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을찾아서

예산 전통 향 장인, 연기의 결로 마음을 다스리다

wellroundedboo 2025. 7. 16. 17:41

흙보다 먼저 피는 향, 기억을 지피는 손

충남 예산군 신암면 외진 마을. 해 질 무렵 작은 초가집에서 피어나는 연기는 굴뚝이 아니라 마당 가운데 향을 말리는 틀에서 나온다. 그 연기는 무겁지 않고, 코끝에 맴돌며 지나가다가 어느새 가슴 어딘가에 눌러앉는다.
이 집에서 40년 넘게 전통 향을 만들어온 심정옥 장인은 이렇게 말한다.
“향은 코로 맡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남는 거예요.”
그녀가 만드는 향은 기계로 분말을 찍어낸 것이 아니다.
풀을 뜨고, 나무를 갈고, 손으로 물을 배합하고,
시간과 온도로 완성되는 ‘기억의 도구’다.
그녀는 향을 태우는 게 아니라,
사람의 기도와 안정을 함께 데우는 연기를 만든다.
그래서 그녀의 향은 향방을 꽉 채우지 않아도 향기롭고,
한 자루만 피워도 방 안의 마음이 정리된다.
향은 허공에 잠깐 머물다 사라지지만,
그 시간만큼 사람은 자신을 다듬게 된다.
그녀는 그 ‘잠깐의 시간을’ 정성으로 만든다.

 

나무와 흙이 만든 향, 비율보다 감각이 앞서는 기술

전통 향의 주재료는 백단, 침향, 향나무, 감초 뿌리, 솔잎, 한약재 찌꺼기 등이다.
심 장인은 그 모든 재료를 손수 말린다.
말린 재료는 맷돌에 갈아 곱게 분쇄한 후,
잡티는 채에 걸러 제거한다.
그녀는 “향은 분말의 입자가 고와야 숨이 곱다”고 말한다.
분말을 다 갈아낸 후엔, 풀물을 만든다.
물은 고구마 전분이나 쑥즙을 써서 만든다.
시중의 화학접착제 대신 전통 방식 그대로 끈적이지만 부담 없는 풀을 쓴다.

향을 반죽할 때는 손의 감각이 전부다.
날이 덥거나 습하면 물을 줄이고,
재료가 뻣뻣하면 풀을 더해 부드럽게 만든다.
심 장인은 “향은 정확한 레시피보다
그날의 날씨와 손의 느낌이 더 중요해요”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녀는 아침마다 연습 삼아 손가락 두 마디 크기의 향을 먼저 만들어보고,
그날의 온도와 습도에 맞는 배합을 찾아낸다.
그건 단순한 재료 조합이 아니라, 자연과의 대화이며
연기를 다루는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감각이다.

기가 피어오르는 작은 전통 향이 방 안을 채워보자.

말리는 시간은 향의 성격을 결정짓는다

반죽한 향은 길쭉한 막대처럼 빚어, 얇은 대나무 틀에 눕혀 말린다.
이때 중요한 건 건조 속도가 아니라 건조의 방향과 시간이다.
그녀는 햇볕이 강한 날엔 틀을 천으로 덮고,
구름이 낀 날엔 숯을 피워 건조실의 습도를 조절한다.
향은 겉보다 속이 먼저 마르면 금이 가고,
반대로 속이 늦게 마르면 휘어지며 굳는다.
“사람도 겉부터 말라가면 마음이 갈라져요. 향도 마찬가지예요.”
그녀는 향이 마르는 소리를 듣는다고 말한다.
“진짜예요. 속이 마를 때 바삭, 하는 미세한 소리가 있어요.
그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향이 잘 된 거죠.”

하루에 말릴 수 있는 향은 많아야 200개 남짓.
하나하나 손으로 굽기를 조정하고,
말라가는 색을 육안으로 확인하며 뒤집는다.
그녀의 향은 모두 비슷하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재료와 혼합비가 달라 각각 ‘성격’이 있다.
진한 향, 부드러운 향, 짧게 타는 향, 길게 타는 향…
그녀는 그 모든 향에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
“향은 불이 붙을 때 비로소 말문이 열리는 거예요.
그 전엔 다 잠자코 있는 거죠.”

 

향을 피운다는 건 마음을 가다듬는 일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향을 찾는다.
기도를 드리는 스님들, 명상을 하는 사람들,
병원이나 요양원에서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한 공간에서도 주문이 온다.
그녀는 한 번도 대량 생산을 하지 않았다.
오직 ‘피울 사람’을 떠올리며 향을 만든다.
그는 말한다.
“이 향을 켜는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앉아 있을지를 생각해요.
조용한 마음으로 켜는 향은 천천히 타야 하고,
그리운 마음으로 피우는 향은 조금 일찍 사라져야 하거든요.”

향을 피우는 건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일종의 의식이다.
그녀는 향을 만들며 늘 ‘불’보다 ‘연기’를 먼저 떠올린다.
그 연기가 어디로 퍼지고,
어떤 속도로 사라지는지에 따라 공간의 분위기가 달라진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녀는 향의 굵기, 길이, 밀도까지
불이 붙은 뒤의 시간 흐름에 맞게 설계한다.
그녀의 향은 짧지 않지만 무겁지도 않다.
한 자루의 향이 끝나면, 방 안의 공기와 함께
마음 한 켠이 환기된 듯한 느낌을 남긴다.
그것이 그녀가 말하는 ‘향의 울림’이다.

 

사라지는 연기로 남기는 흔적

심정옥 장인은 향을 만들면서도 항상 ‘사라질 것’을 생각한다.
“향은 없어지기 위해 만들어져요.
근데 사라질수록 마음은 더 남아요.”
그녀의 향은 연기가 된 후에야 비로소 존재를 완성한다.
불빛도 없고, 소리도 없지만
그 연기가 머물렀던 자리는 분명 다르다.
그래서 그녀는 향 하나하나에 이야기를 넣지 않고,
오직 공백과 침묵, 그리고 불완전함만을 남긴다.
그것이야말로 향이 가진 가장 오래 남는 힘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녀는 조용히 향을 다듬고, 말리고, 기다린다.
누군가의 하루가 조용히 정리되기를 바라며,
혹은 어느 공간에 마음이 가라앉기를 바라며.
그녀의 향은 단지 향기로운 도구가 아니다.
그건 마음의 균형을 되찾아주는 손길이며,
사람이 자기 자신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작은 시간을 마련해주는 연기의 다리다.
향이 사라진 자리엔 흔적이 없지만,
그 공간에 머무른 사람의 마음엔
조용한 감정이 하나 피어나 있다.
그게 바로 그녀가 만드는 향의 목적이자, 존재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