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속에 버려진 건물은 보통 시간의 흔적을 간직한 채 조용히 사라진다. 그러나 강원도의 깊은 산골, 해발 400m 고지에 위치한 한 폐교는 그 공식에서 완전히 벗어난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이곳은 한때 지역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던 초등학교였다. 하지만 학생 수 감소로 폐교된 후, 수년 동안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곳이기도 했다.
놀라운 점은 바로 이 폐교가 지금은 하루 평균 2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방문하는 ‘베이커리 카페’로 다시 태어났다는 것이다. 교실 대신 테이블이 놓이고, 복도엔 빵 냄새가 감돌며, 운동장은 주차장과 야외 테라스로 바뀌었다. 이 놀라운 변화는 단순한 리모델링이 아닌, 지역과 사람, 그리고 콘텐츠가 만들어낸 하나의 ‘이야기’였다.
많은 사람들이 묻는다. 왜 사람들이 굳이 산속 폐교까지 가서 빵을 먹는가? 그 답을 찾기 위해, 기자는 이 베이커리 카페를 직접 방문해 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풍경과 사람들은, 단순한 식사 이상의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강원도 산골 폐교는 어떻게 1일 200명이 찾는 카페가 되었을까?
처음 이 폐교에 관심을 가진 사람은 도시에서 제빵 교육을 받던 청년 부부였다. 그들은 번잡한 도시보다 자연 속에서 빵을 굽고 싶다는 오랜 꿈을 품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강원도 산골에 버려진 초등학교를 우연히 방문하게 되었고, 그곳의 풍경과 공기에 반해 창업을 결심하게 된다.
하지만 실제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오래된 건물은 기초부터 손봐야 했고, 난방, 상하수도, 전기 배선 모두 처음부터 다시 설계해야 했다. 게다가 강원도의 겨울은 혹독했고, 자재 운송조차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부는 ‘학교의 흔적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따뜻한 공간을 만들자’는 원칙을 끝까지 지켜냈다.
그 결과, 운동장은 잔디 테라스로 바뀌고, 오래된 교실은 천장 높이를 그대로 살려 빵 굽는 향기와 책 냄새가 공존하는 공간이 되었다. 벽 한 쪽엔 실제 학생들의 낙서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교무실이 있던 곳은 수제 잼과 커피를 파는 마켓으로 변모했다. 그들은 학교의 구조를 해치지 않고, ‘기억 위에 새로움을 덧입힌 공간’을 만들어냈다.
베이커리 카페 이상의 가치, 이곳이 특별한 이유
이곳의 빵은 단순한 디저트가 아니다. 대부분의 재료는 인근 농가에서 공급받고 있으며, 당일 아침에 직접 반죽해서 구워낸다. 유기농 밀가루, 직접 키운 사과로 만든 파이, 산나물과 호두를 넣은 시골식 브레드 등은 이 공간이 가진 정체성과 닮아 있다. 무엇보다 지역 어르신들이 재배한 작물을 활용하여 만든 메뉴가 눈에 띄며, 그 수익 일부는 마을 복지회관 운영에 쓰인다.
이곳을 찾는 방문객들은 단순히 ‘맛’을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교실 창밖의 산 능선을 바라보며 조용히 차를 마시고, 운동장을 거닐며 바람을 느끼고, 벽에 걸린 졸업사진을 보며 자신의 학창시절을 떠올린다. 실제로 기자가 머무는 동안, 50대 중반의 한 방문객은 "여기 오니까, 초등학교 다니던 때 생각이 절로 난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공간은 그렇게, 사람의 기억을 끌어내는 힘을 가졌다.
SNS 감성보다는 ‘머물고 싶은 공간’이 되기까지
이 베이커리 카페는 홍보를 위해 SNS 바이럴 마케팅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운영자 부부는 ‘조용히, 천천히, 알음알음’ 알려지길 원했다. 오픈 초기에는 하루 방문객이 10명도 안 되었고, 주말에도 텅 빈 공간일 때가 많았다. 하지만 입소문은 진심을 타고 퍼져나갔다. 빵이 맛있다는 이야기보다, 공간이 따뜻하다는 이야기가 사람들 사이에서 전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는 예약을 하지 않으면 앉기 힘들 정도로 인기 있는 카페가 되었지만, 운영자는 여전히 ‘사람이 머무는 공간’이길 원한다. 그래서 테이블 수는 제한되어 있고, 전자기기 사용도 자제하도록 안내되어 있다. 무엇보다, 이곳은 빠르게 소비되는 장소가 아니라 ‘느림과 정적이 허용되는 곳’이라는 운영 철학이 깊게 배어 있다.
이런 공간은 경쟁이 아닌, ‘의미’로 존재하는 곳이다. 기자 역시 그 여백의 미를 경험하며 이곳이 단지 유명세로 유지되는 공간은 아님을 느꼈다.
폐교는 끝이 아니다,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는 곳
이 베이커리 카페는 ‘공간을 어떻게 써야 하는가’에 대해 하나의 대안을 제시한다. 전국에 수많은 폐교가 남아 있다. 그 중 많은 수는 방치되어 쓰레기장이나 창고로 전락하고 있다. 하지만 이곳처럼 ‘공간을 보존하면서도 새로움으로 채운다면’, 폐교는 지역 문화와 경제를 살리는 기점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이 공간은 지역과 함께 성장하는 구조를 택하고 있다. 지역 농가와 협업하고, 마을 행사에 장소를 개방하며, 일부 수익을 기부하는 방식으로 커뮤니티와의 연결을 강화하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창업이 아닌, ‘지속 가능한 삶의 방식’이기도 하다.
기자는 이 폐교 카페를 나서며 하나의 확신을 가졌다. 사람의 손길이 닿으면, 어떤 공간도 버려지지 않는다. 폐교는 단순한 과거의 잔재가 아니라, 새로운 이야기가 자라는 씨앗이 될 수 있다.
공간에 진심이 담기면, 사람은 반드시 돌아온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 폐교 베이커리에서 보낸 하루는 기자의 시선을 바꾸기에 충분했다. 요즘은 자극적인 마케팅, 화려한 외관, 빠른 회전율에만 집중하는 공간이 많다. 하지만 이곳은 달랐다. 빠름보다 느림을, 효율보다 진심을 선택한 결과가 바로 지금의 모습이었다. 매일 구워내는 식빵 하나하나에 정성이 깃들고, 공간 구석구석에는 ‘이 장소를 사랑하는 마음’이 묻어 있었다. 사람들이 굳이 차로 1시간 넘게 달려 이 산골 폐교를 찾는 이유는 아마 빵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들이 찾는 건 아마도 ‘잊고 있던 감정’, ‘머물고 싶은 여백’,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진짜 이야기가 아닐까. 기자 역시 이 공간에서 그러한 따뜻함을 느꼈고, 언젠가 계절이 바뀌었을 때 이곳을 다시 찾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어떤 빵이 구워지고 있을까. 어떤 새로운 이야기가 이 교실을 채우고 있을까. 그렇게 이 폐교는 여전히,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새로운 시간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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