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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교 활용공간 리뷰

폐교를 리모델링한 일시 보호소 체험기

폐교는 종종 ‘사라진 공간’으로 불린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종이 울리는 소리도 멈췄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침묵이 누군가에겐 쉼이 될 수 있다면 어떨까?
기자는 그런 이야기를 듣고 강원도 영월의 외딴 마을을 찾았다.

그곳엔 ‘다시, 쉼’이라는 이름의 공간이 있었다.
폐교된 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해 단기 머무름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임시 거처를 제공하는 보호소.
여기에는 쉼이 필요한 여행자, 직장을 잃은 청년, 병간호에 지친 보호자, 일시적 거주지가 없는 노인들이 잠시 머무르고 있었다.

운영 주체는 지역 복지재단과 건축 협동조합, 그리고 이 마을 주민들이 함께 꾸려가고 있다.
기자는 단 2박 3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그 ‘머무름의 가치’를 다시 배우게 되었다.

 

폐교 안 리모델링 한 교실은 방이 되고, 운동장은 정원이 된다

건물은 겉보기에 여전히 학교였다.
페인트가 벗겨진 외벽, 녹슨 철문, 그리고 마을 아이들이 그려놓은 낡은 벽화. 하지만 내부는 조용한 배려로 가득했다.

각 교실은 단기 거주자들을 위한 독립 숙소로 리모델링돼 있었다.
책상은 사라졌고, 대신 낮은 침대와 전기매트, 소형 냉장고, 무릎담요가 걸린 의자, 커튼이 드리워진 창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1학년 교실은 노부부를 위한 방이었고, 3학년 교실은 아이와 함께 머무는 모자의 공간이었다.

기자가 묵게 된 곳은 과학실을 리모델링한 1인 쉼터였다.
벽에는 여전히 화학 원소 주기율표가 붙어 있었고, 창문으로는 운동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 운동장은 이제 작은 텃밭과 나무 벤치가 있는 정원 겸 공동 휴게 공간이 되었다.

기자는 그 풍경을 바라보며  이곳이 ‘머무는 사람’을 위한 공간으로 얼마나 조심스럽게 만들어졌는지를 느꼈다.

폐교를 리모델링하여 만든 일시 보호소 체험기

말하지 않아도 괜찮은 공간

기자는 첫날 저녁, 공동식사 시간에 다른 거주자들과 함께 밥을 먹었다.
누구도 이름을 묻지 않았고, 어느 누구도 먼저 이야기를 하려 하지 않았다.
대신 서로의 눈치를 살피지 않고 그저 조용히 밥을 뜨고, 국을 따르고, 차를 마셨다.

그 침묵은 어색함이 아닌 배려였다.
이 공간은 어떤 사연을 가진 사람이든 자신의 이야기를 굳이 꺼내지 않아도 되는 곳이었다.
침묵이 허락되는 드문 공간이자, 말하지 않아도 위로가 전해지는 곳.
기자는 오랜만에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편안함을 느꼈다.

식사 후, 기자는 운동장을 천천히 걸었다.
멀리 나무 벤치에 앉아 있는 한 중년 남성과 눈이 마주쳤지만 그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고, 기자도 가볍게 인사만 했다.
그 짧은 교감이 오히려 마음 깊숙이 남았다.

말보다 조용한 공존이 이 폐교를 살아 있게 만드는 힘이라는 걸 기자는 깨달았다.

 

‘잠시’의 의미를 가르쳐준 교실

이틀째 아침, 기자는 공용 책장에서 꺼낸 시집을 읽었다.
한 시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잠시 머물렀던 그곳이, 오히려 내 삶을 오래 떠나지 않았다.”

기자는 이 공간이 단순한 ‘머무는 장소’가 아니라는 걸 실감했다.
여기서는 삶의 중간 지점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권리’를 회복하고 있었다.

옛날 이 교실에서 누군가는 국어를 배우고, 수학을 배웠을 것이다.
지금은 누군가가 조용히 ‘자신을 다시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그것은 어느 수업보다 깊고, 더 오래 남는 배움이었다.

