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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 청국장 장인, 메주 냄새 속에서 지켜낸 장독의 계절

wellroundedboo 2025. 7. 5. 14:05

충북 괴산은 산 좋고 물 맑은 고장이다. 예부터 콩 농사가 발달했으며, 자연 발효 음식의 고장으로 이름이 높다. 그중에서도 ‘청국장’은 단지 건강식이 아니라 이 지역의 시간과 풍경, 그리고 손끝의 기억이 담긴 대표 음식이다. 뜨거운 밥 위에 한 수저 푹 올려 먹는 청국장의 깊은 맛은 단순히 발효식품이 아닌 계절의 기록이기도 하다. 괴산의 한 마을에는 지금도 전통 방식으로 청국장을 띄우는 장인이 있다. “청국장 냄새가 나야 겨울이 왔다 싶죠.” 그는 메주의 온도와 계절의 흐름을 감으로 기억하며, 장독대 옆에서 여전히 콩을 삶고 장을 띄운다. 이 글은 바로 그 냄새 속에서 시간을 지켜낸 한 장인의 이야기다.

 

괴산 청국장은 콩이 아니라 온기를 띄우는 일

 청국장을 만드는 첫 단계는 콩을 고르는 일이다. 장인은 해마다 직접 재배한 국산 메주콩을 쓴다. 보통 10월 중순에 수확한 콩을 말려두었다가, 겨울 초입이 되면 다시 꺼낸다. “콩은 잘 마르고 숨이 죽어야 장맛이 나요. 덜 마르면 시고, 너무 오래 두면 향이 안 살아나죠.” 그는 콩알을 깨물어 보며 익은 정도를 감별한다.

콩은 푹 삶아야 한다. 그러나 삶는 시간은 온도, 콩의 수분, 날씨에 따라 매번 다르다. 그는 팔팔 끓는 솥을 가만히 바라보며 콩알을 손으로 눌러본다. “속이 으깨질 듯 부드러워야 돼요. 너무 삶으면 껍질이 벗겨지고, 덜 삶으면 냄새가 세지죠.” 이처럼 삶는 온도와 타이밍은 레시피보다 감각이 앞서는 일이다.

삶은 콩은 30~35도의 따뜻한 방에서 볏짚 위에 펴 놓는다. 볏짚에는 고초균(納豆균)이 자연적으로 서식하고 있어서, 콩이 스스로 발효되도록 도와주는 전통 방식의 유산균 환경이 만들어진다. “청국장은 우리가 띄우는 게 아니라, 콩이 스스로 익는 거예요.” 그는 손을 대는 시간을 최소화하고, 공간의 온도와 습도를 맞추는 데 집중한다.

보통 2일에서 3일 정도 지나면, 구수하면서도 시큼한 냄새가 퍼지기 시작한다. 이것이 장인의 가장 바쁜 시간이다. 매일 콩을 뒤집고, 냄새를 맡고, 손으로 온도를 재며 발효 속도를 조절한다. “딱 이틀 반쯤 되면, 된장 냄새랑 퀘퀘한 냄새 사이 그 어디쯤이 돼요. 그게 제일 좋은 청국장이죠.” 이처럼 청국장은 시간을 띄우는 음식이자, 냄새로 익히는 음식이다.

 

냄새는 감춰야 할 게 아니라, 지켜야 할 맛

 많은 사람들이 청국장을 꺼리는 이유는 냄새 때문이다. 그러나 장인은 말한다. “청국장은 냄새 나야 제맛이죠. 향이 없는 청국장은, 영혼 없는 국이에요.” 그는 냄새를 줄이기 위한 현대식 가공 대신, 냄새 속에 담긴 ‘시간의 힘’을 지키는 쪽을 택한다.

그의 청국장은 물을 넣지 않고, 가루로 말려 보관한다. 이렇게 만든 청국장 가루는 냉동하지 않아도 수개월 이상 유지된다. 발효가 잘된 콩을 가마솥에서 덖어 수분을 날리고, 절구에 찧거나 손으로 빻아 건조한다. 기계로 돌리면 편하긴 하지만, 그는 일부러 손작업을 고집한다. “손으로 덖어야, 그때 나는 구수한 향이 살아 있어요.”

