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제 전통 누비 장인, 바늘과 손끝으로 시간을 겹치다
인제 누비 장인이 천을 겹친다는 건 마음을 꿰맨다는 것
강원도 인제. 겨울이 길고 눈이 많은 이 지역에선 예부터 옷을 겹쳐 입는 지혜가 전해졌다. 그중에서도 가장 정교한 기술이 바로 ‘누비’다. 단순한 솜옷이 아닌, 바느질로 천과 천 사이를 정교하게 고정해 체온을 지켜내는 이 기술은 예부터 귀한 옷의 상징이었다. 지금도 인제 시골 마을에는 이 전통을 고집스럽게 이어오는 장인이 있다. 올해 일흔을 넘긴 임복순 장인은 50년 넘게 오직 손누비만으로 옷과 침구, 소품을 만들어온 사람이다. 그는 말한다. “누비는 옷이 아니라 마음이에요. 솜이 뜨지 않게 눌러주는 게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게 꿰매주는 거죠.” 그의 누비는 단지 따뜻한 옷이 아니라, 그 속에 들어가는 바늘질의 리듬, 손끝의 촉감, 그리고 사람을 위한 마음이 겹겹이 쌓인 시간의 집합이다.
그의 작업은 한 장의 천을 고르는 것부터 시작된다. 대부분 무명이나 삼베, 실크 혼방 천을 쓴다. 누비는 천이 단단해야 하고, 바늘이 잘 통과되면서도 실밥이 울지 않아야 하기에 그 기준이 매우 까다롭다. 천을 고른 뒤엔 솜을 얹고 다시 겉천을 덮는다. 여기까진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다음부터가 장인의 구역이다. 손바느질로 일정 간격으로 수만 번의 실선을 그리는 것, 바로 ‘누비질’이다. 그는 바늘을 손등으로 밀지 않는다. 손가락으로 천천히 천을 들어올리고, 바늘의 각도를 틀며 밀어 넣는다. “누비는 속도를 내면 안 돼요. 바느질이 빠르면 감정도 뜨고, 옷도 떠요. 한 땀 한 땀이 눌러주는 마음이어야 해요.” 그래서 그의 누비는 기계보다 촘촘하고, 패턴보다 자연스럽고, 보기보다 오래 간다.
규칙과 흐름 사이에서 완성되는 선
누비질은 바느질 중에서도 가장 반복적인 작업이다. 하지만 그 반복 속엔 일정한 리듬이 있다. 임 장인은 하루 8시간 이상을 바늘과 천 사이에서 보낸다. 그는 “누비는 음악 같아요. 실로 박자를 맞추는 거예요”라고 말한다. 실제로 그의 작업장에는 음악이 흐르지 않는다. 대신 바늘이 천을 가르는 소리, 실이 잡아당겨지는 감촉, 천의 결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리듬이 된다. 그 감각은 소리보다 더 깊은 집중을 만든다. 누비의 간격은 0.3cm에서 0.5cm 사이. 너무 조이면 천이 쪼글고, 너무 느슨하면 모양이 흐트러진다. 그가 말하는 ‘예쁜 누비’란, 한 줄 한 줄이 긴장하지 않으면서도 풀리지 않는 선이다. 그 선은 단지 디자인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결을 다듬는 선이기도 하다.
그는 패턴이나 기계 틀을 쓰지 않는다. 대신, 선을 손가락으로 가늠하고 시선으로 길이를 재며 바느질한다. 그래서 그의 누비 옷은 어느 하나 똑같은 것이 없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 선은 기계처럼 일정하고 고르다. “사람이 손으로 만든 게 맞나” 싶은 만큼의 정교함은, 눈보다 손의 기억에서 온다. 50년의 시간 동안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바늘을 들었다. 몸이 아픈 날도, 눈이 펑펑 오는 날도, 천을 접고 실을 꿰어 한 땀을 시작했다. 누비는 기술이 아니라 지속의 미학이라는 그의 말은, 단순히 정성 이상의 깊이를 품고 있다. 그래서 그의 누비에는 ‘고운 선’과 함께,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버텨낸 시간’이 함께 스며 있다.
옷보다 마음을 덮는 물건
임 장인이 만든 누비는 단지 옷에만 그치지 않는다. 그는 전통 이불, 베개, 심지어 주머니나 안대까지 누비로 만든다. 가장 많이 찾는 건 '누비 이불'. 사람들은 대부분 겨울을 위해 이불을 주문하지만, 그의 이불을 한번 써본 사람은 계절과 상관없이 찾는다. 바느질 하나하나에 눌린 솜이 따로 놀지 않고, 몸을 감싸는 느낌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누비 이불은 덮는 게 아니라 감싸주는 거예요. 깃이 닿으면 마음이 차분해져요.” 실제로 그의 누비 이불은 요양병원, 산후조리원, 심리상담소에서도 많이 주문된다. 단지 따뜻해서가 아니라, 누군가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감촉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천을 고를 때도, 실을 고를 때도 그 이불을 쓸 사람을 떠올린다. “허리 아픈 사람은 좀 더 무게 있게. 불면증 있는 사람은 살에 안 감기는 걸로.” 그는 이불 하나를 만들 때 평균 3주에서 한 달이 걸린다. 그 속엔 천의 온도, 실의 촉감, 바느질의 리듬, 그리고 ‘어떤 마음을 감싸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함께 들어간다. 그래서 그의 누비는 오래 써도 쉽게 해지지 않는다. 낡아도 버려지지 않고, 물려지는 경우가 많다. “한 땀 한 땀이 모이면 그게 마음이거든요. 그걸 누군가 알아봐 줄 때, 비로소 누비가 되는 거죠.” 그의 누비는 옷보다 더 오래 몸에 남고, 말보다 더 따뜻하게 마음을 감싼다.
전통이란 느린 속도로 걸어오는 것
누비는 한 땀으로 시작해 수천 땀으로 완성된다. 그 모든 과정을 사람의 손이 책임져야 하기에, 기계보다 훨씬 느리다. 그래서 요즘 같은 빠른 시대엔 외면받기 쉽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은 다시 누비를 찾고 있다. 속도를 늦추고, 감각을 되찾고, 오래 쓸 수 있는 물건을 원하기 때문이다. “느린 게 오래가요. 천천히 만든 건, 천천히 닳거든요.” 임복순 장인이 하는 말은 단순한 철학이 아니라, 그의 작업에서 입증된 진실이다. 그의 누비는 쓰면 쓸수록 부드러워지고, 닳을수록 더 깊은 온기를 품는다.
전통이란 다름 아닌 그런 것이다. 빠르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느리게 스며드는 것. 그가 만든 누비에는 이름도 없고 상표도 없다. 대신 쓴 사람의 몸에 남고, 마음에 남는다. 그는 여전히 바느질을 하며 한 줄 한 줄 정리를 한다. 옷의 결만이 아니라, 세상과 자신 사이의 균형을 누비고 있는 셈이다. 그런 장인의 손끝은 지금도 느리지만, 정확하게, 묵묵히 시간을 꿰매고 있다. 그리고 그 바늘 끝에는 언제나 한 사람의 안녕이 실처럼 엮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