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장흥은 물 좋고 공기 맑은 고장으로, 예부터 표고버섯 산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일반적인 버섯 재배가 비닐하우스 안에서 인공배지로 이루어진다면, 이곳 장흥의 전통 표고는 여전히 참나무에 직접 종균을 접종해 키우는 자연 재배 방식을 고수한다. 햇빛과 바람, 습기와 이슬, 그리고 사람의 손끝이 함께 만든 표고버섯은 씹을수록 고요하게 퍼지는 깊은 맛과 향을 갖는다.
장흥 외곽의 한 산중턱. 30년 넘게 참나무 원목 재배 방식으로 표고버섯을 키워온 장인이 있다. 그는 매일 아침 첫 기온을 확인하고, 나무의 수분 상태를 손으로 느끼며, 그날의 버섯 상태를 결정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표고는 버섯이지만, 사실 나무에서 자라는 생명체입니다. 물로 키우는 게 아니라 습기로 키우는 거예요.”
이 글은 단순히 표고버섯 재배법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자연의 속도에 맞춰 사람이 ‘조율자’로서 개입하는 전통 농법,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표고가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를 기록하는 글이다. 장인의 눈으로 본 '나무와 습기 속에서 자란 고요한 식감'은 현대 농업이 잊어버린 감각의 일부이기도 하다.
표고버섯은 자라지 않는다, 자라게 둔다 – 재배보다 기다림의 기술
장흥의 이 장인은 해마다 11월이 되면 5년생 이상 된 참나무를 벌채해 일정 길이로 자른다. 이 나무에 직접 구멍을 뚫고, 표고버섯 종균을 주입한 뒤 1년 이상을 그늘진 숲에서 자연 상태로 숙성시킨다. 이 숙성 과정은 단순한 보관이 아니라, 나무 내부에서 버섯 균사가 퍼지며 ‘버섯이 자랄 준비를 하는’ 기간이다.
그는 이 과정을 ‘균의 여행’이라고 부른다. “종균이 나무 속을 잘 퍼져야 그 다음 해에 좋은 버섯이 올라와요. 너무 습해도 안 되고, 너무 건조해도 안 되죠.” 그 말을 들으며 사람들은 묻는다. “그럼 뭐가 기준인가요?” 그는 대답한다. “손끝과 코예요. 나무를 만져보고, 냄새를 맡아야 하죠.”라고 말한다.
이후 균이 자리 잡은 나무는 봄비가 내린 뒤 습도가 높아지기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버섯을 올린다. 그는 그 시점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나무와 날씨의 흐름을 매일 기록하며, “올해는 조금 늦겠구나”, “바람이 세서 버섯이 적겠네” 같은 감각적 언어로 판단한다. 이는 농사가 아니라 자연의 리듬을 읽는 감각에 가깝다.
수확은 손으로 직접 한다. 칼로 자르지 않고, 손가락으로 비틀어 돌려 따는 것이 원칙이다. 그렇게 따낸 표고는 크기가 일정하지 않고, 갓의 두께나 색깔도 제각각이다. 그는 말한다. “자연에서 자란 생물이 다 똑같으면 이상하죠. 그래서 더 맛있고, 그래서 더 귀한 거예요.”
향이 아니라 ‘묵직함’ – 장흥 표고의 고유한 식감
장흥 전통 표고의 가장 큰 특징은 ‘향’보다 ‘식감’이다. 육수를 우려내면 버섯의 진한 깊이가 국물에 퍼지고, 볶거나 구워도 형태가 쉽게 흐트러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바로 나무 원목에서 천천히 자란 조직 밀도 덕분이다. “하루 만에 자란 버섯과 3주에 걸쳐 자란 버섯은 결이 다릅니다. 입에 넣어보면 달라요.” 그는 그렇게 버섯을 맛이 아니라 ‘결’로 이야기하는 장인이다.
그는 표고를 수확한 후 절대 인공 건조기를 사용하지 않는다. 햇빛과 바람, 그리고 약간의 연기가 함께 머무는 자연건조 방식으로 일주일 이상 말린다. 이렇게 말린 표고는 향이 살아 있으면서도 쓴맛이 없다. 시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급속 건조 표고와 비교하면 색이 짙고, 향은 은은하며, 육질은 단단하다.
그의 표고버섯은 전국 고급 한식당과 사찰, 전통 요리연구가들에게 인기다. “이거 하나 넣으면 육수맛이 바뀐다”, “된장국에 딱 두 개만 넣어도 맛이 깊어진다”는 평가가 이어진다. 그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기쁘기도 하지만, 그보다 “자연에서 온 맛을 다시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반갑다”고 말한다.
그는 표고를 단순한 식재료로 보지 않는다. “표고는 나무가 사람한테 내어주는 마지막 선물이에요.” 참나무는 버섯을 키우고 나면 서서히 생명을 잃는다. 그 나무에서 마지막으로 자란 버섯이 사람의 밥상에 오르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건 그냥 먹는 게 아니라, 산의 수고를 함께 먹는 거예요.”라고 말한다.
나무 한 그루, 버섯 한 송이 – 남기고 싶은 생명의 순환
그는 표고 재배를 농업이라기보다 ‘순환의 기술’이라고 말한다. 나무가 자라고, 버섯이 피고, 나무가 사라지는 과정까지가 하나의 생명 주기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수확이 끝난 나무는 잘게 썰어 다시 땅에 묻는다. 다음 세대의 땅을 위한 퇴비가 되도록. “땅은 우리가 쓰고 버리는 게 아니라, 다음 사람이 이어가게 하는 거예요.”
요즘 그는 손자와 함께 산을 돈다. 아직 어린 손자가 버섯을 보고 “이게 나무에서 나왔다고?” 묻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고 한다. 그는 그 눈빛에서 자연을 향한 궁금증과 경외심을 다시 발견한다. 그래서 그는 가끔 손자에게 나무를 깎는 법, 종균을 넣는 법을 가르쳐준다. “언젠가는 이걸 잇겠죠. 그게 아이가 아니어도 누군가는 또 할 겁니다.”
장흥 전통 표고버섯은 더 이상 흔하지 않다. 인건비와 시간이 많이 들고, 수익성도 낮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말한다. “이 방식을 아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없어지진 않아요.” 그래서 그는 기술을 문서화하고, 작은 교육장을 만들어 이웃 청년들에게도 재배 방식을 전하고 있다. “내가 이걸 놓으면, 아예 끊길까 봐요. 그래서 조금이라도 남기고 싶어요.”
오늘도 장흥의 산속에서는 참나무 한 그루에 버섯 한 송이가 조용히 자라고 있다. 누군가의 손에 들려지기 전까지, 아무도 모르게 자라난 그 식감. 물도, 거름도 없이 나무와 공기만으로 자란 그 버섯 속엔 자연이 살아 있고, 그 자연을 지켜온 한 장인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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