청국장 가루는 국에만 쓰는 것이 아니다. 장인은 직접 만든 청국장 가루를 볶음밥, 전, 샐러드, 심지어 된장국에도 넣는다. “먹을 때는 모르는데, 먹고 나서 속이 편하다는 말을 제일 많이 들어요.” 그는 이처럼 청국장을 현대 식탁에 자연스럽게 올릴 수 있도록 레시피 개발도 함께하고 있다.

그는 말한다. “냄새는 사람도 그렇고 음식도 그렇고, 기억을 붙잡는 힘이에요.” 그의 청국장은 단지 콩을 발효한 것이 아니라, 겨울방 안방의 온기, 장독대 옆 볏짚 내음, 그리고 기다림의 냄새까지 함께 담겨 있는 음식이다. 그래서 그는 청국장을 음식이 아니라 '향으로 남는 기억'이라 부른다.

괴산 전통 장독대에서 청국장을 띄우기 위해 콩을 볏짚 위에 펼치는 장인의 손

계절을 안다는 것 – 겨울을 통째로 익히는 시간

 청국장은 겨울 음식이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 콩이 익고, 발효가 자연스럽게 조절된다. “요즘은 냉장고나 인큐베이터로도 띄우지만, 그건 콩이 아닌 기계가 익히는 거예요.” 장인은 기계를 쓰면 편리하지만, 계절을 따라가는 음식 본연의 속도를 잃게 된다고 말한다.

그는 장독대를 겨울 내내 지킨다. 눈이 오면 장독 위에 쌓인 눈을 털어내고, 햇빛이 드는 날엔 뚜껑을 열어 햇살을 먹인다. 장독 안엔 청국장뿐 아니라 된장, 간장도 함께 숙성되고 있다. 그는 말한다. “하나하나 다 냄새가 달라요. 간장 냄새, 된장 냄새, 청국장 냄새. 계절이 바뀌면 그 냄새도 바뀌어요.”

그는 이 냄새를 기록해 둔다. 해마다 같은 날, 같은 시간대에 청국장을 띄우지만, 그해의 향은 매번 다르다. 그래서 그는 날씨, 온도, 볏짚의 습기, 콩의 수분을 일지에 적는다. 마치 과학 실험처럼 보이지만, 그에겐 ‘기록이 곧 감각의 연장’이라고 한다.

그의 손에 있는 건 레시피가 아니라 경험이다. 언제 어떻게 뒤집고, 며칠 째에 어느 정도 냄새가 올라와야 하는지 모두 몸으로 익힌다. 그래서 그의 청국장은 실패가 없다. “청국장 띄우는 건 ‘정확함’보다 ‘일관된 기다림’이에요.” 그 말처럼, 그의 청국장은 시간과 냄새로 완성되는 겨울의 산물이다.

 

장독 옆에서 지킨 맛 – 다음 세대에게 남기는 발효의 온도

 괴산 청국장 장인은 혼자서 수십 개의 장독을 관리한다. 손이 많이 가지만, 그게 싫지 않다고 말한다. “장독이 줄면, 내가 살아온 시간이 줄어드는 기분이에요.” 그래서 그는 하나라도 더 오래, 더 정성껏 지키고 싶다고 한다. 그는 청국장 한 국자에 자신의 사계절과 시간을 함께 담는다.

요즘은 청국장을 찾는 젊은 사람들이 늘었다. 특히 알레르기나 장 건강 문제로 발효식을 찾는 이들이 많다. 그는 그런 이들에게 청국장의 유익균 설명과 함께, 먹는 시간과 방법까지 안내한다. “식후보다는 아침 공복에 먹는 게 더 효과가 있어요. 위장이 가장 깨끗할 때 들어가야 유산균이 살아 있거든요.”

그는 올해부터 마을 청년들과 함께 ‘발효학교’를 열 계획이다. 계절마다 콩을 심고, 삶고, 띄우고, 덖는 과정을 함께하며 ‘발효라는 감각’을 몸으로 기억하게 하는 교육이다. “장맛은 손이 아니라 시간이 내는 거예요. 그걸 배우는 게 먼저죠.”

오늘도 괴산의 작은 장독대 옆, 장인은 손으로 콩을 덖고 있다. 볏짚 사이로 퍼지는 구수한 냄새, 콩알의 탄력, 장독의 온기까지. 그 속엔 단지 음식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사계절이, 그리고 우리가 잊고 있는 기다림의 미학이 조용히 익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