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을찾아서

의령 솥뚜껑 불고기집, 철판 위에 피어나는 고향의 풍경

wellroundedboo 2025. 7. 1. 18:32

경상남도 의령. 나지막한 산이 둘러싸고 있고, 물 맑은 남강이 흐르는 이 고장은 조용하지만 뚜렷한 향토색을 가진 땅이다. 대도시의 번쩍이는 음식점들과는 거리가 있지만, 오히려 그런 느린 흐름 속에서 고향의 맛과 온기가 오롯이 살아 있는 공간들이 남아 있다. 그중에서도 지금 소개할 집은, 낡은 창틀과 낡은 간판 아래에서 여전히 뜨거운 철판 위에 불을 지피고 있는 한 불고기집이다.

의령군 한 시골마을 입구, 오래된 주택을 개조해 만든 이 불고기집은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오직 한 가지 메뉴, 솥뚜껑 불고기 하나로 승부를 걸어왔다. 가게 안에 들어서면 연기와 함께 피어나는 구수한 양념 냄새가 코끝을 자극하고, 노랗게 변색된 벽지 위로는 세월이 켜켜이 쌓여 있다. 점심시간이 되기도 전에 마을 어르신들과 외지 단골들이 하나둘 찾아와 자리를 메운다. “의령 오면 이 집은 꼭 들러야지”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들리는 곳이다.

이 글은 단순한 맛집 소개가 아니다. 솥뚜껑 위에서 지글지글 익어가는 고기 한 점에 담긴 한 지역의 식문화, 한 사람의 손맛, 그리고 그걸 기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기록이다. 연기와 땀, 장작불과 숯향, 그리고 삶의 이야기들이 함께 피어나는 공간을 따라가 보려 한다.

 

솥뚜껑 위의 불고기, 기술이 아닌 감각으로 구워낸 맛 

 솥뚜껑은 열을 머금는 성질이 있다. 이 뚜껑을 숯불 위에 얹고, 그 위에 양념한 돼지고기를 넉넉히 펼치면 지글지글한 소리와 함께 향기가 퍼진다. “연기까지 양념이죠.” 주인장은 웃으며 말한다.

고기는 돼지 앞다릿살과 목살 부위를 섞어 쓴다. 너무 기름지지도, 너무 퍽퍽하지도 않은 식감을 위해 직접 손질한 부위를 골라 사용한다. 여기에 숙성된 간장 베이스 양념이 더해진다. 양념에는 사과, 배, 마늘, 생강, 매실청 등 10가지가 넘는 재료가 들어간다. 24시간 저온 숙성한 고기는 양념이 속까지 스며들고, 불에 닿자마자 단맛과 감칠맛이 고루 퍼진다.

고기가 익어가면, 주인장이 김치와 양파를 고기 위에 얹는다. 밑반찬은 소박하지만 정갈하다. 손수 담근 열무김치, 집에서 직접 절인 마늘장아찌, 제철나물 몇 가지. 그런데 이 반찬들이 고기와 어우러지면 그 어떤 고급 레스토랑 못지않은 조화를 보여준다. 그 조화는 레시피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매일 아침 정성껏 다듬고 간 맞춘 손맛에서 비롯된다.

솥뚜껑 불고기를 굽는 일은 단순하지 않다. 기름이 중앙으로 모이게 솥뚜껑 각도를 살짝 조절해야 하고, 고기를 뒤집는 타이밍도 중요하다. 이 집 주인은 “센 불로 빨리 구우면 겉만 익고 속은 질겨져요. 불을 알아야 고기를 알죠.”라고 말한다. 그의 손놀림에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40년을 넘게 지켜온 감각과 경험이 녹아 있다.

장작불 피워지는 고향 마당, 고기 굽는 냄새가 어울릴 것 같은 풍경

 

불고기집이 아니라 동네 사랑방이 되는 공간

 이곳을 단골들이 사랑하는 진짜 이유는 맛뿐만이 아니다. 이 집은 단순한 식당이 아니라, 동네 사랑방 같은 공간이다. 마을 어르신들은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들러 고기 한 점에 막걸리 한 사발 나누고 간다. 외지에서 온 손님들도 금세 주인장과 말을 섞고, 옆자리 사람과 인사를 나눈다. 고기가 익는 시간만큼 대화도 익어간다. “요즘도 장날 되면 여기서 모여요. 옛날 같죠.”

이 집의 주인은 부부다. 아내는 주방에서 나물과 밑반찬을 준비하고, 남편은 솥뚜껑 앞에서 고기를 굽는다. 두 사람의 호흡은 오래된 부부의 일상처럼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그들은 손님을 손님으로 대하지 않는다. 먼저 물을 내어주고, 천천히 천을 내린 팬으로 연기를 막아주는 손길에는 ‘식사’를 넘어선 정이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SNS를 통해 입소문이 나면서 젊은 손님들도 많이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주인은 여전히 똑같은 방식으로 일한다. 반찬 가짓수를 늘리지도, 고기의 양을 줄이지도 않는다. “우린 늘 이대로 했어요. 바꾸면 맛도 정서도 달라져요.” 그의 말에는 마케팅이 아닌 자부심과 철학이 담겨 있다.

솥뚜껑 불고기를 먹으며 손님들은 단지 배를 채우는 것이 아니다. 불에 익어가는 고기 냄새, 장작불의 따뜻함, 시골집 부엌 같은 분위기 속에서 누구나 잊고 있던 어떤 기억을 되찾는다. 그것이 이 집이 오래도록 살아남은 이유다.

 

사라지지 않아야 할 손맛, 고기를 넘은 사람의 온기

 요즘은 프랜차이즈 고깃집이 빠르게 늘고 있고, 솥뚜껑 불고기는 점점 보기 어려워졌다. 불 조절이 어렵고, 연기 문제로 도시에서는 운영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집은 그런 불편함을 모두 감수하고도 전통을 지켜낸다. “손님들이 편하자고 우리 방식 다 버릴 순 없죠. 불편함 속에 진짜 맛이 있어요.” 그는 솥뚜껑 위 연기까지도 맛의 일부라고 믿는다.

그의 자식들은 도시에서 각자 삶을 살고 있지만, 명절이면 꼭 가게로 돌아온다. “이 솥뚜껑이 우리 집안의 중심이에요.” 아버지의 고기를 먹고 자란 아이들은 이제 부모의 정성과 손맛을 이해하고, 언젠가 이 가게를 물려받고 싶다는 뜻도 전하고 있다. 그 말에 주인장은 잠시 미소 지으며 말한다. “아직은 내가 더 익히고 싶어. 고기는 하루도 안 구우면 감각이 무뎌지거든.”

오늘도 이 불고기집은 변함없이 문을 열고, 철판 위에 고기를 올린다. 손님들은 익숙한 연기와 냄새에 이끌려 들어오고, 고기를 먹으며 웃고 떠든다. 그 속에는 단지 맛을 파는 식당을 넘어, 사람과 사람을 잇는 따뜻한 장면이 있다. 고기는 금세 사라지지만, 그 위에 피어오른 추억과 온기는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특히 여름 장마철엔 솥뚜껑 아래 장작이 눅눅해져 불을 붙이기 어렵지만, 그럴 때면 주인장은 미리 마당에 말려둔 장작을 꺼내온다. 손님들은 그런 장면 하나하나를 오래 기억하기 때문에 의령 솥뚜껑 불고기집은 음식 맛만으로 남는 공간이 아니다. 이곳은 온기와 정서, 그리고 사람의 손길이 곁들여진 밥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