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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을찾아서

완도 전통 해초 방석 장인, 바다에서 자란 안정을 짜다

완도의 해풍은 늘 비린듯하고 짠내가 감도는데도 이상하게 정겹다.
이 마을에선 염분 가득한 바람이 곧 삶의 냄새이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오래된 집 하나, 낮고 작지만 늘 바닥이 따뜻한 공방에서
70대 중반의 장인 김만호 씨는 오늘도 해초를 엮고 있다.
그가 만드는 건 화려한 수공예품도 아니고, 누군가의 눈길을 사로잡을 진열 상품도 아니다.
그의 손은 바닷가에서 채취한 해초를 삶고 말려,
사람의 몸을 감싸주는 해초 방석을 만든다.
그는 말한다.
“방석이란 건 엉덩이를 놓는 게 아니라, 마음을 쉬게 하는 자리예요.
그래서 뭘로 만들고, 어떻게 짜느냐가 중요해요.”
그가 만드는 방석은 단지 앉는 도구가 아니다.
거기에는 바다의 시간과, 손의 기억, 그리고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기술이 함께 들어 있다.

 

바다에서 건져 올린 실, 해초를 다듬는 손

김만호 장인이 사용하는 해초는 ‘꼬시래기’라고도 불리는 청태 해조류다.
완도 앞바다에서 4~5월 사이에 채취해 바닷물에 헹군 뒤,
햇볕에 널어 5일 이상 말려야 한다.
말린 해초는 딱딱하게 굳지만, 다시 물에 불리면 실처럼 부드러워진다.
그는 바닷물에 해초를 두 번 헹군 뒤,
깨끗한 민물로 마지막 세척을 한다.
“바다에서 자란 거라 바닷냄새는 남겨야 돼요.
근데 소금기나 불순물은 꼭 빼야 하죠.
그게 그대로 방석에 남으면 냄새도 안 좋고, 금방 썩어요.”
그의 해초는 세척부터 다른 장인들과 다르다.
한 올 한 올 손으로 훑으며
뿌리 끝이나 단단한 부분을 제거하고,
결이 고운 줄기만 남긴다.

방석의 주재료로 쓰일 해초는
폭 1cm 미만의 일정한 굵기로 엮어야 하며,
조금이라도 뻣뻣하거나 꺾인 부분이 있으면
전체 무늬가 틀어진다.
그는 방석 하나를 만들기 위해
해초를 최소 2kg 이상 사용하고,
그중 절반 이상을 선별해 버린다.
“이게 음식이었다면 참 아깝죠.
근데 방석은 평생 쓰는 거니까
재료가 튼튼해야 해요.”
그래서 그는 ‘앉을 수 있는 해초’만을 고르고,
나머지는 다시 바다로 돌려보낸다.
그 과정은 단순히 재료를 고르는 일이 아니라,
누군가의 몸이 앉을 자리를 준비하는 의식과 같다.

둥글게 엮인 해초 방석 위에 손이 결을 따라 교차시키는 장면

엮는다는 건 무늬를 짜는 일이 아니라, 흐름을 만드는 일

김 장인의 해초 방석은 일반적인 돗자리 방식과 다르다.
그는 해초의 결을 살려
일정한 리듬으로 엮어낸다.
기계로 찍은 듯 반듯한 무늬가 아니라,
자연의 곡선을 따라 흐르는 듯한 형태다.
그는 말한다.
“방석은 원래 원형이 많았어요.
사람 엉덩이가 둥그니까요.
네모로 잘라도 그 안에 둥근 결이 있어야 해요.”
그래서 그의 방석은 겉보기엔 단순한 원형이지만,
안쪽 무늬는 사선과 곡선이 교차된 구조다.

엮는 도구는 단 하나, 이다.
긴 해초 줄기를 바늘 대신 손가락 사이로 밀고 당기며,
결을 따라 하나씩 교차시킨다.
그가 하루에 엮을 수 있는 방석은 많아야 두 개.
방석 하나에는 평균 1,000회 이상의 손동작이 들어가고,
방향이 잘못되면 다시 풀어야 한다.
“기계는 반복을 좋아하고, 손은 흐름을 좋아해요.
사람 몸에 맞게 만들려면
패턴보다 감이 필요하죠.”
그래서 그의 방석은 하나도 똑같지 않지만,
모두가 앉았을 때 편안하다.

 

방석은 앉는 물건이 아니라, 앉는 시간을 만드는 물건

사람들은 그의 방석을 처음 보면 고개를 갸웃한다.
“바다풀이 방석이 된다고?”
하지만 실제로 앉아보면,
그 의심은 곧 탄성과 침묵으로 바뀐다.
해초 방석은 딱딱하지 않지만 흐물거리지 않고,
열을 품지 않지만 따뜻한 기운이 느껴진다.
특히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바닥에서 냉기를 막아준다.
김 장인은 이것을 ‘몸에 맞는 자연의 반응’이라 말한다.
“해초는 원래 바닷물 온도에 익숙한 거예요.
그래서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고,
사람 체온과 비슷한 온도를 만들어줘요.”

방석의 쓰임은 단순히 앉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는 이 방석이 명상하는 이들,
허리가 약한 어르신,
혹은 바닥 생활을 오래 하는 사람들
에게
작은 쉼터가 되어주길 바란다.
“앉는 자리가 편해야 마음이 가라앉죠.
엉덩이가 들썩이면 생각도 흔들려요.”
그래서 그는 방석을 만들며 사람을 생각한다.
앉는 자세, 오래 앉았을 때의 체중 분산,
물결처럼 퍼지는 엉덩이 압력까지.
그 모든 걸 그의 손은 기억한다.
그리고 그 기억은, 한올 한올 엮인 방석 안에 담겨 있다.

 

바다에서 온 기술은 유행을 따르지 않는다

김 장인의 방석은 포장도, 로고도 없다.
그는 방석을 주문한 사람에게 항상 묻는다.
“앉을 자리가 어디예요?”
그 물음엔 ‘용도’를 묻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묻는 뜻이 담겨 있다.
식탁용, 명상용, 베란다용…
그가 만들 수 있는 건 그 자리에 어울리는 감각이다.
그래서 그는 디자인보다, 사용자의 몸과 방을 먼저 떠올린다.

그는 말한다.
“바다에서 온 건 시간이 오래 걸려요.
빨리 만들면 금방 상하거든요.”
그래서 그의 작업은 느리다.
하루에 하나도 만들지 못하는 날이 있다.
하지만 그가 만든 방석은 10년, 20년이 지나도 해지지 않는다.
물만 닿지 않게 하면, 자연 그대로의 결이 유지된다.
그 방석은 어느새 그 집의 공기와 온도를 닮고,
앉는 사람의 습관을 따라 모양이 조금씩 변한다.
그건 결함이 아니라 기억이 쌓인 자리의 변화다.
그래서 그의 방석은 유행하지 않지만,
버려지지도 않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 자기 자리를 만들어가는 물건.
그가 만든 건 ‘방석’이 아니라,
앉는 자리를 함께 늙어가는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