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교를 개조한 수상생태연구소
기자는 전남 곡성의 한 시골 마을을 찾았다.
이곳에는 강가에 자리 잡은 작은 폐교가 있었다.
한때는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며 뛰어놀았지만, 학생 수가 줄고 도심으로 인구가 빠져나가면서학교는 문을 닫았다. 그런데 이곳이 10년 만에 새로운 이름으로 돌아왔다.
‘수상생태연구소’라는 간판을 단 이 공간은 강과 습지를 활용해 물속 생태계를 배우고 지역 환경을 지키는 거점이 되고 있었다.
아이들은 다시 이 학교로 돌아왔고 이번에는 책 대신 뜰채와 수중 카메라를 들었다.
폐교를 개조한 수상생태연구소, 교실이 된 강변
연구소의 가장 큰 특징은 교실 창문 너머로 강이 바로 보인다는 점이다.
옛날에는 그저 풍경이었던 강이 이제는 살아 있는 수업 자료가 됐다.
수업 시간에는 학생들이 강변에 나가 물속 곤충, 조개, 물고기를 채집하고, 현미경으로 관찰한 뒤 기록을 남긴다.
운영자는 기자에게 “강을 보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람들이 강을 ‘알게’ 만드는 겁니다.”라고 말했다.
그 말처럼 이곳의 교육은 단순한 환경 지식 전달이 아니라 직접 보고 느끼는 경험 중심이었다.
폐교와 강이 만든 공생
수상생태연구소가 이 자리에 들어설 수 있었던 건 폐교와 강의 위치 덕분이었다.
새로 건물을 지으려면 습지 훼손 문제가 있었지만, 이미 자리한 폐교를 개조함으로써 환경 파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또한, 학교 건물의 일부를 수상 플랫폼으로 연결해 배와 카약을 쉽게 띄울 수 있도록 했다.
이 구조 덕분에 연구와 교육뿐 아니라 지역 관광 자원으로도 활용이 가능했다.
폐교와 강은 서로에게 새로운 역할을 만들어준 셈이다.
마을과 함께 흐르는 배움
연구소는 마을 주민과도 긴밀히 협력했다.
강 어귀에서 어업을 하던 주민들이 아이들에게 전통 어구 사용법을 가르치고 물고기 산란기에는 그물 대신 관찰을 권유했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생태계 보호의 필요성을 몸으로 이해하게 됐다.
기자는 이 광경을 보며 ‘교육이란 결국 삶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느꼈다.
강은 교과서보다 깊고 마을 사람들의 경험은 백과사전보다 넓었다.
기자의 마지막 기록
취재를 마친 날, 기자는 강 위 수상 데크에 앉았다.
물결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고, 그 위로 잠자리 한 마리가 스쳤다.
폐교라는 과거와, 강이라는 현재가 만나 마을의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기자는 노트에 이렇게 적었다. “물은 흘러가지만, 배움은 남는다.” 수상생태연구소의 수업은 언제나 강물처럼 흘러가지만, 그 경험은 아이들의 마음에 깊이 새겨지고 있었다.
물이 가르쳐준 순환의 법칙
연구소에서의 마지막 수업은 강물 속 미세 생물 관찰이었다.
투명한 채집 통 속에서 물벼룩과 실지렁이가 바쁘게 움직였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벌레 같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운영자가 물었다.
“얘네가 사라지면 물고기와 새도 살 수 없다는 걸 아나요?” 순간, 아이들의 표정이 바뀌었다.
생태계의 순환을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기자는 이 장면을 보며 도시에서 잊고 지낸 ‘연결’이라는 가치를 떠올렸다.
물속의 작은 생명과 강변의 버드나무, 그리고 그 나무에 둥지를 튼 백로까지 모두 한 흐름 속에 있었다.
이 순환은 마을과 폐교, 그리고 연구소를 서로 이어주는 보이지 않는 강줄기였다.
과거와 미래가 흐르는 강
연구소의 벽에는 이 학교의 역사 사진이 걸려 있었다.
수십 년 전, 학생들이 줄지어 강가로 나가 수영을 배우던 모습이었다.
그 시절에도 강은 아이들에게 배움의 장소였고 지금도 여전히 그 역할을 하고 있었다.
다만, 과거에는 강이 생존 기술을 가르쳤다면 지금은 강이 환경의 소중함과 공존을 가르친다. 교육의 내용은 바뀌었지만 강과 학교가 함께 흐른다는 점은 변하지 않았다.
폐교가 단순히 건물만 남은 것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기억과 기능이 새로운 시대에 맞게 재해석되고 있었다.
기자의 발걸음을 붙잡은 물결
취재를 마치고 돌아가려던 순간 기자는 갑자기 발걸음을 멈췄다.
연구소 옆 작은 나무다리 아래에서 은빛 물고기 떼가 한꺼번에 수면 위로 뛰어올랐기 때문이다.
그 순간의 반짝임은 짧았지만 기자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졌다.
강물은 쉼 없이 흘러갔지만 그 안에서 일어난 작은 기적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것 같았다. 기자는 그 장면을 마지막 기록에 이렇게 남겼다.
“폐교가 새로운 삶을 얻는 데는 강물 한 줄기의 힘이면 충분하다.”
물 위에서 깨달은 배움의 무게
해질 무렵, 연구소 앞 강물은 주황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햇빛이 수면 위에서 반짝이며 춤을 추고 그 빛은 물속 작은 모래알과 수초까지 스며들었다.
아이들은 이날 마지막 체험으로 카약을 타고 강 한가운데까지 나아갔다.
물살이 잔잔한 듯 보였지만 중간쯤에 이르자 느릿하게 흐르던 카약이 서서히 한쪽으로 기울었다.
운영자는 미리 알려준 대로 노를 천천히 물결에 맞추어 움직이라고 지도했다.
처음에는 다급하게 노를 저으며 균형을 잡으려 하던 아이들이 곧 물살에 몸을 맡기자, 배는 다시 안정되었다.
기자는 그 모습을 강가에서 지켜보며 배움이란 결국 물살을 읽고, 그 흐름에 맞추어 몸과 마음을 조율하는 과정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강물의 흐름을 거스르려 하면 힘이 들고 흐름을 이해하면 오히려 멀리 갈 수 있다.
폐교가 강과 만나 만들어낸 이 연구소는 단순한 생태 교육 기관이 아니었다.여기서 아이들은 물속 생물의 이름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법, 그리고 자신의 속도를 조율하는 지혜를 배웠다.
그것은 교과서에 없는 수업이었지만 아마도 평생 잊히지 않을 진짜 ‘학문’이 될 것이다.
물 위에서 느낀 그 배움의 무게는 책상 앞에서 배운 그 어떤 공식보다도 아이들의 마음속에 오래 머물 것이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