기자는 이 폐교가 지금 이 시대에 꼭 필요한 감정의 피난처라는 것을 느꼈다.
정해진 출석부도, 알림장도 없지만 이곳에서는 삶이 다시 정돈되고 있었다.

 

나도 언젠가, 누군가의 빈자리였을까

기자가 떠나는 날, 운동장에는 다시 아침 햇살이 들어왔다.
누군가는 여전히 창가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고, 누군가는 텃밭에 물을 주고 있었다.
그 풍경은 한 편의 느린 다큐멘터리 같았다.

기자는 짐을 꾸리며 방 벽에 걸린 작은 종이에 적힌 문장을 발견했다. “당신이 머물렀던 자리는 누군가에게 필요한 자리였습니다.”
그 한 줄이 기자의 마음을 오래 붙잡았다. 기자는 문득 생각했다.
나도 누군가에게는 지나간 ‘잠시의 자리’였을지도 모른다고.

이 폐교는 그렇게 사람과 사람 사이, 머무름과 떠남 사이의 공백을 채워주고 있었다.
그리고 기자는 그 교실을 떠나면서, 마음속 한 자리에 조용한 빈칸 하나를 남겼다.
언젠가 다시 누군가가 그 자리에 머물 수 있도록.

 

비워진 책상 위에 놓인 마음 하나

기자가 머물렀던 과학실 방 한켠에는 오래된 책상이 하나 남아 있었다.
흠집이 가득한 책상 위에는 누군가 남겨둔 작은 노트가 놓여 있었다.
노트 첫 장에는 짧은 글귀가 적혀 있었다.
“이곳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괜찮았습니다. 그게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기자는 책상 앞에 앉아 한참을 가만히 그 글을 바라봤다. 이 공간은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았다.
눈에 띄는 위로를 내세우지도 않았고, 사연을 끌어내려 하지도 않았다.

그저 존재 자체를 인정하는 곳, 그 자체로 위로가 되는 교실이었다.
기자는 오래전 이곳에서 수업을 받았을 아이들을 떠올렸다.
이제는 그 책상 위에 또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시간을 잠시 올려놓고 가고 있었다.

 

떠나는 사람, 남는 공간, 계속되는 머무름

떠나기 전날 밤, 기자는 복도를 걸으며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이 폐교는 ‘머무름’과 ‘떠남’의 순환을 조용히 반복하는 구조라는 것을.

누군가는 오늘 이 공간에 처음 도착하고, 누군가는 내일 이 공간을 떠난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 공간을 완전히 지우고 떠나지는 않는다.
누군가가 남긴 온기, 말 없는 배려, 시선 하나가 다음 사람에게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운동장 구석에 심어진 작은 들꽃도 그런 존재였다.
누가 심었는지, 언제부터 피기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꽃은 분명 누군가의 ‘잠시’가 남긴 흔적이었다.
기자는 그 꽃 앞에서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그 순간, 폐교라는 공간이 단지 ‘남은 건물’이 아니라 삶의 잔상들을 품고 있는 감정의 겹이라는 걸 실감했다.

 

우리가 만든 빈자리에는, 누군가의 내일이 온다

기자는 도시로 돌아온 후에도 이따금 그 과학실의 냄새와 창밖 풍경을 떠올렸다.
햇살이 들어오던 커튼, 찻잔을 쥐던 손의 온기, 그리고 아무 말 없이 마주보던 사람들의 조용한 미소.
그 모든 장면은 짧았지만 오래 남았다. 머무름이 깊을수록, 떠남도 조용해진다는 것을 이곳에서 처음으로 배웠다.

기자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되뇌었다. “우리가 만든 빈자리에는, 언젠가 또 다른 누군가의 내일이 들어온다.”
그 사실만으로도 이 폐교는 지금 이 시대에 가장 따뜻한 교실이 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교실은 앞으로도 조용히, 누군가의 이름 없는 마음을 받아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