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갯벌염 장인, 바람과 햇살로 빚는 바다의 소금
전라남도 진도. 대한민국 최남단 바다를 마주한 이 섬은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이자, 갯벌과 해류, 바람이 어우러진 천혜의 염전 지대를 품고 있다.
진도의 갯벌에서는 기계도, 화학도 없다. 오직 바람, 햇살, 그리고 사람의 손만으로 바닷물을 증발시켜 소금을 얻는다.
이곳에서 세월을 따라 염전을 지켜온 한 장인은 말한다. “소금은 불로 끓이면 빨리 나오지만, 기다리면 더 깊은 맛이 나요.”
그가 만드는 소금은 단순한 조미료가 아니다. 바다를 말리고, 바람을 붙잡아 만든 결실이며, 자연과 사람이 함께 만든 결정체다.
이 글은 바다를 끓이지 않고 말리면서, 소금 한 알에 자연의 시간과 사람의 땀을 새겨 넣은 진도의 한 장인에 대한 이야기다.
진도 갯벌염 장인은 하루 – 소금은 바닷물에서 시작된다
그의 하루는 새벽 바닷물 들이는 일로 시작된다. 염전 한쪽, 조수간만의 차를 이용해 만들어 놓은 바닷물 통로를 열고 바닷물을 끌어들인다.
하지만 단순히 물을 채우는 일이 아니다. 그는 바닷물의 색, 냄새, 밀도까지 살핀다.
“바닷물이 탁하면 안 돼요. 갯벌 냄새가 너무 강하면 소금에 비린 맛이 남거든요.”
진도의 바다는 갯벌이 깊고 해류가 빠르다. 이 덕분에 미네랄 함량이 높고, 이물질은 상대적으로 적다.
그는 자신이 바다를 끌어오는 것이 아니라, “하루 중 가장 맑은 순간의 바다를 모셔온다”고 표현한다.
바닷물은 채워진 뒤 염전 가장자리의 **‘간수지’**에서 하루 이상 머문다. 이 시간 동안 무거운 불순물은 가라앉고, 위쪽 물만 소금밭으로 이동한다.
그는 바닷물을 세 번 이상 걸러낸 뒤 증발지로 옮긴다. 이때도 바람의 방향과 햇살의 세기를 고려해 염전판의 개방 범위를 조절한다.
“햇빛이 너무 강하면 소금결이 거칠고, 바람이 없으면 수분이 날아가지 않아요.”
그래서 염전은 기계보다 자연의 흐름을 읽는 감각이 더 중요한 공간이다.
햇살이 익히고 바람이 굳힌다 – 소금이 태어나는 시간
소금이 만들어지는 염전판은 일종의 천연 증발기다. 평평한 바닥 위로 바닷물을 얕게 부어 햇빛과 바람으로 천천히 수분을 증발시킨다.
그는 염전 위를 오가며 물의 깊이를 살핀다. “얇으면 빨리 마르지만, 맛이 얕아지고, 너무 깊으면 소금이 뭉쳐요. 딱 손가락 하나 깊이가 좋아요.”
염전판 위에 하얀 결정이 생기기 시작하면, 그는 ‘소금이 말을 걸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소금 결정은 초기에 크고 탁하게 나오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맑고 고운 결정이 생성된다.
그는 이 과정을 **‘소금이 제 성격을 찾는 시간’**이라고 표현한다.
수확은 하루 중 바람이 가장 잦아드는 오후 늦게 이뤄진다. 그때가 되면 소금이 충분히 굳고, 염전 바닥에서 쉽게 떨어진다.
그는 ‘소금 헤라’라 불리는 나무 도구로 염전 바닥을 살살 긁어 소금을 모은다.
“힘주면 다 깨져요. 살살 밀어야 밑에 있는 좋은 결정을 건질 수 있어요.”
그렇게 모은 소금은 바구니에 담아 그늘에서 바람에 말린 뒤 간수를 뺀다.
간수를 얼마나 오래 빼느냐에 따라 소금의 맛과 질감이 달라진다.
그는 30일 이상 간수를 빼며, 비 오는 날엔 마르지 않게 덮고, 바람 센 날엔 천을 걷는다.
“자연의 기분 따라 맞춰주는 게 소금 만드는 일이에요. 강요하면 쓴맛이 남아요.”
하얀 결정보다 투명한 마음 – 손으로 가려내는 품질
수확된 소금은 겉으로 보기엔 모두 하얗지만, 그중에서도 결정의 모양과 밀도, 입자의 감촉이 다르다.
그는 말한다. “모양만 보면 몰라요. 손끝으로 쥐었을 때 흐르듯 떨어지면 좋은 소금이에요.”
그는 소금을 크기별로 분류하고, 불순물이 들어간 것은 따로 골라낸다. 이 과정은 전적으로 눈과 손에 의존한 수작업이다.
기계로 체에 거르면 빠르지만, 섬세한 입자 구분이 어렵고, 염전에서 묻은 미세한 흙까지 걸러지지 않는다.
“좋은 소금은 딱 집었을 때 물기 없이 바삭하면서, 입 안에 넣으면 부드럽게 녹아야 돼요.”
그는 수확한 소금을 '꽃소금', '요리소금', '발효용 소금', '된장소금', '절임소금' 등으로 나눈다.
쓰임새에 따라 간수 제거 시간, 입자 크기, 보관 방법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창고에는 소금이 아니라, 숙성 기간과 쓰임에 따라 각기 다른 ‘소금의 시간’이 저장돼 있다.
그는 말한다. “소금도 사람처럼 성격이 있어요. 어떤 건 급하고, 어떤 건 오래 눌러야 깊은 맛이 나요.”
그의 손끝에서 분류된 소금은 단순한 조미료가 아니라, 시간을 견딘 자연의 결정이다.
사라지지 않게 남기는 맛 – 염전의 내일을 위한 기록
그는 이제 60대 후반이다. 염전을 시작한 지는 30년이 넘었다.처음엔 단순한 소금 생산자였지만, 지금은 진도 지역에서 마지막 전통 방식 염전을 지키는 장인 중 한 사람이다.
그는 말한다. “요즘은 다 소금을 끓여요. 빨라서 좋다고. 근데 나는 빨리 안 해요. 남는 게 없어도.”
그는 자신의 염전 노트를 매일 쓴다. 바닷물의 색, 바람의 방향, 햇살의 세기, 간수 뺀 날짜, 소금의 결정을 기록한다.
그 노트는 단순한 생산일지가 아니라, 자연과 인간이 소금을 완성하는 기록의 책이다.
최근엔 지역 청년들과 함께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염전을 함께 돌며 바닷물을 긷고, 소금을 긁고, 햇살을 읽는 일.
그는 말한다. “소금은 팔면 끝나지만, 가르치면 남아요.”
그래서 그는 매년 여름, ‘소금학교’를 열어 아이들과 함께 물을 붓고, 햇빛 아래서 기다리는 일을 나눈다.
“기다리는 일이 얼마나 귀한 건지 알려주고 싶어요.”
오늘도 진도의 갯벌 위, 햇살과 바람 속에서 하얀 결정이 자란다.
그 결정 안에는 바다의 숨결, 사람의 손끝, 그리고 느린 시간이 품은 천연의 맛과 철학이 고요히 응고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