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송 솔잎 지붕 장인, 바람을 엮어 집을 짓다
청송의 깊은 산골 마을, 솔향 가득한 숲을 지나면 오래된 초가지붕보다도 낯선 집이 보인다.
지붕 위에는 볏짚이 아니라, 수천 장의 솔잎이 깔려 있다.
겹겹이 엮인 솔잎은 마치 바람의 결을 따라 눕듯 얌전히 이어지고, 비와 눈을 견딘 흔적이 담긴 채 햇빛을 받아 반짝인다.
이 집을 짓고, 매년 솔잎을 손질하며 지붕을 살아 있는 것처럼 가꾸는 이가 바로 박태형 장인이다.
그는 자신을 집 짓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바람을 엮는 사람”이라 부른다.
솔잎으로 엮은 지붕은 단단한 듯 부드럽고, 거칠지만 따뜻하며,
단순한 건축 자재를 넘어 기후, 생태, 사람의 삶까지 고려한 살아 있는 공간이다.
청송 솔잎은 벽이 아니라 숨구멍이다
박태형 장인은 매년 늦가을이면 솔잎을 수확한다.
그는 한 번도 기계로 잣잎을 모은 적이 없다.
솔잎은 살아 있는 나무에서 따는 것이 아니라, 떨어진 잎들 중에서도 적당히 마른 것만을 선별해야 한다.
“산이 먼저 주는 걸 기다려야죠. 억지로 가지에서 떼면 숨이 끊깁니다.”
솔잎을 모으고 나면, 그는 그것을 물에 담가 먼지를 씻고 그늘에서 3일 이상 자연 건조한다.
바짝 마른 솔잎은 서로 엉키지 않으며, 결을 따라 잘 뉘인다.
그 잎들을 겹겹이 눕히는 방식은 볏짚보다 정교하고, 얇은 만큼 더 많은 시간을 요한다.
“솔잎은 빛과 바람을 같이 품어요. 지붕인데도 숨을 쉽니다.”
그 말처럼 솔잎 지붕은 겨울에는 따뜻함을 머금고, 여름에는 숨을 통해 더위를 뱉는다.
솔잎은 그래서 벽이 아니라, 숨구멍이자 자연의 결이라고 말한다.
솔잎으로 짓는 집은 계절과 함께 늙는다
솔잎 지붕은 3년에 한 번씩 교체해야 한다.
비에 젖고 바람에 흔들려 점차 빛을 잃어가는 솔잎은 다시 덧대고 엮으며 집과 함께 늙어간다.
박 장인은 말한다. “이 집은 나보다 나이가 많아요. 나는 이 집을 늙게 해주는 사람이에요.”
집을 오래도록 지키기 위해 그는 계절마다 지붕을 여기저기 살펴본다.
눈이 많이 온 해에는 눌린 솔잎을 솟아올려주고, 장마가 지나면 습기를 닦아낸다.
솔잎은 제멋대로 쌓이지 않는다.
그의 손은 해마다 솔잎의 방향을 기억하고, 그 방향에 맞게 빗물의 길을 만든다.
그래서 솔잎으로 만든 지붕은 기후에 대응하고, 사람의 감각을 따라 조율되는 살아 있는 구조다.
“솔잎 지붕은 집이라기보단, 바람과 함께 사는 존재죠.”
그는 집을 완성한 게 아니라, 계속 살아가게 하는 중이라고 말한다.
지붕은 머리 위가 아니라 마음 위에 있다
솔잎 지붕은 시각적으로 아름답지만, 그것이 기능을 우선하는 결과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박 장인은 지붕을 만들며 항상 “이 집에 사는 사람의 마음을 가볍게 해주고 싶다”고 말한다.
솔잎이 만들어내는 고유한 향은 여름 장마철에도 집 안을 눅눅하게 만들지 않는다.
게다가 지붕 위를 두드리는 빗소리는 일반 주택보다 훨씬 부드럽고 깊다.
