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의 어느 5일장, 해가 뜨기 전 시장 골목 한편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그곳은 한 노부부가 운영하는 작은 떡집이다. 간판도 없고, 메뉴도 따로 써놓지 않았지만 그 앞에는 늘 손님이 줄을 선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 집 떡은 '정직한 맛'이기 때문이다. 새벽 4시부터 찹쌀을 불리고, 손으로 반죽하고, 장작불에 쪄내는 과정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반복한 지 30년.
그들의 떡은 단순한 간식이 아니다. 누군가에겐 어린 시절 외할머니 손맛을 떠올리게 하는 음식이고, 누군가에겐 명절 아침 조용히 나누던 가족의 온기를 되살려주는 매개다. ‘쫀득함’보다 ‘정성’이 먼저 느껴지는 이 떡에는 시간의 깊이와 손의 온기가 배어 있다.
이 글은 광주 5일장에서 수십 년을 지켜온 한 떡집의 이야기다. 단순히 전통 음식 하나를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정직한 방식으로 음식을 만들어가는 한 가족의 삶을 기록한 글이다. 사라져가는 재래시장의 정성과, 장인의 손끝에서 피어나는 진짜 ‘우리 맛’을 다시 바라보는 시간이다.
찹쌀 고르기부터 불리기까지 – 떡의 시작은 물과 시간이다
떡은 밀가루 음식과는 다르다. 곡식 자체를 물에 불리고, 빻고, 찌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지기 때문에 원재료의 상태와 시간의 조절이 매우 중요하다. 이 집 떡의 첫 단계는 ‘찹쌀 고르기’다. 광주 인근 곡성이나 담양에서 수확한 햅쌀 중에서도 윤기가 도는 찹쌀만을 선별해 직접 구입한다. “쌀눈이 살아 있어야 찰기도 살아 있어요.”라는 주인의 말처럼, 좋은 떡의 출발은 좋은 쌀에서 시작된다.
쌀을 고르면 바로 물에 담근다. 여름에는 6시간, 겨울에는 12시간. 계절에 따라 불리는 시간이 다르고, 이때 물 온도와 습도에 따라 떡의 식감이 크게 좌우된다. 그는 말한다. “쌀이 말을 해요. 지금 된 건지 아닌지, 손에 만져보면 알아요.” 불린 쌀은 곧바로 맷돌에 갈아 고운 가루로 만든 후, 다시 천으로 수분을 조절한다. 이 모든 과정은 손의 감각에 따라 진행된다.
찜기에 넣기 전, 반죽은 꼭꼭 눌러 공기를 빼고, 일정한 두께로 다듬는다. 떡을 찔 때는 가마솥에 장작을 넣어 불을 지핀다. 도시가스도 전기도 아닌, 전통 방식 그대로다. 이 때문에 장작의 종류, 불 세기, 찜기 온도까지 수시로 조절해야 한다. 찜기에서 김이 오르고 나서야 비로소 떡의 향이 퍼진다. “이 냄새가 나야 돼요. 그래야 떡이 익은 거죠.” 그는 떡에서 나는 냄새로 완성도를 판단한다.
떡을 파는 것이 아니라, 추억을 나눈다는 마음
이 집의 가장 큰 특징은 ‘떡의 종류가 매일 다르다’는 것이다. 어떤 날은 팥시루떡, 어떤 날은 콩찰떡, 또 어떤 날은 백설기나 절편이 나온다. 메뉴는 손님이 아니라, 그날 구한 재료와 계절의 흐름에 따라 정해진다. “팥이 좋으면 팥떡을 하고, 콩이 크면 콩찰떡을 해요.” 장사는 손님 맞춤이 아니라, 자연과의 조화 속에서 이루어진다.
떡을 사러 오는 손님들 중에는 단골이 많다. 10년 넘게 그 떡만 먹는다는 고객도 있고, 어릴 때 시장에서 먹었던 떡을 그리워해 일부러 먼 길을 오는 사람도 있다. “이 떡은 씹을수록 맛있어요. 먹고 나면 기분이 편안해요.”라고 말하는 손님들의 말에는 단순한 만족을 넘어선 감정이 담겨 있다.
