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교 활용공간 리뷰

폐교에서 열리는 요가 클래스 체험기: 고요한 교실에서 나를 마주하다

wellroundedboo 2025. 7. 25. 18:37

햇살이 조용히 들어오는 교실.
칠판 아래 놓인 매트 위에 사람들이 앉아 눈을 감고, 아주 천천히 숨을 들이쉰다.
한때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발소리로 가득 찼던 그곳은, 지금은 아무런 말 없이 그저 숨과 몸의 움직임만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그 풍경은 낯설면서도 이상하게 따뜻했다.
전라북도 임실의 작은 폐교,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잡초만 무성하던 이곳은 지금은 ‘요가와 쉼’을 위해 일부러 시간을 들여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는 공간으로 변해 있었다.

기자는 ‘폐교 요가 클래스’라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듣고 이곳을 찾았다.
학교와 요가. 두 단어는 왠지 모르게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지만 막상 교실 바닥에 앉아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자 이 공간이 주는 묘한 조화로움이 오히려 머릿속을 맑게 비워주었다.
그리고 그날, 기자는 처음으로 고요한 공간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을 느끼게 되었다.

 

폐교는 멈춘 공간이 아니라, 다시 숨 쉬는 요가 장소였다

요가 클래스가 열리는 이 폐교는 1995년에 문을 닫은 작은 분교였다.
두 개의 교실과 교무실, 운동장과 화장실만 있는 아주 단출한 구조였지만, 한 요가 강사가 이 공간을 ‘몸과 마음을 위한 리트릿 센터’로 탈바꿈시켰다.
서울에서 오래 요가를 가르치던 박진영 강사는 자신에게도 진짜 쉼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귀촌을 결심했고, 임실의 이 폐교를 발견하면서 새로운 삶의 방식에 도전하게 됐다.

그녀는 칠판과 나무 바닥은 그대로 둔 채, 한 교실은 요가 스튜디오로, 다른 교실은 명상과 티타임을 위한 공간으로 바꿨다.
냉난방을 최소화하고, 햇살과 자연 바람이 흐르도록 창문을 살렸고 벽에는 ‘멈추는 법을 배우자’는 글귀가 걸려 있었다.
공간은 단순했고, 화려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 단순함이 마음을 무장해제시켰다.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비어 있음’의 평온함이 교실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폐교에서 열리는 요가 클래스에서 고요한 교실에서 나를 마주하다

몸을 움직이는 것보다 멈추는 게 더 어려웠다

기자는 토요일 오후 클래스에 참여했다.
참가자는 총 8명.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했고 누군가는 이곳에서 1박을 하며 온전한 요가 리트릿을 체험 중이었다.
클래스는 아주 단순한 동작으로 시작했다.
숨을 들이쉬고, 천천히 팔을 올리고, 고개를 돌리고, 눈을 감는다.
그 단순한 동작들이 반복되면서 기자는 놀랍게도 자신의 ‘마음속 소음’이 점점 줄어드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강사는 말이 많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움직임보다 ‘멈춤’을 강조했다.
“내 몸이 지금 어떤지 관찰하세요. 아프면 멈춰도 됩니다. 비교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 말이 어쩌면 지금까지 기자가 들은 가장 따뜻한 요가 수업 멘트였다.
도시에서 다니던 요가 학원에서는 ‘정렬’, ‘균형’, ‘더 펴세요’ 같은 말들이 익숙했지만 이곳에서는 오히려 그 모든 긴장을 내려놓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교실 바닥에 그대로 남아 있던 스크래치, 창문 틈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 운동장에서 들려오는 새소리. 그 모든 것이 어우러지며 기자는 처음으로 공간이 사람을 감싸주는 경험을 했다.

 

요가는 동작이 아니라, 자신을 대하는 태도였다

수업이 끝난 후, 다 함께 명상실로 이동했다.
그곳에는 담요와 차, 향이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작은 방이 있었다.
각자 원하는 자리에 앉아 차를 마시고, 음악을 듣고, 메모를 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폐교에서의 요가는 ‘운동’이나 ‘수련’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과 조용히 대화하는 하나의 방식이었다.

한 참가자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서울에선 요가를 해도 늘 성취감만 느끼려 했어요. 근데 여긴 그냥 살아 있는 느낌이에요.”
그 말에 기자도 고개를 끄덕였다.
폐교라는 공간은 ‘성장’이나 ‘경쟁’보다는 잠시 멈추고 돌아보는 장소에 훨씬 가까웠다.
그날 이후, 기자는 요가라는 단어를 볼 때마다 ‘몸을 접는 시간’이 아니라 ‘자신을 접어두는 시간’을 떠올리게 되었다.

 

텅 빈 공간이 오히려 우리를 채워준다

해가 지고 있었다. 교실 안에는 더 이상 빛이 들어오지 않았지만 그 어둠마저도 따뜻하게 느껴졌다.
기자는 마지막으로 교실 한가운데에 서서 눈을 감고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그 순간, 아무 소리도 없었지만, 오히려 마음은 꽉 차 있었다.
그 공간이 말해주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이 폐교는 누군가에게 잊힌 공간이었지만, 지금은 누군가의 삶을 회복시키는 곳이 되었다는 것을.

기자는 작은 창문 옆에 앉아있던 강사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녀는 웃으며 “다음엔 하늘 맑은 날에 오세요. 운동장에서 아침 요가도 해요”라고 말했다.
그 말 한마디에 기자는 다시 이곳을 찾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조용히 숨 쉬러 오고 싶었다.
그곳에선 그게 전부였고, 그걸로 충분했다.

 

요가가 가르쳐준 것은 자세가 아니라 방향이었다

며칠 후, 기자는 책상 앞에 앉아 다시 바쁜 일상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잠시 고개를 들고 눈을 감았을 때, 그 폐교 교실의 나무 바닥이 떠올랐다.
‘천천히 숨 쉬자’는 그 말이 귓가에 울렸고, 잠시 손을 내려놓고 그대로 앉아있었다.
그건 비록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공간이 남긴 감정의 기억은 오랫동안 기자의 일상 속에 남아 있었다.

요가는 어쩌면 유연함을 기르는 훈련이 아니라 자신의 속도를 인정하는 연습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걸 가능하게 만든 건, 고요한 폐교라는 물리적 공간이 주는 심리적 안정감이었다.
기자는 앞으로도 요가를 계속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잘하려고’ 하진 않을 것이다.
그 대신, 가끔은 그 폐교 교실을 떠올리며 잠시 멈춰 숨을 쉬는 시간을 더 자주 만들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