그는 그 소리를 ‘자연의 말’이라 부른다.
“비가 오는 날, 이 지붕은 그걸 그대로 알려줘요.
빗소리가 집 안을 흔들지 않고, 마음을 두드려요.”
지붕은 구조물이 아니라 감각이다.
그는 솔잎 지붕이야말로 인간이 자연을 닮아가는 방식이라 믿는다.
그래서 그는 누구보다 조용히, 느리게, 정성스럽게 지붕을 만든다.
남는 건 지붕이 아니라 사는 방법이다
솔잎 지붕은 당장의 실용보다 더 오래가는 감각을 남긴다.
박태형 장인이 지은 집들은 전국에 몇 채 남지 않았고, 그중 절반은 아직도 사람이 실제로 거주하고 있다.
그는 지붕을 만들면서 기술보다는 마음을 남기고 싶다고 말한다.
그래서 제자들을 가르칠 때에도 “손보다 먼저 자연을 읽으라”고 강조한다.
“지붕은 머리 위에 있지만, 결국 마음 위를 덮는 거예요.”
솔잎 지붕은 장인의 손에서 나지만,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호흡과 생활, 기후와의 타협이 더해져
하나의 문화로 완성된다.
그는 매 지붕마다 사람의 이름을 기억한다.
“나는 지붕을 지었지만, 그 사람은 거기서 살았으니까요.”
솔잎으로 지은 집이 오래도록 남는 이유는 지붕 때문이 아니라, 거기에 담긴 사람의 삶이 조용히 이어졌기 때문이다.
지붕을 짓는다는 건 삶을 덮는다는 뜻이다
박태형 장인이 솔잎으로 만든 지붕은 단순히 비를 막기 위한 구조물이 아니다.
그 지붕은 자연의 흐름과 사람의 호흡, 그리고 계절의 변화까지 품은 하나의 생명체에 가깝다.
그가 만든 지붕 위로 눈이 쌓이고,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면서도 그 집은 무너지지 않고 오히려 더 단단해진다.
솔잎 한 장 한 장을 손으로 엮어 만든 지붕에는, 기술보다 깊은 시간과 마음이 깃들어 있다.
그는 말한다. “나는 집을 완성하지 않아요. 집은 살면서 완성되죠.”
그래서 그는 지붕을 덮을 때마다, 거기서 살아갈 사람의 이름을 마음속에 새긴다.
지붕은 사람이 가장 먼저 하늘을 마주하는 곳이자, 가장 가까이 자연과 맞닿는 경계이다.
솔잎 지붕은 그 경계를 부드럽게 만든다.
햇빛이 쏟아질 때 그늘을 만들고, 바람이 불면 숨을 통하게 한다.
거기엔 벽보다 따뜻한 온기와, 기계보다 섬세한 감각이 있다.
박 장인은 그 감각을 놓치지 않기 위해 지금도 천천히 솔잎을 고르고, 한 장씩 엮으며 지붕의 결을 따라간다.
누군가는 현대 건축이 더 편하고, 실용적이라 말할지 모르지만, 그는 말없이 증명한다.
자연과 함께 만든 집은, 사람의 마음도 함께 지을 수 있다는 걸.
그가 짓는 것은 지붕이지만, 그 위에 쌓이는 시간과 바람, 그리고 삶의 무게까지 함께 덮는 일이다.
그래서 그의 지붕은 집이 아니라, 살아 있는 이야기다.
세월이 흘러도 바람이 솔잎 사이로 스며들고, 그 바람이 사람의 마음까지 닿을 수 있다면,
그 지붕은 앞으로도 조용히, 그리고 깊게 울릴 것이다.
그의 손은 지금 이 순간에도, 다음 계절을 위해 솔잎을 준비하고 있다.
바람을 엮는 사람은, 단지 지붕을 짓는 게 아니라 사람이 안심하고 쉴 수 있는 삶의 틀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