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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을찾아서

홍천 참숯 장인, 불과 연기로 남기는 검은 예술

 강원도 홍천. 계곡과 숲이 가득한 이 땅에는 여전히 불과 연기만으로 숯을 만드는 장인이 있다. 이 장인은 30년 넘게 숯을 구워왔다. 기계화된 공정도, 가스 가열도 없다. 오직 산에서 직접 벌목한 참나무, 흙으로 쌓은 전통 가마, 손으로 조절하는 불길과 바람만 있을 뿐이다. “숯은 나무의 마지막 생명이에요. 잘못 구우면 그냥 재가 되지만, 제대로 구우면 백 년을 써도 살아 있어요.”
그는 숯을 에너지원이 아닌, 시간이 남긴 예술 작품이라 말한다. 이 글은 검은색 속에 숨어 있는 불의 기운, 그리고 사라지지 않는 장인의 기록을 따라가는 이야기다.

 

참숯은 나무의 흔적이다 – 참나무를 고르고 준비하는 일

 숯을 만드는 일은 좋은 나무를 고르는 일에서 시작된다. 그는 홍천 산자락을 다니며 참나무를 직접 고른다.
“곧고 단단한 나무가 좋아요. 곁가지가 많으면 속이 무르고, 결이 휘면 숯도 휘어요.” 그는 벌목한 나무를 1년간 햇볕과 바람에 말려 수분을 뺀다. 생나무는 물이 많아 태우면 연기만 나오고, 제대로 된 숯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나무를 쪼개어 쌓아두고 계절의 바람으로 말리는 ‘자연건조 방식’을 고집한다. 그는 말한다. “나무도 자기 숨을 내보내야 숯이 돼요. 안 그러면 안에서 폭발해요.”

건조가 끝나면, 나무를 길이와 굵기별로 잘라 숯가마 앞에 차곡차곡 쌓는다. 그는 가마에 들어갈 순서와 방향을 다르게 배치한다.
“크고 단단한 건 안쪽, 약한 건 바깥쪽. 그래야 열이 고르게 돌죠.” 이 모든 준비는 불을 지피기 전까지 최소 2주가 걸린다.
그는 이 시간을 불을 맞이하는 예식이라 말한다. “급하면 불이 거칠어져요. 불이 예민하니까, 먼저 사람이 침착해야 해요.”

 

불은 스승이고 거울이다 – 숯가마 안의 온도와 감각

 숯가마는 전통 흙가마다. 반원형 구조에 아궁이 하나, 바람구멍 셋. 그 안에서 60시간 이상 불을 지핀다.
그는 불이 아니라 온도와 연기의 색, 연기의 냄새, 벽의 색깔을 보고 불을 읽는다. “파란 연기가 나오면 아직 덜 익은 거고, 흰 연기가 나오면 나무가 물을 내보내는 중이에요. 연기가 투명하면 이제 숯이 되고 있어요.” 가마 안의 온도는 1000도에 육박하지만, 그는 온도계를 쓰지 않는다. 오직 자신의 손과 눈, 피부의 감각만으로 불을 다룬다. “가마 벽에 손을 댔을 때 열이 숨 쉬듯 올라오면 딱 좋아요. 너무 뜨겁거나, 식으면 안 돼요.” 가장 어려운 순간은 불을 끄는 타이밍이다. 너무 빨리 끄면 나무 속까지 익지 않고, 늦으면 다 타버린다. “딱 ‘숨이 끊긴 불’이 되는 순간, 그때 불을 막아야 해요. 안 그러면 재만 남아요.” 그는 숯을 ‘불의 사체’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살아 있는 불이 남긴 형체”라고 부른다. “숯은 타버린 게 아니라, 불을 품은 나무의 마지막 얼굴이에요.”

