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도 김 장인, 바다의 결을 수확하는 손
전라도에 위치한 완도 앞바다는 잔잔한 듯 보이지만, 바람과 조류, 수온이 시시각각 변한다. 이곳에서 자라는 김은 바다의 풀이라 불리지만, 그 어떤 농작물보다 정교하고 섬세한 손질을 요구한다. 완도 김 장인은 35년째 바닷물 속에서 김을 기른다.
그가 기르는 김은 공장에서 찍어낸 네모난 김과는 다르다. 조류와 수온, 햇살과 바람, 그날의 물빛까지 읽어내야만 가능한 작업이다.
그는 말한다. “김은 바다가 허락해야 자라요. 사람은 그걸 조금 도와줄 뿐이에요.”
이 글은 완도 바다를 삶의 밭으로 삼아, 파도 위에서 김의 결을 수확하는 한 장인의 이야기다.
김은 바다의 풀 – 그물 한 장 위에서 자라는 결
김을 기른다는 것은 곧 바다에 농사를 짓는 일이다.
그는 가을이면 어김없이 김발을 바다 위에 설치한다.
김발은 가로 2미터, 세로 20미터의 그물망으로, 바다 위에 뜨도록 대나무나 부표로 고정해둔다.
여기에 김 종자를 뿌리듯 입히면, 바닷물 속에서 김이 자란다.
하지만 아무 바다나 되는 게 아니다.
염분이 너무 높거나, 물살이 세면 김이 찢어진다.
수온이 너무 낮으면 자라지 않고, 너무 높으면 녹아버린다.
그래서 그는 “김은 바다랑 싸우는 게 아니라, 바다를 읽는 작물”이라고 말한다.
그가 가장 많이 보는 건 바람의 방향과 파도의 높이다.
김이 자라는 수면은 바람에 예민하고, 파도가 높으면 김발이 찢기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매일 새벽마다 바다를 관찰하고, 김발의 위치와 높이를 조금씩 조절한다.
이 섬세한 작업이 김의 품질을 결정한다.
김이 건강하게 자라려면 적당한 햇빛과 물살이 필수다.
그래서 그는 김발을 하루에도 몇 번씩 뒤집는다.
“사람도 눕기만 하면 병 나요. 김도 그래요. 바람 쐬고, 해 쐬고, 움직여야 건강해져요.”
김을 수확하는 손 – 물 위에서 건져 올리는 결의 시간
김은 보통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수확한다.
물속에서 일정 길이로 자라면, 그것을 손으로 건져내 김을 뜬다.
이 작업을 ‘김 따기’ 혹은 ‘김 뜨기’라고 부른다.
그는 말한다. “김은 칼로 자르는 게 아니라, 손으로 떠야 결이 안 망가져요.”
김 뜨는 일은 새벽부터 시작된다.
그는 조용히 배를 몰고 김발 사이를 다닌다.
수면 아래 늘어진 김을 가볍게 끌어올려, 가위나 칼 없이 손으로 쭉 뜬다.
“너무 힘주면 끊어지고, 너무 살살 하면 안 떨어져요. 딱 바닷물 무게만큼 당겨야 해요.”
김은 바닷물에 젖은 채로 배 안 바구니에 담기고, 육지로 옮겨져 세척과 탈수, 건조 과정을 거친다.
그는 염소 표백이나 화학 처리 없이, 오직 맑은 물과 해풍만으로 김을 말린다.
그래서 그의 김은 향이 깊고, 색이 짙으며, 씹을수록 단맛이 난다.
이 과정을 하루에도 수십 번 반복한다.
그는 말한다. “김은 같은 바다에서도 하루하루 달라요.
오늘 건 질기고, 내일 건 부드럽고. 바다가 그렇게 매번 다른 걸 주니까, 사람도 거기에 맞춰야죠.”
김은 말리는 게 아니라 살리는 것이다 – 바람과 햇빛의 균형
김을 뜨고 나면, 그다음 중요한 과정은 건조다.
그는 기계 건조기를 거의 쓰지 않는다. 대신 해풍과 햇빛으로 자연 건조를 고수한다.
“기계 열은 빠르지만, 김이 겁먹어요. 바람과 햇살은 김을 살려요.”
그는 건조장에 나무틀을 세우고, 김을 한 장 한 장 널어둔다.
해가 너무 강한 날에는 얇은 천을 덮어 온도를 낮추고, 바람이 없는 날은 김을 이리저리 흔들어준다.
“김은 눅눅하게 마르면 눌어붙고, 너무 바짝 말리면 쓴맛이 생겨요.
그래서 항상 손끝으로 눌러보고, 결이 ‘사각’할 때 딱 걷어요.”
그는 김의 수분을 0.1g 단위까지 감각으로 구분한다.
“손으로 김을 잡았을 때, 종이처럼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나야 해요. 그래야 구웠을 때 제 맛이 나요.”
이 감각은 수십 년간 손으로 김을 만지며 쌓은 장인의 경험이다.
건조된 김은 기계 포장이 아니라 손 포장으로 이어진다.
한 장 한 장 쌓아온 김은 습기를 막기 위해 종이와 종이 사이에 넣고,
소금도 기름도 바르지 않은 상태로 포장해 고객에게 전한다.
그는 말한다. “김이 제일 예쁠 때는, 바람 맞고 막 마른 그 순간이에요. 그걸 포장 안 하고 바로 먹으면 정말 달아요.”
김을 만든다는 건 바다를 믿는다는 것 – 전통을 전하는 손의 일
그는 김을 키우는 일을 “바다에 의지하는 농사”라고 표현한다.
“바다는 날마다 다르고, 김은 바다에 따라 달라요.
사람은 거기서 판단하고 도와주는 역할만 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는 김을 돈벌이로 보지 않는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김을 바다의 결대로, 자연스럽게 길러내는 마음이다.
그는 젊은 시절 김을 많이 찍어내는 기계 방식에도 손을 대봤다.
하지만 금세 방향을 바꿨다.
“많이 만들면 팔리겠지만, 내가 먹고 싶은 김이 아니었어요.”
그는 다시 해풍과 손맛으로 돌아왔고, 이제는 완도에서도 보기 드문 전통 수산 김 장인으로 불린다.
요즘은 마을의 젊은 부부들과 함께 작은 공동 작업장을 운영하며, 김 뜨는 법, 말리는 법, 물 읽는 법을 함께 전하고 있다.
그는 말한다. “내 기술을 배우는 게 아니라, 바다랑 친해지는 방법을 알면 김은 저절로 따라와요.”
그는 매년 봄, 한 해 동안 쓴 김 발 수첩을 불태우고 새로 만든다.
거기엔 물때, 파도 세기, 바람 방향, 일출 시각, 첫 수확일 등이 빼곡히 적혀 있다.
그 기록은 단순한 생산 노트가 아니라, 바다에 대한 경의이자, 장인의 생활 일기다.
오늘도 완도 바다 위, 조용히 깃든 김발 사이로 햇살이 퍼지고 있다.
그 안에는 사람이 조율한 자연의 흐름,
그리고 한 장의 김 위에 고요히 남겨진 손의 감각과 바다의 리듬이 살아 숨 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