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을찾아서

진도 전통 북 장인, 소리를 깎고 가죽을 울리는 사람

wellroundedboo 2025. 7. 15. 09:32

전라남도 진도의 작은 바닷가 마을, 해풍이 불어오는 낮은 작업장 한편에서 낮고 묵직한 북소리가 들려온다. 그 소리는 단순한 타악이 아니다. 두드리는 힘보다 기다리는 울림이 더 깊은, 살아 있는 숨결에 가까운 진동이다. 이 소리를 만드는 이는 올해 일흔을 넘긴 북 장인, 이태봉 씨. 그는 나무를 파고, 가죽을 늘이고, 소리를 감싸는 북통을 매만지며 40년 넘게 북을 만들어왔다. 그는 말한다. “북은 때리는 악기가 아니에요. 안에서 울리는 거예요. 사람이 먼저 울리면 북이 따라오는 거예요.” 그의 손에서 만들어진 북은 무대 위 연주를 넘어, 농악의 장단과 굿판의 리듬, 마당극의 박자까지 살아 움직인다. 북은 단순한 악기가 아니라 사람의 감정을 움직이는 소리 그 자체이고, 이 장인은 그 소리를 입히는 사람이다.

 

진도 북 나무를 파는 일은 소리를 준비하는 일

북을 만들기 위해 가장 먼저 손대는 건 나무다. 북통을 만드는 데에는 주로 참나무, 오동나무, 느티나무가 쓰인다. 이태봉 장인은 오래 묵은 나무만을 쓴다. 그가 사용하는 통나무는 최소 5년 이상 자연 건조된 것뿐이다. 건조된 나무는 갈라짐이 없고, 안쪽 결이 고르게 퍼져 있어 소리를 더 깊고 안정감 있게 울려낸다. 그는 통나무를 크게 절단한 뒤, 가운데를 파내기 시작한다. 기계로 속을 파내는 것이 아니라 손끌과 정을 이용해 하나하나 두드리며 파낸다. "기계는 소리를 죽이고, 손은 소리를 살려요." 통을 파내는 데만 일주일 이상 걸린다. 두께는 북 전체의 무게와 음질을 결정하기 때문에, 소리의 높낮이와 떨림을 예측하며 작업해야 한다. 그가 만든 북통은 어느 한쪽도 완전히 대칭이지 않다. 울림을 살리기 위한 미묘한 비대칭, 그가 말하는 ‘사람의 숨결’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북통 내부에 귀를 대고 울림을 들어보다.

가죽을 늘린다는 건 감정을 듣는 일

북통이 완성되면 그 위를 덮는 가죽을 준비한다. 이 장인은 황소가죽만을 고집한다. 특히 겨울철에 도축한, 기름이 적고 결이 단단한 가죽을 선별해 직접 손질한다. 가죽은 한 달 이상 소금에 절여 불순물을 제거하고, 깨끗이 씻은 후 햇볕에 말린다. 마른 가죽은 물에 다시 담가 유연하게 만들고, 북통의 입구에 맞게 재단해 나무못과 밧줄로 단단히 고정한다. 이 과정은 북의 생명을 결정짓는 작업이다. 줄을 너무 당기면 가죽이 찢어지고, 느슨하면 울림이 생기지 않는다. 그는 손끝으로 가죽을 두드리며 긴장을 조절한다. “가죽은 사람이 아니지만 감정을 갖고 있어요. 얼마나 당기느냐보다, 얼마나 들어주느냐가 중요해요.” 그렇게 당기고 듣고 맞추는 과정은 단순한 조립이 아니라 대화에 가깝다. 그가 만든 북에서는 두드리는 힘보다, 울려 나오는 결이 더 먼저 들린다.

 

 북의 울림을 조율하는 귀의 기술

가죽이 고정되면 그는 북의 균형을 맞춘다. 한쪽이 무겁거나 약간만 기울어져 있어도 울림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는 북을 바닥에 놓고 네 방향으로 두드리며 소리의 중심을 잡는다. 북통 내부에 잔향이 너무 많이 남으면 울림이 탁해지고, 너무 얕으면 금방 사라진다. 그래서 그는 소리가 어떻게 퍼지고 꺼지는지를 귀로 듣고 손으로 조정한다. “소리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무게가 있어요. 그걸 귀로 들어야 해요.” 가죽을 고정한 줄도 일주일마다 한 번씩 다시 조인다. 온도와 습도에 따라 가죽의 장력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는 완성된 북을 직접 두드리며 튜닝한다. 어떤 북은 장단이 빠르고, 어떤 북은 천천히 울린다. 그 차이는 무대 위에서 연주자가 어떤 감정을 표현할지를 결정한다. “나는 소리를 만드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떤 감정을 낼 수 있게 돕는 도구를 만드는 거예요.”

 

북은 악기가 아니라 마음의 통로다

그가 만든 북은 공연장뿐 아니라 학교, 농악단, 전통문화체험장에서도 사용된다. 사람들은 그의 북을 보며 처음엔 단순히 ‘전통악기’라 생각하지만, 소리를 듣는 순간 생각이 달라진다. 그는 말한다. “북은 복잡하지 않아요. 그런데도 사람을 울릴 수 있어요. 그게 북이에요.” 그는 오늘도 나무를 깎고, 가죽을 말리고, 소리를 듣는다. 누군가의 손에 들릴 그 북이 어떤 이야기를 담아낼지 상상하면서. 북을 만든다는 건 결국 소리를 입히는 일이고, 소리는 누군가의 마음을 건드리는 일이다. 그래서 그는 빠르게 만들지 않는다. 사람의 마음처럼 조심스럽고, 오래 기다려야 울릴 수 있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탄생한 북은 단순한 악기가 아니라, 한 사람의 감정이 지나가는 통로가 된다. 그 울림이 어디에 닿을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그의 손은 언제나 그 시작이 된다.

 

북이 멈춘 뒤에도 남는 울림

이태봉 장인의 북은 누군가가 무대를 떠난 뒤에도 조용히 그 자리에 남는다. 북소리는 멈췄지만, 그 소리를 준비한 나무와 가죽, 그리고 장인의 손길은 무대 밖까지 이어진다. 그는 북을 만들며 오직 ‘연주하는 사람’을 생각한다. 연습에 지친 손이 감싸도 편해야 하고, 무대 위 긴장된 순간에도 북이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 장인이 만드는 악기와 공장 제품의 차이다. 그는 말한다. “나는 북을 파는 게 아니라, 사람 마음이 흔들릴 수 있도록 돕는 걸 만드는 거예요.” 북은 단순한 타악기가 아니다. 그것은 움직이는 시간이고, 사람을 잇는 소리이며, 마음이 울리는 순간을 만드는 도구다. 이런 이야기를 담은 글은 단지 전통 기술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하나의 삶, 하나의 철학, 그리고 잊히지 않는 손의 감각을 기록하는 일이다. 그래서 이 글은 누군가의 검색에서, 누군가의 기억에서 오래 머무를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