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 송이버섯 채취 장인, 새벽 숲에서 찾은 향의 정수
강원도 양양. 깊은 산속에서 해마다 짧은 계절에만 나오는 보물이 있다. 바로 송이버섯이다. 그 향은 짙지만 거슬리지 않고, 식감은 단단하면서 부드럽다. 이 송이를 찾는 일은 단순한 채취가 아니라, 자연과의 기약 없는 약속을 지키는 행위다. 양양의 한 송이 채취 장인은 말한다. “송이는 오라 하면 오지 않고, 보내면 돌아와요.” 그는 해마다 9월부터 10월 사이, 이른 새벽 어둠 속에서 산에 오른다. 무언가를 억지로 캐는 게 아니라, 자연이 ‘준비됐다’고 알려주는 소리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숲을 걷는다. 그에게 송이는 단지 가격이 비싸서 귀한 식재료가 아니다. 그보다는 한 해의 기후, 땅의 호흡, 소나무의 상태, 벌레의 움직임, 습기의 흐름, 풀벌레 소리 등 자연 전체가 만들어낸 결과물이기 때문에 귀하다. 그는 송이를 채취하면서 "자연은 감정이 없는 대신 정확하다"고 말한다.
무리하지 않고, 꾸준히 관찰하고, 욕심내지 않는 사람에게는 해마다 새로운 자리에서 송이가 얼굴을 내민다. 이 글은 송이버섯의 향과 뿌리, 자연의 흐름을 읽는 장인의 삶과 감각의 기록이다. 그가 찾는 것은 단순한 식재료가 아니라 자연이 내민 조용한 신호와 그 신호에 대답하는 인간의 자세다.
송이버섯은 숲이 허락해야 나온다 – 채취보다 먼저 필요한 관찰
송이버섯은 사람의 손으로 키울 수 없는 버섯이다. 오직 소나무 뿌리와 공생하며, 일정한 토양과 기후 조건이 맞아떨어질 때만 얼굴을 내민다. 그래서 그는 말한다. “심을 수도 없고, 물 줄 수도 없어요. 그냥 산이 허락할 때만 나와요.”
그는 채취를 위해 산을 오르기 전, 늘 먼저 하는 일이 있다.바로 지난 해의 송이 채취 노트를 꺼내 읽는 것이다. 거기엔 날씨, 기온, 습도, 첫 채취일, 산세의 변화를 꼼꼼히 기록해두었다. 그는 그 기록과 현재 날씨를 비교하면서 “올해는 언제쯤, 어느 자락에서 나올지” 감을 잡는다. 그는 채취 시즌이 다가오면 새벽 4시에 일어나 숲의 기척을 듣는다. “이슬이 맺히는 소리, 풀잎이 눕는 감촉, 새가 움직이는 방향이 달라요. 그 미세한 차이가 송이의 출현을 예고하죠.” 일반인은 그냥 어둠이라고 느낄 수 있는 시간대지만 그에겐 땅과 공기가 말을 거는 시간이다. 그가 송이를 가장 많이 찾는 장소는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는 소나무 숲의 북사면이다. 해가 오래 들지 않아 습기가 오래 유지되고, 낙엽이 부드럽게 쌓이기 때문이다. 그는 그렇게 사람 대신 자연의 논리로 장소를 정하고, 산을 대한다.
뽑지 않는다, 들어 올린다 – 송이를 다루는 손의 기술
송이를 찾았다고 해서 바로 뽑는 게 아니다. 그는 먼저 송이 주변의 흙을 손으로 조심스럽게 걷어낸다. “손에 힘이 조금만 들어가면 송이가 부러져요. 송이는 겉보다 밑동이 더 중요해요. 밑동이 살아 있어야 향이 살아 있어요.”
그는 송이를 꺾지 않고 들어 올리는 방식으로 채취한다.얕게 자란 송이는 쉽게 채취되지만 산 깊은 곳에서 자란 송이는 수 cm 깊이 뿌리처럼 박혀 있기 때문에 주변 흙을 함께 들어야만 손상이 없다. 그는 양손 중 왼손으로는 흙을 지지하고, 오른손으로는 송이의 곡선을 따라 올려낸다. 그는 이 과정을 ‘향의 줄기를 뽑는 일’이라 말한다. 작은 칼날은 응급 상황을 대비해 들고 다니지만 송이를 자르기 위해 쓰는 일이 거의 없다. 그는 송이를 채취한 자리에 반드시 낙엽을 덮어준다. 그 자리에 다음 해 또 송이가 날 수 있도록 자연의 원형을 최대한 보존하는 것이 철칙이다. “산은 기억력이 좋아요. 예의를 잃으면 다음엔 그 자리에서 송이를 못 봐요.”
송이의 향은 시간이 만든다 – 손질과 보관의 정성
갓 채취한 송이는 씻지 않는다. 물에 닿는 순간 향이 날아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솔로 부드럽게 흙만 털어내고, 바로 냉장 숙성고로 보낸다. 이 과정은 단순해 보이지만, 송이의 향을 지키는 핵심이다. 송이는 수분이 많기 때문에 공기와 닿으면 금세 흐물해진다.
그는 송이 하나하나를 한지와 솔잎으로 감싸 수분을 조절한다. 그 방식은 송이의 신선도뿐 아니라 향이 깊어지게 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그는 저장고의 냄새까지 관리한다. “송이는 자기보다 강한 냄새가 있으면 기가 죽어요. 그래서 숙성고에는 향이 있는 어떤 것도 두지 않아요.오로지 송이만 있게 해요.”그는 말린 송이의 가치는 채취 송이 못지않다고 본다.“말리면 향이 압축돼요. 찜이나 전골, 밥에 넣으면 향이 증기로 퍼지죠. 그건 생송이에 없는 또 다른 매력이에요.” 그래서 그는 매년 송이 말차, 송이차, 송이소금 등을 소량 만들어 가까운 이웃들과 나눈다.
송이는 운이 아니라 기다림으로 얻는 것 – 사람과 산의 관계
송이를 찾는 일은 운이 아니라 반복과 감각의 결과다. 그는 매년 같은 산길을 걷지만, 절대 같은 자리에 송이가 나는 법은 없다고 말한다. 그 대신, 숲의 변화, 나무의 성장, 벌레 소리의 방향을 보고 자연이 주는 패턴을 읽어낸다.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송이로 ‘비 온 뒤 이틀째 새벽에 소리 없이 올라온 송이’를 말한다. “풀도 안 눕고, 낙엽도 그대로인데 그 속에서 송이가 고개를 살짝 내민 걸 봤어요. 그걸 보는데 말이 안 나오더라고요. 향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귀했어요.” 요즘은 산을 망치는 채취꾼 때문에 고민이 많다고도 했다. “무조건 많이 캐고, 뽑고, 팔고, 그러면 산이 금방 아파요. 벌레도 없어지고, 소나무 뿌리도 상하고, 그러면 결국 송이도 못 나요.”
그래서 그는 해마다 송이 시즌이 끝난 뒤, 산에 올라 돌과 나뭇가지를 쌓아 사람 발길을 줄이고, 산림청에 위치 좌표를 남기기도 한다. 그는 말한다.“산은 소유가 아니라 방문이에요. 조용히 다녀가야, 내년에도 문을 열어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