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교를 리모델링한 슬로 테크 연구실
기술은 언제나 더 빠르게, 더 작게, 더 많이를 향해 달려왔다.
하지만 기자는 어느 날 문득 궁금해졌다.
“기술이 반드시 빠를 필요가 있을까?”
속도와 혁신의 이면에서,더 단순하고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기술은 어디쯤에서 숨 쉬고 있을까?
그 물음은 기자를 전라북도 남원의 한 폐교로 이끌었다.
이곳은 지금 ‘슬로 테크 연구실’이라는 이름으로 전기를 거의 쓰지 않는 기술 실험이 이뤄지는 장소로 바뀌어 있었다.
이 연구소를 만든 사람들은 전직 공학자, 농부, 건축가, 디자이너였고, 그들은 말한다.
“우리는 고장나지 않는 기술,
그리고 누구나 고칠 수 있는 기술을 연구합니다.”
교실은 실험실로, 과학실은 물 없는 주방으로 운동장은 태양열 집열판과 우물 펌프가 있는 실외 설비장으로 바뀌었다.
기자는 그곳에서 ‘기술’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지를 온몸으로 체험했다.
빠름을 멈추는 기술, 폐교 안에 슬로 테크 연구실로 살아나다
기자가 처음 들어선 교실엔 컴퓨터도, 전선도 없었다.
대신 흙으로 만든 벽난로와 수동으로 물을 끓이는 ‘로켓 스토브’가 조용히 불을 태우고 있었다.
한쪽 벽엔 빗물 정화 장치와 저속 펌프가 연결되어 있었고, 나무 선반 위엔 손으로 만든 태양광 조명 장치가 놓여 있었다.
이곳에선 ‘속도’가 목표가 아니었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구조, 누구나 고칠 수 있는 도구, 그리고 전기가 없어도 동작하는 원리를 실제 체험을 통해 연구하는 공간이었다.
기자는 빗물을 정화해 마시는 실험에 직접 참여했고 태양열 조리기에서 데워진 음식도 맛보았다.
모든 과정이 느리고 복잡했지만 그 속엔 ‘기술의 본질’이 숨 쉬고 있었다.
기술은 멀리서 오는 것이 아니라 눈앞의 자원을 어떻게 쓰는가에 따라 삶을 바꾸는 것이란 걸 새삼 체감하게 되었다.
기술이 사라진 교실에서, 기술을 다시 배우다
오후엔 ‘슬로 테크 디자인 워크숍’이 열렸다.
참가자들은 낡은 전기포트를 분해하고 직접 태양열 집열판을 만들며 ‘속도를 배제한 도구’라는 개념을 처음 접하게 되었다.
강사는 말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기술은 누군가에겐 너무 빠르기 때문에 접근조차 불가능한 경우가 많아요.
슬로 테크는 모두를 위한 기술입니다.”
그 말에 기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소외 없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기술, 그것이야말로 진짜 진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실 뒤편엔 다양한 자전거 발전기와 수동 믹서기가 놓여 있었다.
누군가는 망가진 라디오를 수리하고 있었고 또 다른 누군가는 흙벽난로의 열 분포를 실험하고 있었다.
이곳은 기술의 무덤이 아니라 오히려 기술의 원형이 다시 태어나는 학교 같았다.
폐교, 기술이 숨 쉬는 학교로 돌아오다
슬로 테크 연구소는 주말마다 지역 주민과 아이들을 위한 오픈랩을 연다.
기자는 토요일 프로그램에 참여해 초등학생들과 함께 태양열 온수기를 조립하는 시간을 가졌다.
처음엔 단순한 조립처럼 보였지만 그 안에는 태양의 방향, 그림자의 움직임, 물의 압력, 그리고 단열재의 구조까지
수많은 지식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었다.
