인내심이 겹겹이 쌓여 탄생하는 예술이다. 장인은 자개를 고를 때부터 까다롭다. 전복, 진주조개, 홍합 등 다양한 조개껍데기를 직접 손질하는데, 그때마다 빛깔과 질감을 수없이 비교한다. “한 장의 자개가 작품 전체의 인상을 결정합니다. 너무 얇아도 안 되고, 광택이 지나쳐도 조화를 깨죠.”라고 그는 말한다.

작업의 첫 단계는 목재를 다듬는 것이다. 나무를 선택할 때는 결이 고르고 수축이 적은 종이를 고르듯 정밀하게 판단한다. 이후 옻칠을 수차례 반복해 기본 바탕을 완성한다. 이때 사용되는 옻은 알레르기를 유발할 수 있어 작업은 항상 마스크와 장갑을 끼고 이뤄지며, 바르고 말리는 과정만 10일 이상 걸릴 때도 있다. 옻칠은 색을 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무를 보호하고 자개의 반짝임을 극대화하기 위한 과정이다.

자개를 붙이는 작업은 가장 세밀한 단계다. 장인은 핀셋으로 1mm 단위의 자개를 조각내고, 도안에 맞춰 퍼즐처럼 맞춰 붙인다. 꽃, 학, 운무 문양 등 전통 문양도 있지만, 최근에는 고객의 요청에 따라 현대적인 추상 패턴도 시도한다. “기술은 지키되, 디자인은 유연하게 가야 합니다. 시대가 달라졌으니까요.” 그의 말에는 장인의 고집과 동시에 디자이너로서의 유연함이 함께 담겨 있다.

 

전통과 현대의 조화 – 세계가 인정한 손의 기술

이 장인의 작품은 단순히 국내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그의 나전칠기 소품은 유럽 고급 백화점 브랜드와 협업해 런던과 파리의 매장에서 판매되기도 했고, 일본의 전통미술 전문관과는 복원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한 바 있다. 특히 최근에는 미국의 한 호텔 체인에서 ‘한국 전통 미감’을 살린 객실 장식용 테이블과 벽걸이 패널을 주문하기도 했다. 그는 이러한 작업을 진행할 때 “한국의 전통 색감과 패턴을 살리되, 현대적 감각과 실용성을 고려한다”고 말한다.

그의 작업장을 찾은 외국인 바이어들은 종종 감탄을 금치 못한다. "이 작은 조각들이 모두 손으로 붙인 거라고요?"라는 질문은 늘 반복되지만, 그럴 때마다 그는 웃으며 대답한다. “네, 기계는 이 결을 몰라요. 이건 눈과 손의 대화예요.” 그의 말처럼 나전칠기는 기계화될 수 없는 공예다. 결의 흐름, 자개의 광택, 옻칠의 깊이는 오로지 장인의 감각이 만들어내는 결과물이다.

하지만 그는 ‘전통만’ 강조하지 않는다. 나전칠기 공예가 예술품이자 산업이 되려면 시장을 읽어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는 최근 젊은 디자이너들과 협업해 스마트폰 케이스, 키링, 장식용 소품 등 현대 소비자가 접근하기 쉬운 제품군도 함께 제작하고 있다. 전통을 보존하되, 그것을 일상 속으로 가져오는 방식. 그것이 그가 말하는 ‘살아있는 공예’다.

 

 전통의 미래를 짓는 손, 그 기술은 계속되어야 한다

이 장인은 이제 60대 중반을 넘겼지만, 여전히 매일 작업실에서 하루 10시간 이상을 보낸다. 작업이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그는 “몸은 힘들어도, 손이 멈추면 마음이 아프다.”고 답한다. 그의 손은 단순한 기술의 도구가 아니라, 삶 그 자체다. 매일 옻칠 냄새를 맡고, 자개를 자르고, 무늬를 새기며 그는 지난 40년 넘는 세월 동안 오직 이 길을 걸어왔다.

제자도 두 명 있다. 한 명은 공예 전공자 출신, 한 명은 디자인을 전공한 청년이다. 그는 자신이 배워온 방식 그대로, 고집스럽게 기본부터 가르친다. 작업의 속도보다 중요한 건 공예에 대한 태도라고 믿기 때문이다. “기술은 가르칠 수 있어요. 하지만 정성은 가르칠 수 없어요. 그건 스스로 깨달아야 해요.” 이 말은 그가 전통을 대하는 마음을 가장 잘 설명한다.

한국의 많은 전통 기술이 점점 사라져가는 지금, 이 장인의 존재는 단순히 ‘공예인’이 아닌, 한 시대의 기록자다. 그의 작품은 단순한 장식품이 아니라, 한국 문화의 철학과 품격이 녹아 있는 결과물이다. 나전칠기를 통해 우리는 눈으로 감상하는 것 이상의 가치를 느끼게 된다. 그것은 시간, 정성, 그리고 사람의 손이 만든 진짜 예술이다.

전통은 누군가가 끝까지 붙잡아야 살아남는다. 통영의 이 장인은 기술과 철학, 감각과 감정을 손끝에 모아 지금도 한 점 한 점을 완성해 나가고 있다. 그리고 그 손이 멈추지 않는 한, 한국의 전통은 여전히 살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