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교 활용공간 리뷰

충북 제천 폐교 캠핑장, 학창시절 향수를 자극하는 하루

wellroundedboo 2025. 7. 22. 20:49

누군가 “학교에서 캠핑을 해보자”고 제안한다면, 아마 많은 이들이 고개를 갸웃할 것이다.
운동장에서 뛰놀던 기억은 있어도, 그곳에 텐트를 치고 하룻밤을 보내는 상상은 흔치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충북 제천의 한 산속 마을에는 이 상상을 현실로 만든 특별한 공간이 있다.
한때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던 초등학교가 문을 닫은 후, 수년간 방치되다가 ‘폐교 캠핑장’으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지금 이곳은 주말이면 예약이 어려울 정도로 캠핑족 사이에서 인기 있는 명소가 되었다.
폐교라는 독특한 배경과 함께, 복고 감성·자연 환경·시설의 신선함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이 캠핑장은 단순한 숙박지가 아니다.
누구에게는 여행지이고, 또 누구에게는 기억을 꺼내보는 감성 창고다.
기자는 이 공간이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는지, 그리고 한 폐교가 어떻게 다시 ‘살아 있는 공간’으로 바뀌었는지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제천을 찾았다.

 

충북 제천 폐교가 캠핑장으로 변신한 과정, 그 이면의 이야기

이 캠핑장이 위치한 마을은 제천 시내에서 차로 약 35분 정도 떨어진 산속에 있다.
이 초등학교는 1982년 개교해, 2008년 폐교되었으며, 그동안은 창문이 깨지고 운동장은 잡초로 덮인 채 방치되고 있었다.
그러다 지역청년 3명이 뜻을 모아 ‘지역재생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캠핑장을 기획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지자체조차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산속 폐교에서 누가 캠핑을 하겠냐”는 냉소적인 시선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학교 건물을 허물지 않고, 원형을 최대한 보존한 상태에서 최소한의 개조만 하는 방향을 택했다.

교실은 샤워실과 개수대로 바뀌었고, 교무실은 관리실 겸 안내소가 되었다.
운동장은 텐트 존, 차박 존, 캠핑카 존으로 나뉘어 구성됐다.
놀라운 점은 학교 구조의 특징을 그대로 활용해 캠핑의 불편함을 최소화했다는 점이다.
교실의 전기와 급수 시설을 그대로 재사용하고, 본관의 급식실 자리는 공동 조리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또한 건물 일부는 ‘공유 아지트’로 바뀌어, 캠핑족이 자유롭게 책을 읽거나 보드게임을 할 수 있는 문화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충북 제천 폐교 캠핑장에서 학창시절 향수를 자극하는 하루를 보내다

직접 체험해본 폐교 캠핑, 복고와 감성의 이중주

기자는 평일 오후에 도착했다.
입구는 예전 학교 정문의 형태가 그대로 남아 있어 묘한 감정을 자극했다.
입구 간판엔 “OO초등학교 캠핑장”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고, 바로 옆 벽에는 1990년도 졸업생 명단이 그대로 붙어 있었다.
그 순간, 학교에 처음 입학하던 날의 설렘이 스르륵 되살아났다.

운동장 한가운데에 텐트를 치고 바라본 전경은 그야말로 비현실적이었다.
학교 본관이 배경이 되고, 철봉과 미끄럼틀이 그대로 남아 있는 운동장이 캠핑장의 중심이 되니, 마치 영화 세트장에 와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해가 지고 나니 운동장 위엔 캠핑 조명이 하나둘씩 켜지면서, 잔잔한 음악과 고기 굽는 냄새가 공존하는 감성적인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교실 쪽에서 흘러나오는 LP 음악은 이 공간을 더욱 특별하게 느끼게 해주었다.

캠핑장 안의 화장실, 샤워실, 조리실 등은 모두 교실 구조를 그대로 살리되 내부만 깔끔하게 리모델링해놓은 상태였다.
다소 불편할 줄 알았던 시설은 오히려 기존 캠핑장보다 훨씬 쾌적했고, 마치 숙소와 공공시설의 중간 지점을 잘 잡아낸 느낌이었다.
특히 오래된 복도에 걸려 있는 학급 사진과 교가 가사 액자는 방문객들에게 독특한 정서를 전달해 주었다.

 

지역과 연결된 캠핑장, 단순한 숙소를 넘어선 플랫폼

이 캠핑장이 단순한 ‘특이한 장소’가 아닌 이유는, 운영 방식에 있었다.
운영진은 단순히 장소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과 적극적으로 협업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토요일 아침마다 열리는 ‘학교 장터’에서는 인근 마을 어르신들이 직접 기른 농산물, 손뜨개 인형, 수공예 소품 등을 판매하고 있었다.
또한 계절마다 진행되는 ‘시골 체험 클래스’도 인기를 끌고 있었는데, 봄에는 쑥 캐기와 쑥버무리 만들기, 여름에는 천연 벌레퇴치제 만들기 같은 소소한 활동이 제공됐다.

캠핑장 내부에는 ‘마을 이야기 전시관’이라는 작은 공간이 있는데, 여기에선 폐교의 역사, 지역의 변화, 그리고 이 캠핑장이 생기기까지의 과정이 기록되어 있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단순한 휴식 이상의 의미를 찾고 있었고, 그 결과는 재방문율로 증명되고 있다.
운영진에 따르면 전체 이용객의 약 40%가 2회 이상 재방문한 고객이라고 한다.
학교의 기억, 시골의 정서, 사람과 사람의 연결이 어우러진 이곳은 단순한 숙소가 아니라, 하나의 플랫폼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공간을 만드는 건 결국 ‘진심’이었다

캠핑장 운영자 중 한 명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희는 이 공간을 빌려준 거예요. 실제 주인은 여기에 다녔던 아이들, 지금 이 마을에 사는 어르신들이죠.”
이 말은 기자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그들의 목표는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아니라, ‘공간을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돌려주는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이 캠핑장은 매달 일정 수익을 마을 발전기금으로 기부하고, 일부 시간대에는 지역주민에게 무료 개방을 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공간을 소비하지 않는 방식’을 고민한 흔적이었다.
SNS용 인증샷 장소보다는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 콘텐츠보다 관계 중심의 동선, 이런 요소들이 진심 어린 고민을 통해 구성되어 있었다.
그 결과, 이 캠핑장은 사진보다 기억이 오래 남는 곳이 되었다.

 

폐교는 공간이 아니라 기억의 저장소다

제천의 폐교 캠핑장은 기자에게 단순한 숙박 이상의 의미를 남겼다.
아침 햇살이 운동장을 비추는 장면, 교실 벽에 걸린 낡은 지도, 그리고 오래된 교가를 따라 부르던 이들의 모습은 오랫동안 마음에 남을 듯하다.
사람들은 빠른 속도의 도시에 지치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런 느린 공간, 과거의 감정을 꺼낼 수 있는 장소가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 중심에 바로 ‘폐교’라는 소재가 있다.

전국적으로 3,000개 이상의 폐교가 존재하지만, 그 중 대부분은 아무도 찾지 않는 공간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제천의 사례처럼, 이 공간들을 다시 사람의 이야기로 채울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지역이 살아나는 것이다.
폐교는 사라지는 공간이 아니라, 누군가의 기억을 품고 다시 태어나는 ‘시간의 그릇’일 수 있다.
기자는 이 캠핑장을 나서며 한 가지 생각을 했다.
우리는 ‘새로운 장소’를 찾기보다, 이미 존재하던 곳을 다시 들여다보는 눈을 가져야 하는 것 아닐까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