아이들은 배웠다. 기술은 단지 전기와 기계로만 이뤄진 것이 아니라, 관찰과 느림, 실험과 반복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기자는 그 광경을 보며, 이 폐교가 단지 ‘사용처가 없는 건물’이 아니라 ‘배움의 본질이 살아나는 공간’이라는 사실을 다시 실감했다.
해질 무렵, 교실 안엔 어른과 아이 모두가 모여 로켓 스토브에 데운 따뜻한 차를 나눠 마셨다.
불은 천천히 타올랐고, 기술은 조용히 사람들 사이에 퍼지고 있었다.
그건 화려하지도, 빠르지도 않았지만 분명히 삶을 바꾸는 온도였다.
고장나지 않는 학교, 고장나지 않는 삶
기자는 돌아가는 길에 이런 생각을 했다.
기술은 언젠가 고장나고, 시대는 늘 진보를 말하지만 사실 우리가 정말 필요로 하는 건 오래도록 고장나지 않는 삶을 설계하는 기술이 아닐까.
이 폐교는 더 이상 교과서로만 가르치던 공간이 아니었다.
실제로 삶에 쓰이는 도구들을 직접 보고, 만지고, 느끼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기자는 자신이 잊고 있던 질문 하나를 다시 떠올렸다.
“나는 지금, 어떤 기술 위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는가?” 폐교는 그렇게 기자에게 기술의 시작과 끝, 그리고 사람 중심의 삶을
가장 조용한 방식으로 다시 가르쳐주고 있었다.
기술이 아닌 사람을 중심에 놓는 학교
며칠이 지나 도시의 일상으로 돌아온 기자는 커피포트의 버튼을 누르며 문득 폐교에서의 ‘불’을 떠올렸다.
전기 없이도 천천히 물을 끓이던 그 장면은 지금 이 순간 눈앞의 기술이 얼마나 많은 감각을 가려버리고 있는지를 다시 떠올리게 만들었다.
‘편리함’이라는 말로 포장된 많은 기술들이 사실은 우리의 손끝과 감각을 무디게 만들고 있던 건 아닐까.
슬로 테크 연구실에서 기자가 배운 것은 기술 그 자체보다 ‘기술을 바라보는 태도’였다.
속도보다 지속성, 화려함보다 손쉬운 수리,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람이 기술을 ‘이해할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
그 단순한 원칙이 폐교라는 낡은 공간 안에서 가장 강력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기자는 그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이 학교는 오래된 미래를 준비하는 중이라는 것을.
천천히 고쳐 쓰는 삶의 기술
기자는 마지막 날, 교실 한편에 놓인 작은 손수레를 바라보았다.
나무와 못으로 조립된 그 수레는 어설퍼 보였지만, 지붕에 올라간 작은 태양광 판넬이 밤마다 LED 불을 밝혀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손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빠르게 만든 것은 빠르게 망가집니다. 천천히 만든 것만이, 천천히 닳습니다.”
그 문장은 기자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졌다.
폐교는 단지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미래를 천천히 준비할 수 있는 유일한 실험실일지 모른다.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기술은 어쩌면 더 빠른 알고리즘이나 더 얇은 기기가 아니라 잊고 있던 삶의 속도를 회복시켜주는 아주 느린 기술 한 조각일지도 모른다.
고요한 기술이 흐르는 교실
기자가 폐교를 떠나던 날, 운동장 끝 벤치에 앉아 마지막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전깃줄도, 송전탑도 보이지 않는 그 풍경 속에서 기자는 기술이란 결국 ‘소리 없는 방식으로 삶을 도와주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눈에 띄지 않지만 손끝에 남고, 빠르진 않지만 오래 머무는 기술.
그 조용한 기술이 바로 이 폐교에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기자는 그런 기술을 다시 믿게 되었다.
다시 쓰는 삶, 다시 켜는 불, 다시 배우는 감각. 이 오래된 교실은 지금도 아주 천천히, 사람을 중심으로 한 기술을 다시 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