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봉화는 산세가 깊고 물이 맑은 지역으로 예로부터 활 제작에 적합한 나무와 기후를 품은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은 활을 쓰는 시대가 아니지만, 여전히 전통 목재 활을 손으로 만드는 장인이 봉화 산속 작은 공방에 있다. 그는 말한다. “활은 곧은 게 아니에요. 활은 휘어야 하죠. 그 휨 안에 숨결이 있어요.” 이 말처럼 전통 활은 단지 사냥이나 무기의 도구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과 기운을 담는 곡선의 공예였다. 이 글은 한 장인의 손끝에서 태어나는 전통 목재 활의 섬세한 곡선, 나무의 호흡, 그리고 전통 기술의 깊은 정신을 따라가는 기록이다.
봉화 목재 장인이 ‘결’을 고르는 일 – 활 제작의 시작
전통 활의 시작은 나무를 고르는 일이다. 봉화 활 장인은 매년 겨울, 산으로 들어가 활에 적합한 물푸레나무, 단풍나무, 뽕나무를 직접 눈으로 보고 골라낸다. 그는 “나무를 자르기 전에 그 나무가 몇 년을 버텼는지, 가지가 어떻게 자랐는지부터 봐야 한다”고 말한다. 나무의 외형보다도 속의 결과 나이테, 그리고 휘는 성질을 먼저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베어온 나무는 2~3년 이상 자연 건조된다. 급하게 말리면 나무가 갈라지거나 휘어버려 활로 만들 수 없다. 그는 자연 바람에 마르고, 습기를 머금은 겨울을 통과하고, 여름의 열기를 견뎌낸 나무만이 활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활이 휜다고 해서 아무 나무나 휘는 게 아니에요. 이건 버틸 줄 아는 나무여야 해요.”
이후 적당히 마른 나무는 결을 따라 쪼개고, 대패질로 평을 잡는다. 이 과정에서 실수하면 나무가 쪼개지거나 안에서 금이 간다. 그는 “결을 거슬러 자르면 그건 나무에 대한 예의가 아니에요”라고 말한다. 활은 직선이 아닌 곡선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제작자는 나무가 휘고 싶어 하는 방향을 존중하는 기술을 가져야 한다.
그가 고른 나무들은 공방 한쪽에서 조용히 말라간다. 사람의 손을 기다리며, 자신만의 곡선을 준비하는 것이다. 활을 만드는 기술은 단순한 목공이 아니라, 나무의 시간과 사람의 인내를 맞추는 공예다.
활은 당기는 게 아니라 숨을 모으는 일
나무를 활 모양으로 휘는 과정은 섬세하고도 예민하다. 일정 온도의 열을 가해 나무를 유연하게 만든 후, 활틀에 고정해 서서히 휘게 한다. 이때 온도와 습도, 나무의 성질을 고려하지 않으면 나무가 깨지거나 휘어도 탄성이 살아나지 않는다. “활은 억지로 휘면 부러져요. 스스로 휘고 싶어지게 만들어야 해요.”
활을 휘는 시간은 나무에 따라 다르다. 어떤 나무는 하루 만에 휘지만, 어떤 나무는 보름 이상으로 넘게 걸리기도 한다. 그는 매일 활틀 옆에 서서 나무의 상태를 눈으로 확인하고, 손으로 눌러본다. “손이 기억하는 휨의 느낌이 있어요. 그걸 따라가야 하죠.”
활대가 완성되면, 그 위에 소뿔, 대나무, 사슴힘줄 등 여러 재료를 덧붙여 강도를 보강한다. 이 복합 재료들이 함께 붙어야 활이 멀리, 정확히 나간다. “하나의 재료로는 좋은 활이 안 나와요. 서로 다른 성질들이 만나야 진짜 활이 돼요.” 이 말은 곧 전통 활이 자연의 협업으로 이루어진 작품이라는 의미다.
이 과정을 거쳐 완성된 활은 곡선 안에 힘을 감고 있다. 겉보기에 유려하지만, 당기는 순간 속의 긴장이 풀리며 화살이 나간다. 그는 말한다. “활은 쏘기 전이 제일 예뻐요. 그 안에 숨이 고여 있으니까요.” 활을 만든다는 건, 힘을 모으고 기다리는 기술이다.
활은 손의 연장 – 사용하는 이의 기운까지 고려한 제작
그는 활을 만들 때마다 의뢰자의 신체 조건과 사용 목적을 묻는다. “누가 쏘는지, 왜 쏘는지를 알아야 활의 길이와 강도가 달라져요.” 실제로 활의 휘는 각도, 손잡이의 굵기, 무게 중심은 모두 활을 쓰는 사람의 체형과 습관에 맞춰 조정된다.
활을 쥐는 손의 감각도 중요하다. 그는 손잡이 부분을 만들 때 손바닥 뼈와 손가락 위치를 고려해 곡선을 다르게 잡는다. “활을 쥐었을 때 낯설지 않아야 해요. 내 손 같아야 하죠.” 그는 이를 위해 의뢰자의 손 크기와 손가락 간격까지 측정한다. 활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사람의 움직임을 반영한 연장선이기 때문이다.
활의 표면 마감은 옻칠로 마무리한다. 이때 색은 검정, 진갈색, 어두운 자주색이 많다. “빛나는 색보다 깊은 색이 더 오래 가요. 활은 겉이 아니라 안을 봐야 하니까요.” 그는 화려한 문양보다는 나무결을 살린 단순한 무늬를 선호한다. “내가 만든 활은 쓰는 사람이 마무리하는 거예요. 기름칠을 얼마나 자주 하느냐,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활도 주인을 닮아가요.”
그가 만든 활은 전국의 국궁 동호회, 전통 무예 체험장, 활쏘기 대회 참가자들에게 전달된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이름을 새기지 않는다. 이유는 단순하다. “활에 내가 있는 게 아니라, 쓰는 사람이 담겨야 하니까요.”
활의 곡선을 잇는다는 것 – 다음 세대에게 전하는 정신
그는 활 제작 기술을 누구에게도 강요하지 않는다. “배우겠다는 사람이 오면, 문부터 쓸게요.” 실제로 몇몇 젊은이들이 공방에 찾아와 함께 활을 만들고 있다. 그러나 그는 기술보다 먼저 ‘나무를 보는 눈’, ‘기다림을 견디는 마음’을 가르친다.
그는 기술 전수가 단지 도면을 나누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이건 머리로 외워선 안 돼요. 손이 기억해야 해요.” 그래서 그는 계절마다 적합한 나무의 성질, 습도와 건조의 차이, 휨의 감각 등을 직접 겪게 한다. 그의 제자들도 처음엔 나무를 잘라내기 바빴지만, 지금은 “나무를 만지기 전에 한참을 바라보는 습관”이 생겼다고 한다.
그는 말한다. “활을 만든다는 건 누군가의 집중을 도와주는 일이에요. 화살은 목적을 향해 나가지만, 활은 그걸 준비하게 만들죠.” 활을 만드는 사람은 무언가를 쏘기 위한 사람이 아니라, 누군가가 집중할 수 있도록 곡선을 준비하는 사람이다.
오늘도 봉화의 산 아래, 조용한 공방에서 나무 하나가 휘어간다. 휘는 그 안에 담긴 것은 기술이 아니라 시간, 정성, 인내, 그리고 한 사람이 다음 세대를 위해 천천히 남기는 곡선의 철학이다.