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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산골의 꿀 장인, 야생 벌과 함께한 30년의 기록 강원도 정선. 고산지대 특유의 청량한 공기와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이 땅은, 자연 그대로의 야생이 살아 숨 쉬는 곳이다. 사람보다 나무가 더 많고, 자동차보다 새소리가 먼저 들리는 이 산골에서 누군가는 30년 넘게 벌과 함께 살아왔다. 단순한 양봉이 아니라, 야생벌을 기르고 보호하며, 꽃 피는 계절을 기다려 꿀을 채밀하는 일을 평생의 업으로 삼은 사람. 그가 바로 이곳 꿀 장인이다.처음에는 생계를 위해 시작했지만, 지금은 벌을 지키는 일이 삶의 철학이 되었다. 그는 말한다. “꿀을 얻는 건 벌을 돕는 대가일 뿐, 자연에서 가져온 게 아니라 자연이 허락한 거예요.” 그 말에는 생명에 대한 존중과 시간에 대한 경외가 담겨 있다.이 글은 단순히 꿀의 효능이나 양봉 기술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다. 한 사람이 자.. 더보기
청송 전통 장칼국수집, 밀가루 반죽으로 이어가는 어머니의 손맛 경북 청송, 유네스코 지질공원으로 유명한 이 고장에는 외지인이 잘 모르는 숨은 식당이 하나 있다. 읍내 시장을 지나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야 나오는 이 장칼국수집은 40년이 넘도록 오직 ‘장칼국수’ 하나만을 끓여온 집이다. 식당 간판에는 오래된 페인트가 벗겨졌고, 메뉴판도 바래 있지만, 매일 아침 문을 열자마자 줄이 서기 시작한다.이 집을 지켜온 이는 올해로 일흔이 넘은 한 어머니. 그가 처음 장칼국수를 끓이기 시작한 건 남편을 잃고 세 아이를 키우던 시절이었다. 당장 식구들 입에 들어갈 반찬이 없어, 된장과 고추장을 푼 국물에 밀가루 반죽을 풀어 끓여낸 것이 시작이었다고 한다. "뭐라도 끓여야 했어요. 그래야 아이들 밥을 먹었으니까요." 그 한 그릇은 그렇게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고, 이후 시장 사람들의 .. 더보기
강진 청자 가마터 장인, 흙과 불로 빚은 고려의 시간 전라남도 강진은 고려청자의 본고장이다. 산과 바다 사이에 자리 잡은 이 조용한 땅은, 과거 고려 왕실에 바칠 청자를 굽던 수많은 가마터가 있던 곳이다. 맑고 깊은 비취색의 청자 하나에 담긴 온기와 빛깔은 단순한 도자기를 넘어, 한국 도예문화의 정수로 평가받는다.강진 외곽의 한 마을. 지금도 매일 흙을 다지고 불을 지피는 이가 있다. 고려시대부터 내려온 가마터 바로 옆에서 40년 넘게 청자를 굽고 있는 한 장인이다. 그는 "청자는 빛깔보다 마음을 담는 그릇"이라 말한다. 기술은 반복으로 완성되지만, 그릇에 담기는 감정과 철학은 하루아침에 쌓이지 않는다.이 글은 단순히 청자 만드는 과정을 소개하는 글이 아니다. 강진이라는 지역의 역사, 흙이라는 생명체, 그리고 불이라는 자연의 힘을 빌려 시간을 빚어온 한 장.. 더보기
대구 약령시 전통 한약방 주인, 현대인에게 맞춘 한방 철학 대구 중구에 위치한 ‘약령시(藥令市)’는 조선 시대부터 내려온 전통 약재 시장이다. 35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이 시장은 지금도 골목골목마다 한약 냄새가 진하게 밴 곳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도심 속에서도 이곳만큼은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약재 상점과 한약방들이 모여 있고, 상인들의 말투도 구수하다. 이곳의 한 약방을 40년 넘게 지켜온 한 노약사는 여전히 매일 아침 6시면 문을 연다.그는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사람의 몸은 자연의 이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의 약방에는 현대식 인테리어도, 자동화 시스템도 없다. 다만 책장 가득 한약 고서와, 벽에 걸린 수백 가지 약초 표본, 그리고 오래된 손 저울과 도마만이 존재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사람을 직접 만나는 시간’이다. “.. 더보기
