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교 활용공간 리뷰

폐교를 리모델링한 유기동물 추모학교

wellroundedboo 2025. 8. 9. 08:04

이별은 누구에게나 어렵다.
특히 반려동물과의 이별은 짧지만 깊은 시간을 함께한 만큼 그 상실감도 예상보다 오래 머문다.
그럼에도 우리는 대개 그 감정을 깊이 들여다보거나, 제대로 작별할 공간을 갖지 못한 채 일상으로 되돌아가곤 한다.

기자는 경상북도 안동 인근의 한 폐교에 ‘작별을 배우는 학교’가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다.
그곳은 유기동물 보호센터가 아니었다.
죽은 유기동물과 반려동물의 흔적을 기억하고, 그들을 위한 추모와 애도의 공간으로 재구성된 폐교였다.

운영자는 오랜 기간 유기동물과 함께 지내온 활동가였고 이 공간을 만든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아이들이 떠난 후, 아무도 기억하지 않으면 그 생은 사라지는 거잖아요.
그래서 우리는 여기에 ‘기억을 남기기 위한 학교’를 만들었어요.”

폐교를 리모델링한 유기동물 추모학교, 작별을 배우는 교실이 되다

폐교를 추모학교로, 이름 없는 무덤을 위한 이름 있는 교실

기자가 도착했을 때, 교정 한편엔 소박한 이름표들이 박힌 작은 무덤들이 조용히 늘어서 있었다.
각각의 표식에는 ‘토리 20182022’, ‘달이 20202024’, ‘이름 모를 아이’ 등의 짧은 이름과 날짜가 새겨져 있었다. 

운영자는 말없이 무덤들 사이를 안내하며 설명했다.
“이쪽은 유기동물 보호소에서 생을 마친 아이들이고 이쪽은 반려인이 직접 데려와 함께 마지막을 보낸 동물들의 공간이에요.”

기자는 복도 끝 교실로 들어섰다.
그곳은 ‘기억 교실’이라는 이름의 전시실이었다. 벽에는 유품, 사진, 편지들이 붙어 있었고 바닥엔 손바닥 크기의 도자기 발자국들이 놓여 있었다.
한 편지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너를 보내고 처음으로 편지를 써. 살아있을 땐 아무 말도 못 했는데  이제야 미안하다는 말을 꺼낸다.”

그 교실은 말보다 침묵이 많았지만, 오히려 감정은 더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이별을 만들고, 작별을 치유하는 과정

폐교의 과학실은 ‘이별 공방’이라는 이름의 감정 체험실로 바뀌어 있었다.
이곳에선 반려동물과의 추억을 ‘작별 조형물’로 만들 수 있었다. 기자는 참여자들과 함께 반려동물의 이름을 새긴 작은 나무패를 조각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모두가 조용히 손을 움직이며, 각자의 마음을 천천히 꺼내고 있었다.

어떤 이는 점토로 고양이 귀를 빚었고, 어떤 이는 종이접기로 아이의 귀를 형상화했다.
작품엔 기술이나 완성도가 중요하지 않았다.
운영자는 말한다. “그리운 걸 만들기 시작하면 그리움도 천천히 가라앉아요.”

기자는 공방 구석에 앉아 문득 3년 전 무지개다리를 건넜던 자신의 반려견을 떠올렸다.
그날은 일도 바빴고, 마지막까지 함께하지 못한 기억이 내내 마음에 남아 있었지만 이곳에서 처음으로 ‘그 작별’을 스스로 정리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폐교는 지금, 애도의 언어를 가르치고 있다

이 공간엔 일주일에 한 번씩 ‘작별 수업’이란 프로그램도 열린다.
운영자는 이 수업을 ‘애도 언어 수업’이라 부른다.
사람들은 한 가지 주제를 놓고 각자 글을 쓰고, 낭독하거나, 듣기만 해도 괜찮다.
기자가 참여한 날의 주제는 “떠난 아이에게 지금 가장 하고 싶은 말”

모두가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었지만 어떤 이는 끝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
그 대신 조용히 작은 발자국 도장을 눌렀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작별의 방식이 되었다.

운동장은 ‘기억 정원’이라는 이름으로 꾸며져 있었고 계절별로 꽃을 심고, 동물들의 이름을 새긴 나무 패가 걸려 있었다.
기자는 그 조용한 공간에서 누군가의 울음과 웃음이 함께 자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 폐교는 이제 이별을 가르치고, 애도의 시간을 허락하는 아주 드문 교실이 되었다.

 

작별을 배운 날, 비로소 안녕을 말할 수 있었다

기자가 돌아가려던 순간, 한 참여자가 놓고 간 작은 쪽지가 바람에 날렸다.
기자는 그것을 주워 조심스럽게 펼쳤다. 그 안엔 짧은 글이 적혀 있었다.
“너는 잊히지 않을 거야. 내가 너를 기억하는 한, 너는 아직 여기 있어.”

그 문장을 본 순간, 기자는 눈을 감았다. 떠난 존재와의 관계는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기억으로 다시 이어질 수 있다는 믿음
그것이 이 폐교가 가르쳐준 가장 조용한 수업이었다. 

폐교는 흔히 끝난 시간의 상징이라 여겨진다. 하지만 이곳은 끝이 아닌 ‘마지막을 함께 정리하는 곳’이었다.
기자는 이 학교에서 작별을 배운 뒤 비로소 그동안 하지 못했던 “안녕”이라는 말을
조금은 떳떳하게 건넬 수 있게 되었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존재는 정말 사라지는 걸까

기자는 ‘기억 교실’을 나서며 문득 스스로에게 물었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존재는 정말 사라지는 걸까?” 그 질문은 기자가 수없이 지나쳤던 유기동물 보호소,
펜스 너머 조용히 웅크린 생명들, 그리고 늘 빠르게 지나친 이름 모를 무덤들을 떠올리게 했다.

이곳에서는 ‘기억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가장 깊은 상실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무언가를 기억한다는 건 그것이 여전히 내 안에 살아 있다는 의미이고, 이 교실은 존재와 존재 사이의 기억을 조용히 잇는 역할을 묵묵히 해내고 있었다.

 

폐교는 더 이상 비어 있는 공간이 아니다

사람들은 폐교를 ‘기능을 다한 장소’라 부르곤 한다. 하지만 기자는 이 공간을 떠나며 확신했다.
폐교는 기능을 잃은 곳이 아니라,  새로운 기능이 태어날 준비를 마친 장소라는 것을.

이 학교는 더 이상 칠판 위에 공식이 쓰이지 않지만 교실 안에는 여전히 누군가의 감정과 이름, 그리고 작별의 말들이 조용히 남아 있었다.
가르침의 방식만 달라졌을 뿐 배움은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기자는 돌아가는 차 안에서 작은 노트를 꺼내 몇 글자를 적었다.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기억은 장소를 바꿀 뿐이다.”
그 문장은 기자가 이 폐교에서 배운 가장 단순하고도 진한 교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