심지어 이 집 떡은 결혼식 답례품, 환갑잔치, 제사 음식으로도 주문이 들어온다. “할머니 댁에서 먹던 떡이랑 똑같다”며 눈시울을 붉히는 이도 있다. 떡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음식이 아니라, 추억과 감정을 함께 나누는 매개체가 된다. 그래서 그는 말한다. “우리는 떡 장수이기 전에,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이에요.”
이 말은 단순한 겸손이 아니라, 그의 철학이다. 떡 하나에 담긴 정성과 기억, 그리고 손님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태도는 그 어떤 마케팅보다 진실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집은 광고 없이도 늘 손님이 찾아온다.
사라지지 말아야 할 손의 기술, 시장에서 이어지는 시간
요즘은 떡도 대형 프랜차이즈나 온라인몰에서 간편하게 살 수 있는 시대다. 색이 화려하고, 포장이 깔끔한 제품들이 소비자의 시선을 끈다. 하지만 이 집은 그 흐름을 따르지 않는다. 매일 그날 만든 떡만 팔고, 남은 떡은 다음날 절대 재판매하지 않는다. 그래서 하루 판매량은 한정되어 있고, 다 팔리면 가게 문을 닫는다. “남기면 그건 떡이 아니에요. 정성이 아니죠.”
이 집 주인은 말한다. “떡은 손이 기억하는 음식이에요. 아무리 레시피를 적어도, 손으로 느껴야 완성이 돼요.” 그래서 그는 지금도 새벽마다 손으로 쌀을 씻고, 맷돌을 돌리며 떡을 만든다. 이 일은 편하지도, 빠르지도 않다. 하지만 그 느림 속에서 떡은 제 맛을 낸다. 그리고 그 떡을 기다리는 이들 덕분에 이 작은 시장 떡집은 계속해서 불을 지핀다.
앞으로 떡을 배우겠다는 젊은 사람은 드물다. "너무 고되고 돈도 잘 안 되니까요." 그는 걱정스럽게 말하지만,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이 떡 하나가 누군가에겐 가족이고, 추억이고, 위로일 수 있어요.”
그 말처럼 광주 5일장 떡집의 하루는 단지 음식을 만드는 시간이 아니라, 사람을 다시 이어주는 시간이다. 김이 오르는 찜기 앞에서 묵묵히 떡을 뒤집는 그의 손은 오늘도 어제와 다름없이, 그러나 어제보다 더 정직하게 움직이고 있다.
떡이라는 음식이 지켜낸 것들
이 떡집에서 만들어지는 떡은 단지 전통의 재현이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지역 공동체의 일상을 이어온 상징이기도 하다. 장날이 되면 이 떡집 앞에서 누군가는 아침을 대신하고, 또 누군가는 먼 길 떠나는 자식 손에 떡 한 봉지를 쥐여 보낸다. 그렇게 떡은 단순한 음식 그 이상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매개가 되어 왔다.
주인은 말한다. “우리가 하는 일은 단순히 떡을 파는 게 아니라, 시장이라는 공간을 지켜내는 일이에요.” 실제로 이 떡집이 문을 닫지 않고 계속되는 덕분에 인근 좌판 상인들도 활기를 잃지 않는다. 누군가 따뜻한 떡을 들고 지나가면, 옆 좌판에서 김치 한 포기, 생선 한 토막이 함께 팔려 나간다. 시장은 그렇게 서로 기대며 살아 숨 쉬는 공간이다.
그의 딸은 현재 직장 생활 중이지만, 명절이 다가오면 늘 가게 일을 돕는다. “아버지 일이 고되고 힘든 줄 알았는데, 해보니까 떡 하나에 손님들이 얼마나 감동하는지 알겠어요.” 그녀는 언젠가 부모님의 떡집을 이어가고 싶다고 말한다. 비록 장사 수익은 크지 않지만, 이 일을 통해 받는 따뜻한 눈빛과 말 한마디가 돈보다 더 큰 가치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 떡집이 지키는 건 단순한 음식이 아니며 또한 그런 맛은 빠르고 화려한 세상에서는 절대 따라 할 수 없는, 오직 사람의 손이 만들어낼 수 있는 유일한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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