문경 전통 찻집 주인, 다관에서 우려낸 시간의 여백 문경새재 초입, 산자락이 천천히 흐르는 그 언덕길 한쪽에 작은 찻집이 있다. 간판은 ‘다관(茶館)’이라는 손글씨 세 글자뿐. 따로 홍보를 하지 않아도 이곳을 찾는 이들은 꾸준하다. 이유는 단 하나, 이곳에선 '차를 마신다'기보다 '시간을 머무른다'는 감각이 있기 때문이다. 조용한 다실 한켠에 앉아 차를 따르는 소리를 들으면, 일상에 밀려 잊고 지낸 여백의 미가 되살아난다.이 찻집을 운영하는 주인은 올해 예순을 넘겼다. 30대 중반에 도시에서의 삶을 접고 문경으로 내려와 다도(茶道)를 배우며 살아온 지 25년이 넘었다. 지금도 매일 새벽이면 가게 마당의 찻잎을 만지고, 물의 온도를 체크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차를 우리기 전에는 반드시 마음부터 가라앉혀야 합니다."라고 말하는 그의 말투는 늘 낮고 느리다... 더보기
남해 멸치액젓 만드는 부부, 바다에서 온 선물의 숙성 기술 남해 바다에는 계절마다 물빛이 달라진다. 봄에는 연하고, 여름에는 깊고, 가을에는 유난히 맑다. 그리고 이 바다에서 나는 멸치는, 단순한 생선이 아닌 삶의 일부다. 이 멸치가 간수와 함께 오랜 시간을 견디며 숙성되면, 우리는 그것을 ‘멸치액젓’이라고 부른다. 마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액젓 한 병 뒤에는 사실 상상도 못할 만큼의 정성과 시간이 담겨 있다.남해군 서면의 한 어촌 마을, 그곳에는 30년 넘게 멸치액젓만을 만들어온 부부가 있다. 둘 다 바다에서 태어나고 자라 바다와 함께 늙어가고 있으며, 지금도 직접 멸치를 잡고, 손으로 소금에 절이고, 항아리 속에서 1년 넘게 기다리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이 부부에게 액젓은 ‘양념’이 아니라 ‘철학’이고, ‘생계’가 아니라 ‘사명’이다.이 글은 단순히 액젓.. 더보기
광주 5일장 떡집 주인, 정성으로 쪄내는 시간의 맛 광주의 어느 5일장, 해가 뜨기 전 시장 골목 한편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그곳은 한 노부부가 운영하는 작은 떡집이다. 간판도 없고, 메뉴도 따로 써놓지 않았지만 그 앞에는 늘 손님이 줄을 선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 집 떡은 '정직한 맛'이기 때문이다. 새벽 4시부터 찹쌀을 불리고, 손으로 반죽하고, 장작불에 쪄내는 과정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반복한 지 30년.그들의 떡은 단순한 간식이 아니다. 누군가에겐 어린 시절 외할머니 손맛을 떠올리게 하는 음식이고, 누군가에겐 명절 아침 조용히 나누던 가족의 온기를 되살려주는 매개다. ‘쫀득함’보다 ‘정성’이 먼저 느껴지는 이 떡에는 시간의 깊이와 손의 온기가 배어 있다.이 글은 광주 5일장에서 수십 년을 지켜온 한 떡집의 이야기다. 단순히 전통 음식 하.. 더보기
서울 북촌에서 만난 한복 장인, 젊은이와 전통의 연결고리 서울 북촌 한옥마을을 걷다 보면, 고즈넉한 기와지붕 사이로 전통 옷감을 다듬는 이의 손길이 보인다. 찬란한 햇빛 아래 자연 염색된 한복 치마가 너풀거리는 모습은, 마치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기분을 준다. 우리는 흔히 한복을 명절이나 특별한 행사 때 입는 옷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떤 이에게는 한복이 단지 ‘입는 것’을 넘어서 ‘사는 방식’이기도 하다.이 글은 북촌에서 30년 넘게 한복을 지어온 한 장인의 이야기다. 그는 전통을 고집하면서도 시대의 흐름에 유연하게 대응해왔다. 한복을 지을 때 그는 단지 디자인만 고려하지 않는다. 옷을 입는 사람의 체형, 직업, 계절, 그리고 취향까지도 함께 담는다. 그는 말한다. “한복은 사람을 감싸주는 옷이에요. 멋이 아니라 마음을 담는 작업이죠.” 이 글은 바로 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