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고흥의 폐교가 북카페로 바뀌기까지
시골 폐교에서 커피 향기가 난다는 건, 정말 가능한 이야기일까?
도시를 떠나 한적한 마을로 들어설 때, 대부분의 사람은 정적과 풍경을 기대한다. 하지만 전라남도 고흥군의 한 외진 마을에서, 예상치 못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바로 오래전 문을 닫은 초등학교 한 곳이 감성적인 북카페로 변모해 있었기 때문이다. 이 공간은 단순한 관광 명소가 아니라, 지역의 역사와 기억이 깃든 장소로 재탄생했다. 기자는 이 공간이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의 모습이 되었는지 직접 확인하기 위해 고흥을 찾았다.
전국적으로 폐교가 늘고 있다. 농촌 지역의 인구가 줄면서, 많은 학교들이 학생 수 부족으로 문을 닫았다. 폐교는 곧 방치된 공간이 되기 쉽다. 그러나 이 고흥의 작은 북카페는 그 상식을 완전히 뒤집는다. 시골 폐교가 버려지지 않고, 다시 사람을 모으는 공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 지역민의 기억 속에 존재하던 공간이 이제는 여행객의 SNS에 남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었다.
폐교였던 그곳, 어떻게 북카페로 바뀌게 되었나?
이 폐교는 1980년대 초에 설립되어 한 세대 이상을 지역 아이들의 배움터로 사용되다가, 2007년 폐교되었다. 그 후 수년간은 아무도 찾지 않는 잡초 무성한 폐허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고흥군청에서 시작한 ‘유휴 공공시설 재생 사업’의 일환으로 이곳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한 예술가 부부가 지역의 지원을 받아 이 공간을 북카페로 리모델링하게 된 것이다.
공간 리모델링은 단순히 벽을 칠하고 가구를 들이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았다. 교실의 칠판을 그대로 살리고, 교탁은 커피 바 테이블로 재구성했다. 교실 천장의 스피커는 클래식 음악을 흘려보내는 용도로 쓰이고 있었고, 오래된 나무 창틀은 햇살과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공간을 해체하지 않고, 오히려 그 흔적을 보존하며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단순한 북카페 그 이상의 공간, 마을의 기억을 담다
북카페 내부에는 약 2,000권 이상의 책이 비치되어 있었으며, 모두 기증받은 책들로 구성되어 있다. 어린 시절 이 학교를 다녔던 주민이 기증한 초등학교 교과서, 80년대 만화책, 지역 작가의 수필집까지 다양했다. 단순한 독서 공간을 넘어, 이 카페는 마을의 기억을 보관하는 작은 박물관 역할도 하고 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공간은 ‘기억의 방’이라고 불리는 작은 교실이었다. 이 방에는 폐교 전의 학급 사진, 졸업 앨범, 교장 선생님의 훈화문 등이 벽면을 채우고 있었다. 카페를 운영하는 이 부부는 이 공간을 ‘시간의 터널’이라 부른다. 이 방을 찾는 어르신들은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한다고 한다.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장소가 아니라, 누군가의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공간인 셈이다.
방문자의 발길을 사로잡는 디테일과 철학
이곳의 커피는 지역에서 직접 볶은 원두를 사용하며, 디저트는 인근 마을 할머니들과 협업해 만든다. 인절미 티라미수, 고흥 유자청을 활용한 에이드 등 지역 특산물을 활용한 메뉴가 눈에 띄었다. 카페 수익의 일부는 마을 장학금으로 쓰이며, 지역민에게는 모든 음료가 30% 할인된다. 상업적인 공간이 아니라 ‘지역과 상생하는 공간’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이 강하게 느껴졌다.
방문객 중에는 단순한 관광객 외에도, 건축이나 지역 재생을 공부하는 학생들도 많았다. 그들은 이 공간이 ‘하드웨어가 아닌 사람과의 연결’을 중심으로 구성된 점에 감동했다고 했다. 실제로 카페 벽에는 “사람이 떠난 자리를, 사람이 다시 채우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 문장은 이 공간의 모든 철학을 함축하고 있는 듯했다.
폐교의 끝은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다
고흥의 이 북카페는 단순한 감성 콘텐츠가 아니다. 이는 공간 재생의 성공 사례이며, 지방 소멸 위기에 대응하는 한 방식이기도 하다. 많은 폐교들이 여전히 전국 곳곳에 방치되어 있지만, 이런 사례가 조금씩 늘어난다면 시골도 다시 활기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예술, 지역경제, 복지, 교육 등 다양한 방식으로 폐교 활용이 확산되고 있다는 점은 희망적이다.
기자는 이 북카페를 다녀온 후, 하나의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공간은 형태보다 이야기가 중요하다.
버려진 듯한 교실도, 누군가의 추억과 현재가 만나면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 폐교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일 수 있으며, 그 변화는 ‘사람’이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변화의 중심에는 결국, 누군가의 애정과 노력, 그리고 진심이 있었다.
한 번의 방문이 남긴 울림, 그리고 다시 찾고 싶은 공간
고흥의 이 작은 북카페를 다녀온 이후, 기자의 일상에도 미묘한 변화가 찾아왔다. ‘공간이 사람에게 주는 영향은 생각보다 크다’는 사실을 체감했기 때문이다. 책을 읽던 교실 창가, 할머니들이 만든 떡을 먹던 긴 테이블, 그리고 커피잔에 비친 햇살은 단순한 장면이 아니라 마음속에 오래 남는 인상이 되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건, 이곳을 단순히 ‘핫플레이스’로 소비하지 않고 ‘지속 가능한 공간’으로 만들고자 하는 운영자의 진심이었다. 마을 어르신들이 매일 이곳을 찾아와 신문을 읽고 담소를 나누는 모습은, 그 어떤 도시의 북카페에서도 보기 어려운 풍경이었다. 기자는 그 순간, ‘진짜 공간의 가치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다음에도 기회가 된다면 이곳을 다시 찾고 싶다. 같은 장소지만 계절이 바뀌면, 또 다른 이야기를 만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