 

숯은 무게보다 울림으로 기억된다 – 품질과 사람의 태도

 가마에서 식은 숯을 꺼내는 일은 또 하나의 정성이다. 완전히 식지 않은 상태에서 꺼내면 터지거나, 갈라진다. 그는 숯의 소리를 먼저 듣는다. “좋은 숯은 꺼낼 때 ‘짹’ 하고 깨끗한 소리가 나요. 탁한 소리가 나면 내부가 비었단 뜻이에요.” 그는 숯의 결, 무게, 탄화 정도, 겉표면을 보고 등급을 나눈다. 같은 가마에서 나와도 가운데 있는 숯과 모서리의 숯은 품질이 다르다. 그래서 그는 숯마다 용도를 다르게 한다. 백탄은 다도와 향, 흑탄은 요리용, 중탄은 공예용 등으로 구분해 손님에게 설명해 준다. 그는 숯을 판매하면서, 단 한 번도 가격 흥정을 받아들인 적이 없다. “숯은 불이 만든 작품이에요. 값은 내가 아니라 불이 정하는 거예요.” 그는 이 태도가 결국 숯의 품격을 높인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의 숯은 일본 다도 작가들, 국내 전통주 제조자, 조용한 찻집 등에 꾸준히 공급된다. 단지 오래 가는 연료가 아니라, 불의 온도와 사람의 정성이 깃든 ‘울림 있는 재료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검게 익은 참숯을 꺼내며 결을 살피는 홍천 숯 장인

검은색으로 쓰는 기록 – 전통을 불씨처럼 남기는 일

 그는 불을 다루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겸손해지는 일이라고 말한다. “불은 잘못 다루면 다 태워요. 그래서 늘 조심하고, 한순간도 놓치면 안 돼요.” 그는 그래서 숯을 만들면서 자신도 불과 함께 매번 다시 태어난다고 느낀다. 요즘은 참숯을 기계로 대량 생산하거나, 수입산이 대체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는 가마를 닫지 않는다. “사라지게 놔두면 안 돼요. 누군가는 이 불을 붙잡고 있어야 해요.”
그래서 매년 여름마다 불가마 체험 프로그램을 열어 아이들과 청년들에게 숯을 만드는 과정을 함께 나눈다. 그는 그들에게 “숯이 뜨겁게 만들어진다는 걸 몸으로 느껴봐야 안다”고 말한다. 손에 그을음이 묻고, 불길을 가까이서 보고, 땀에 옷이 젖어야만 숯이 단순한 연료가 아니라 정성과 시간의 결과물이라는 것을 안다. 오늘도 홍천 산자락 아래, 숯가마에서 불이 피어오른다. 그 불 속에는 나무의 기억, 장인의 숨결, 그리고 꺼지지 않는 전통의 온기가 깃들어 있다. 검고 조용한 숯 한 덩이는, 그 자체로 살아 있는 불의 기록이다.

 

불이 남긴 고요, 숯이 품은 사람의 마음

 그에게 숯은 단순한 연료도, 공예품도 아니다. 그는 숯을 "사람의 마음을 담는 그릇"이라 표현한다. "불이 너무 강하면 숯이 깨져요. 불이 약하면 숯이 숨겨져요. 사람도 그래요. 적당히 지펴야, 안에 있는 게 드러나죠." 이 말을 들으면, 그가 다루는 것은 나무보다 오히려 사람의 본질에 더 가까운 것처럼 느껴진다. 실제로 그는 숯을 보며 사람의 성격을 떠올리기도 한다. 단단하고 균일한 결을 가진 숯은 조용한 사람, 깨끗이 타올랐지만 일부가 갈라진 숯은 겉과 속이 다른 사람. 그는 웃으며 말한다. "숯도 사람처럼 저마다 다르고, 다 쓸모 있어요. 갈라졌다고 버릴 건 없어요. 오히려 향이 더 깊어요." 그는 가마를 닫을 때, 항상 숯 앞에 손을 모은다.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동작일 수 있지만, 그에게는 이 작업을 정리하고 불에게 인사하는 예의다. “이건 나 혼자 만든 게 아니에요. 나무도, 불도, 바람도 다 같이 만든 거예요. 내가 한 건 그냥 도와준 것뿐이죠.” 이런 마음가짐 때문인지, 그의 숯은 단순히 타는 용도에 그치지 않는다. 찻집에서는 은은한 향을 위해 숯을 피우고, 도예가는 도자기를 식힐 때 숯을 넣는다. 심지어 전통 한약방에선 숯의 온기로 약재를 덥히는 데 그의 숯만 고집하는 곳도 있다.  “숯은 검지만, 안에 불의 기억을 갖고 있어요. 그래서 따뜻해요.” 라고 말하는 장인의 말처럼 그의 숯에는 단순한 열이 아니라, 정직함, 인내, 고요함 같은 보이지 않는 감정들이 눌어붙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